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DM) 지수 편입이 또다시 불발됐다. 정부가 외환시장 마감 시간을 연장하고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를 폐지하는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단행했음에도,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실무적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평가다.
시장 일각에서는 “외국인 거대 자본의 입맛에만 맞추느라 자본 주권만 내주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무리라는 지적을 감수하면서까지 문턱을 낮추려는 이면에는, 단기 차익 중심의 외국인 자금을 내보내고 장기 연금형 자금을 유치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는 고도의 손익계산서가 깔려 있다.
▲ 법 바꿨지만 “불편하다”는 외국인…‘5대 미흡’에 발목
MSCI가 23일(현지시간) 공개한 ‘2026년 연례 시장 분류 결과’에서 한국 증시는 선진국 지수 관찰대상국(워치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로써 한국은 지난 2008년 관찰대상국에 포함됐다가 2014년 제외된 이후, 12년째 신흥국(EM) 지수에 머무르게 됐다.
MSCI 측은 “한국 당국이 오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발표한 전향적인 조치들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그러나 글로벌 투자자들은 근본적인 문제들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으며, 새로 도입된 제도 아래에서 상당한 운영 부담을 겪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탈락 사유를 밝혔다.
함께 발표된 ‘시장 접근성 보고서’를 보면 정부로서는 억울할 법하다. 지수 연계 파생상품의 해외 상장 확대로 일부 항목이 상향되면서 미흡 판정을 받은 항목은 지난해 6개에서 5개로 줄었다. 그러나 ▲외환시장 자유화 ▲투자자 등록 절차 ▲정보 흐름(영문 공시) ▲청산 및 결제 ▲자금 이전 가능성 등 핵심 5대 항목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외환시장이었다. 정부가 야간 외환시장을 새벽 2시까지 연장하고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RFI)의 참여를 허용했으나,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은 “런던·뉴욕의 주 거래 시간대에 원화의 국내 유동성이 여전히 부족해 거래 비용이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역외 시장에서 원화의 실물 인도(Physical Delivery)가 불가능해 차액정산선물환(NDF)에만 의존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대규모 자금 집행을 주저하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3월 전면 재개된 공매도 제도 역시 역설적인 장벽이 됐다. MSCI는 불법 공매도를 적발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도입한 고강도 시장 감시규정 체계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과도한 ‘운영상의 부담(Operational Burdens)’을 지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국문보다 지연되는 영문 공시의 시차 문제,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통합계좌(Omnibus Account)의 까다로운 행정 절차 등도 감점 요인이 됐다.
▲ ‘외국인 퍼주기’ 비판 뒤에 숨은 ‘증시 체질 개선’의 실익
비판론자들의 지적대로 원화의 역외 거래를 전면 허용하거나 공매도 감시를 완화하는 것은 국내 자본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개인 투자자의 정서와 정면으로 배치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선진 지수 편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다.
현재 신흥국 지수에 묶여 있는 한국 증시는 대외 변동성에 매우 취약하다. 국내 기업에 아무런 악재가 없어도 중국이나 인도 시장이 흔들리면 “신흥국 자산 비중을 줄이자”며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함께 팔아치우는 동조화 현상이 발생한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나 공격적 자금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선진국 지수에 진입하면 미국 퇴직연금(401k)이나 유럽의 국부펀드처럼 한 번 사면 수년간 묻어두는 ‘초대형 우량 패시브 자금(약 30조~40조 원 추산)’이 의무적으로 유입된다. 대규모 장기 자금이 증시의 하방을 받쳐주면 주가가 세력의 장난질이나 일시적 악재에 쉽게 휘청이지 않는 ‘기초 체력’이 생긴다. 미국이나 일본 증시처럼 악재가 터져도 빠르게 회복하는 복원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국내 1,400만 개인 투자자들의 자산을 보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외환시장 역시 빗장을 풀면 단기적으론 불안해 보이지만, 원화가 전 세계에서 언제든 거래되는 ‘안정적 통화’로 인정받으면서 위기 시 환율이 폭등하는 변동성 발작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안방 통제권과 메이저리그 티켓의 교환…과제는 ‘디테일’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추진은 결국 “안방의 통제권을 일부 양보하더라도, 글로벌 메이저리그로 올라가 자본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이롭다”는 판단 아래 진행되는 고도의 주도권 싸움이다. 이번 관찰대상국 진입 무산으로 선진 지수 최종 안착이라는 정부의 타임라인은 최소 1~2년 이상 뒤로 밀리게 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전례 없는 속도로 규제를 풀었지만, 글로벌 시장은 제도의 ‘도입’이 아닌 ‘실질적 정착과 구동’을 원하고 있다”며 “외국인 퍼주기라는 국내 여론을 설득할 수 있도록 제도의 정교함을 다듬는 동시에, 해외 투자자들이 느끼는 실무적 불편함을 깎아내는 정밀한 행정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뉴스로드] 강동준 기자 newsroad01@newsroad.co.kr
Copyright ⓒ 뉴스로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