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슈프림', 진흙탕에서 건져 올린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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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슈프림', 진흙탕에서 건져 올린 성장담

엘르 2026-06-23 03:53:20 신고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는 욕망이 지탱합니다. 누구나 욕망하고 욕망당합니다. 선택권은 없습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응시하기만 해도 무언가를 원하게 되니까요. 많은 사람이 같은 것을 원하면 경쟁이 벌어집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의 생산과 소비를 반복해야 하고요. 경쟁 중인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이 귀찮기 짝이 없는 쳇바퀴를 벗어나는 길은 하나, 1등이 되는 거예요. 거기 따르는 부수적 문제들은 나중 얘기입니다. 욕망은 끝이 없을지 몰라도, 1등이 된 순간 경쟁에서 열외될 수 있습니다. 사회는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며 단 한 자리의 1등을 향한 경쟁을 부추기고요.


영화 〈마티 슈프림〉

영화 〈마티 슈프림〉


영화 〈마티 슈프림〉의 마티 마우저(티모시 샬라메)는 세계 탁구 1등을 노립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낡은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사는 그는 친척의 구두 가게에서 구두를 파는 점원인데요. 동시에 세계 랭킹 2위의 탁구 선수이기도 해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마티의 시대에는 탁구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트로피 수십 개를 따 와도 가족들은 선수 취급을 안 해줬죠. 그래서 마티는 내기 탁구와 탁구 공연을 하며 빛 볼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구두 가게에서 일하는 이유도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 선수권 티켓 값을 벌기 위해서였어요.


영화 〈마티 슈프림〉

영화 〈마티 슈프림〉


우여곡절 끝에 참가한 대회에서 마티는 가볍게 결승전까지 올라갑니다. 상대는 특수한 라켓을 쓰는 무명의 일본 선수 엔도 코토(카와구치 코토)였죠. 마티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구질에 흔들리다 패배합니다. 전범국이라 대회 참가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었던 일본에서 세계 선수권 우승자가 나오자 모두가 엔도에게 주목했습니다. 급기야는 다음 세계 선수권 개최국이 일본으로 선정됩니다. 잉크 회사 재벌 밀튼 록웰(케빈 오리어리)은 엔도와 마티의 일본 친선 경기를 주선하는데요. 선수권 참가를 위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면서요. 마티가 국민 영웅이 된 엔도에게 패하는 장면을 연출해서 회사의 아시아 진출을 홍보하려는 심산입니다. 마티는 록웰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력으로 도쿄행 티켓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이렇게 요약하면 마티는 쉽지 않은 환경에서 '세계 1위'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인 것처럼 들릴지도 몰라요. 사실 그는 천하의 난봉꾼입니다. 어릴 적부터 같은 아파트에 살던 레이철 미즐러(오데사 아지온)는 물론이고, 1930년대 은막의 스타 케이 스톤(기네스 팰트로)과 동시에 불륜을 저지릅니다. 또 마티는 탁구 실력과 퍼포먼스만큼 탁월한 언변으로 모두를 이용합니다. 케이의 남편 록웰, 오랜 친구인 월리(타일러 오코마)를 비롯해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 상황을 자기 뜻대로 구슬리려 하죠. 이미 여러 번 그에게 당한 사람들이 완강한 태도를 보이면 감정에도 호소합니다.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풀릴 때까지 매달리고 드러눕기까지 하니 진상이 따로 없습니다. '세계 1위'가 되지 못한다는 가정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는 과한 자신감도 거슬립니다. "사랑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마티는, 내일을 위해 내일이 없는 듯 사는 신기한 인물입니다.


영화 〈마티 슈프림〉

영화 〈마티 슈프림〉


그런데도 마티가 싫지 않습니다. 일단 욕망한 것을 전부 손에 넣고야 마는 집요한 행동력은 보는 이들까지 두 손 두 발 들게 만듭니다. 목적지가 있지만 거기 도달하기까지 직선의 지름길을 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마티는 굽이친 길들을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이 정도의 외골수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입니다. 그의 주변인이 '한 번만 속아 주기'를 계속하는 이유기도 하겠죠.


인간의 욕망을 그리겠다고 나서는 요즘 콘텐츠들이 그저 배금주의의 재생산에 불과했다면 〈마티 슈프림〉은 다릅니다. 천문학적 금액을 제시하고 그걸 갖겠다며 싸우는 인간들의 밑바닥을 감상하게 하는 찝찝한 콜로세움을 되풀이하지 않아요. 마티는 항상 큰 돈을 벌어다 주겠다며 사람들을 홀리지만 정작 그가 필요로 하는 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목숨 걸 액수는 아니에요. 딱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금전을 원하는 마티는 남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갑니다.


이 싸움이 순수하고 절박하게 다가오는 건 〈마티 슈프림〉이 성장담이기 때문인데요. '광기의 허슬러' 마티는 '노력에 보상이 따른다'는 사회적 구호를 증명하며 살아 왔습니다. 노력이 어떤 형태인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구른 만큼 보상을 받았죠. 그런데 결국은 구조의 벽과 수습하지 못할 수준의 반작용에 부딪힙니다. 마티에게는 노력의 총량과 보상이 항상 비례하지 않으며, 굳건한 확신도 깨질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준 계기였죠. 나아가 목적지와 노력의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배웠을 겁니다. 그는 작은 보상의 연쇄 탓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욕망에 잡아먹히기 직전 자신을 흔들어 깨우며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영화 〈마티 슈프림〉

영화 〈마티 슈프림〉


〈마티 슈프림〉에서는 마티만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을 이용하는 게 아닙니다. 극 중 모든 인물이 그렇습니다. 궁극적 목적은 돈이 아니에요. 각자가 하는 행동의 뒤편에 크기와 모양이 다른 욕망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 행동들이 마티의 인생이라는 큰 흐름을 드라마틱하게 뒤틀어요. 여기서 각본의 기발함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뚝뚝 끊긴다는 인상도 지우기 힘듭니다. 캐릭터들은 어느 순간 마티와 비슷하게 보일 만큼 입체적으로 조성됐는데요. 이들이 에피소드 하나씩 담당했다가 빠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다소 산만해지는 거예요.


다만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산만함을 이겨 버립니다. 그가 〈마티 슈프림〉 프로모션 기간에 보였던 거만한 언행들도 조금은 납득이 될 정도입니다. 만약 티모시 샬라메가 마티 마우저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면 더욱 그래요. 생초보 배우가 아닌 이상, 캐릭터가 독특하면 독특할수록 누가 연기하든 중간은 가기 마련인데요. 마티 마우저는 티모시 샬라메여야만 했습니다. 각본 속 캐릭터의 모사가 아닌 그 인물 자체가 된 모습이었거든요. 감정 없이 사람들을 속이던 마티의 눈에 비로소 감정이 깃드는 후반부의 연기는 압도적입니다. 영화는 7월 1일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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