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도시를 읽는 방식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지도와 통계, 개발 계획과 같은 거시적 언어가 있는가 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움직임과 사소한 흔적을 통해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방법도 있다. 명준희 작가의 개인전 '물이 아니어도 새는 앉는다: 잔물결, 유목적 파동 그리고 문의 귀환'는 후자에 깊이 기대며, 사라짐 이후에도 남아 있는 것들의 미세한 지속을 더듬는다. ‘물이 아니어도 새는 앉는다’는 물리적 조건을 넘어 존재가 자리 잡는 방식을 환기시키며, 도시라는 환경을 전혀 다른 감각으로 재구성한다.
전시는 부재를 결핍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사라진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흔적과 잔존하는 감각을 중심에 놓는다. 이는 재개발과 갱신이 반복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쉽게 지워지는 것들, 그러나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집요한 응시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를 통해 도시를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계속해서 흔들리고 겹쳐지는 상태로 바라본다.
불광천에서 시작된 관찰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물이 흐르는 하천은 변화의 은유이자 실제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 흐름은 도시의 변화와 맞물리며 또 다른 서사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하천과 도시 경계가 맞닿는 곳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균열을 따라간다.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백로는 전시의 핵심이다. 살아 있는 개체로서의 백로는 이동하고 적응하며 환경에 반응한다. 반면 사라져가는 주거지의 문양 속 학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기호로 남아 있다. 이 둘의 병치는 살아 있는 것과 기호로 남은 것 사이의 긴장을 형성한다.
긴장은 시간의 문제로 확장된다. 실제의 새는 현재를 살아가고, 문에 새겨진 새는 과거의 잔재다. 그러나 이 둘은 동일한 장소에서 겹쳐지며 서로를 호출한다. 이는 도시가 단일한 시간 위에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서로 다른 시간대가 충돌하고 중첩되며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러한 겹침을 ‘잔물결’이라는 개념으로 읽어낸다. 잔물결은 거대한 변화가 아니라, 작고 미세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 작은 움직임은 파동처럼 퍼져 나가며 더 넓은 관계를 만들어낸다. 개인의 이동 경험, 도시의 변화, 비인간 존재의 흔적이 이 파동 속에서 서로 연결된다.
전시에서 도시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관계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는 특정한 풍경을 재현하기보다, 변화하는 관계 자체를 드러내려는 시도다. 작가의 시선은 고정된 이미지를 거부하고, 이동과 변화를 전제로 한 감각을 구축한다.
전시의 형식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시는 작가가 그동안 구축해온 사진, 드로잉, 텍스트, 그리고 아티스트 북을 아우르는 아카이브형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단일 매체로 환원될 수 없는 작가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각각의 매체는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
특히 독립출판물 '잔물결'은 이러한 흐름의 출발점이자 중심이다. 이미지와 텍스트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침투하며, 도시를 읽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이어지는 사진집 '유목적 파동'과 '불광천의 문들'은 이 개념을 더욱 구체화한다. ‘유목적’이라는 개념은 고정되지 않는 이동성을 강조하며, ‘파동’은 그 이동이 만들어내는 확산을 의미한다. 이는 도시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하려는 작가의 태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또한 문이라는 요소는 경계와 통과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사라져가는 주거지의 문에 남아 있는 문양은 과거의 흔적이자, 동시에 현재와 이어지는 접점이다. 작가는 이 문들을 통해 도시의 기억이 어떻게 물질적 형태로 남아 있는지를 탐색한다.
에세이 '의도적 공백'은 이러한 작업에 또 다른 깊이를 더한다. 이미지로 포착되지 않는 부분, 의도적으로 비워진 자리들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는 전시 전반에 흐르는 ‘부재의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국제 플랫폼을 통해 소개된 '잔물결'의 확장성 또한 주목할 지점이다. 특정 지역의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작업은 다른 도시와 환경에서도 유효한 감각을 제안한다. 이는 도시라는 공간이 가진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건드린다.
결국 전시는 도시를 바라보는 감각의 재구성을 요구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것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흔적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명준희의 작업은 거대한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작은 관찰과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더 넓은 관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도시를 더욱 복합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물이 아니어도 새는 앉는다: 잔물결, 유목적 파동 그리고 문의 귀환'은 결국 존재의 조건을 다시 묻는다. 무엇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없어도 여전히 남아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전시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도시 속에서 지속되는 감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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