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정부가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상비약) 품목 확대를 추진하면서 관련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약사회는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안전성이 검토된 일부 상비약까지 약국 밖 구매를 제한하는 것은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 품목을 기존 11개에서 최대 20개까지 늘리는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현행 약사법상 복지부 장관은 성분과 부작용, 인지도, 편의성 등을 고려해 최대 20개 품목 이내에서 편의점 상비약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상은 가벼운 증상이 있을 때 환자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다. 편의점 상비약은 대부분 하루 복용치만 담겨있다. 일부는 약국에서 파는 의약품과 성분이 다소 다르다.
편의점 상비약 판매 제도는 약국이 문을 닫는 공휴일이나 밤늦은 시간에 의약품을 구매하기 어렵다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2012년 11월 시행됐다.
도입 당시에는 13개 품목이 지정됐으나, 현재는 타이레놀 2개 품목(타이레놀 80㎎, 160㎎)이 생산 중단으로 제외되면서 현재 취급 품목은 해열진통제 3개, 감기약 2개, 소화제 4개, 파스류 2개로 총 11가지다.
품목 조정 논의는 이전부터 여러 차례 있었지만 실제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부가 판매 대상 의약품을 늘리는 방안을 다시 추진하자 약사회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약사회 산하 경기도약사회 분회장협의회는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국민 건강을 편의점 매대와 맞바꾸려는 졸속적인 편의점 상비약 확대 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며 “의약품 정책의 최우선 가치는 국민 안전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의약품 접근성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약국 수가 OECD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이고, 휴일지킴이약국과 공공심야약국 등 보완 체계도 운영되고 있다”며 “이미 전국에 4만4000여개 상비약 판매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품목 확대의 실익은 크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약사의 대면 판매와 복약 지도는 국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전문가 확인 없이 의약품이 편의점 매대에서 판매될 경우, 국민들이 의약품을 일반 소비재처럼 인식하게 되고, 약물 오남용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판매 관리 부실 문제에 대해서는 “실태조사 결과 편의점의 97.1%가 판매 규칙을 위반하고 있었고, 판매 종업원의 73.1%는 안전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관리·감독과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품목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청소년 약물 오남용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편의점 상비약 판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아세트아미노펜은 과다 복용 시 심각한 간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약사회의 오남용 우려가 편의점 상비약 확대만의 문제인지, 의약품 전반의 관리 문제인지는 따져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소비자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특히 아세트아미노펜은 약국에서도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인 만큼, 가정 내 비축이나 중복 복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는 어렵다.
현행 제도 역시 무제한 구매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복지부는 안전상비의약품 제도의 도입 취지를 공휴일·심야 시간대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로 설명하고 있으며, 대상도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하며 환자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한정하고 있다.
점포도 24시간 연중무휴 운영, 종사자 교육 이수, 위해의약품 판매 차단 시스템 구비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소비자는 1회 1개 포장단위로만 구매할 수 있고, 만 12세 미만에 대한 판매는 금지된다.
의료 접근성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복지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지역의료 대책에 따르면 행정구역 내 의원급 이상 의료기관과 약국이 없고, 인접 지역 의료기관과도 4km 이상 떨어진 의료 취약 읍·면은 547개로 분석됐다.
일각에서는 약사회의 반대 논리가 소비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지나치게 제한할 소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편의점 상비약 논의를 유통업계 이익 논쟁으로만 돌릴 경우, 약국 이용이 어려운 시간대와 지역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 같은 쟁점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편의점 안전상비약 정책토론회’에서도 다뤄졌다. 당시 토론회에서 강준혁 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편의점 안전상비약 시장은 전체 일반의약품 시장(약 4조원)의 1.4% 수준”이라며 “약사회의 반대는 수익보다는 오남용 우려 때문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강 과장은 “안전상비약은 약국을 대체하는 제도가 아니라 접근성 취약 지역을 보완하는 장치”라며 “오남용 우려를 최소화하면서 국민 편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품목 조정과 기준 완화를 논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실적 인력 한계가 있지만 점검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협력해 관리 강화를 추진하겠다”며 “필요한 경우 포장단위 제한, 교육 강화 등 추가 안전장치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편의점 상비약 확대 소식에 대해 내심 기대감을 갖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 다이소 등 유통 채널의 확대는 판매 확장의 발판이므로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소비자에 대한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는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은 상비약 매출이 좋은 편이다. 유통 채널이 늘면 매출이나 판매도 증가하므로 제약사 입장에선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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