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삼성전자가 차세대 인공지능(AI) 메모리로 꼽히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4로 양산 4개월 만에 10억달러(약 1조5400억원) 매출을 돌파하며 반격에 나섰다. HBM3E 시장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던 삼성전자가 HBM4 시장에서는 세계 최초 양산을 앞세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월 12일 세계 최초로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한 이후 약 4개월 만에 누적 매출 10억달러를 넘어섰다. 현재 공급 확대 속도를 고려하면 이달 말 기준 매출은 12억달러(약 1조8500억원)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HBM4는 AI 가속기와 데이터센터용 반도체에 탑재되는 핵심 메모리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 처리량이 폭증하면서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 브로드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HBM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번 성과가 단순한 매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한다. HBM 시장의 성장축이 엔비디아 GPU 중심에서 빅테크들의 맞춤형 AI 반도체(ASIC)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 GPU 넘어 ASIC 시대…삼성에 열린 새로운 기회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AI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자체 AI칩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구글의 TPU, 아마존의 트레이니움, MS의 마이아(Maia), 메타의 MTIA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칩은 모두 대용량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하기 위해 HBM을 필수적으로 탑재한다.
ASIC 시장은 특정 목적에 최적화된 설계가 가능해 전력 효율과 비용 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AI 산업이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이동할수록 ASIC 수요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 시장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주요 GPU 업체는 물론 ASIC 기반 하이퍼스케일러들과 공급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 수요가 더 이상 엔비디아 한 곳에만 집중되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빅테크들의 자체 AI칩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HBM 공급 기업들의 고객층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HBM4E·HBM5 승부처…삼성의 반격 시작됐나
삼성전자는 HBM4에 이어 HBM4E 시장 선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HBM4E는 현재 주력 제품인 HBM4보다 성능과 용량을 더욱 높인 차세대 제품이다. 삼성전자의 강점은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역량을 모두 보유한 종합반도체기업(IDM)이라는 점이다. 메모리 공급뿐 아니라 설계와 생산, 패키징까지 통합 제공할 수 있어 AI 반도체 고객사 입장에서는 공급망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최근 글로벌 전략회의에서도 HBM 사업 확대와 고객사 장기공급계약(LTA) 전략을 주요 안건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메모리 수요 급증에 대응해 공급 물량 확대와 고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시장 주도권 경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현재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공급망을 중심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HBM4E와 HBM5 세대에서 공급 안정성과 수율, 고객사 확보 여부가 승부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HBM3E에서는 SK하이닉스가 앞섰지만 HBM4부터는 게임의 룰이 달라지고 있다"며 "AI 반도체 시장이 확대될수록 메모리 성능뿐 아니라 패키징과 공급 능력까지 종합적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HBM 시장 규모가 향후 수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생성형 AI와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속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HBM4 매출 10억달러 돌파는 AI 메모리 시장 주도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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