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울미디어뉴스] 김영미 기자 =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보도자료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표현 중 하나가 ‘전국 최초’다. 어느 도시가 처음 시작했고, 어느 구가 처음 도입했으며, 어느 군이 처음으로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는 문구는 정책의 신선함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다. 행정이 관행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방행정의 가치는 단지 처음 시작했다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도가 주민의 삶에 실제로 닿았는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제도로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만큼 성과와 설득력을 갖췄는지에 있다.
최근 여러 지자체가 복지, 돌봄, 세정, 산업, 청년 정책 분야에서 ‘전국 최초’ 사업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고립·은둔청년 정책에서 2021년 관련 조례 제정과 청년 고립 측정 척도 개발, 2022년 실태조사, 2024년 전담기관인 서울청년기지개센터 개관까지 단계적으로 정책을 확장해왔다. 중요한 것은 ‘최초’라는 이름보다 고립 청년을 발굴하고, 진단하고, 사회 진입까지 연결하려는 누적된 행정 과정이다.
경기도 역시 노인 대상 AI 돌봄서비스와 찾아가는 의료, 디지털 교육 등을 통합 지원하는 ‘AI 시니어 돌봄타운’을 전국 최초로 운영하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술을 복지 현장에 접목한 시도는 의미가 크다. 다만 이 역시 핵심은 AI라는 새로움 자체가 아니라, 어르신의 고립과 건강 위험을 얼마나 촘촘히 줄여나가느냐에 있다.
강남구의 사례도 눈에 띈다. 강남구는 등록면허세 처리에 AI와 디지털트윈을 접목해 행정 효율을 높였고, 이 시스템은 2025년 디지털 서비스 이용·확산 사업에 선정돼 전액 국비 지원을 받았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까지 수상했다.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보다 주목할 대목은 행정 처리 시간을 줄이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적용 가능한 확산형 모델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부산시는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자체 산업혁신구역을 지정해 사상구 삼락동 옛 삼락중학교 부지에 탄성소재연구소를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낙후된 공업지역을 신산업 거점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지역 산업 재편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의 평가는 착공이나 지정 자체가 아니라, 실제 기업 유치와 연구개발 성과, 지역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복지 분야에서는 성동구의 성과가 ‘지속성’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성동구는 보건복지부 주관 2025년 지역복지사업 평가에서 6개 분야 우수기관으로 선정됐고, 의료·요양 통합돌봄 분야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방문형 통합돌봄 서비스와 병원·시설 퇴원환자 연계 등 지역 돌봄체계를 구축한 점이 평가됐다. 이는 ‘처음’보다 ‘꾸준히 해낸 결과’가 정책의 신뢰를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전국 곳곳의 지자체는 각자의 현장에서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다. 어떤 지역은 청년 고립 문제에 먼저 손을 댔고, 어떤 지역은 노인 돌봄에 AI를 접목했다. 또 어떤 곳은 세무 행정의 비효율을 줄였고, 어떤 곳은 낙후 산업 공간을 미래 산업 거점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이 모든 시도는 의미 있는 행정 실험이다.
다만 이제는 ‘전국 최초’라는 타이틀 경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최초는 출발점이지 결승점이 아니다. 주민에게 필요한 정책은 처음 등장한 정책이 아니라 끝까지 작동하는 정책이다. 예산이 끊기면 사라지는 사업, 담당자가 바뀌면 흐지부지되는 사업, 홍보 문구만 화려하고 현장 체감도는 낮은 사업이라면 아무리 최초라 해도 오래 기억되기 어렵다.
지방행정의 진짜 경쟁력은 “누가 먼저 했느냐”보다 “누가 오래, 제대로 해냈느냐”에서 나온다. 정책은 발표되는 순간보다 축적되는 과정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주민 한 사람의 생활을 바꾸고, 지역의 문제를 조금씩 줄이고, 다른 지자체가 참고할 수 있는 모델로 남을 때 비로소 행정의 실험은 성과가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사업이 전국 최초인가가 아니라, 1년 뒤에도 주민 곁에 남아 있을 것인가. 보여주기식 성과가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 지자체의 의미 있는 도전은 ‘최초’라는 문구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그 가치는 결국 지속과 성과 속에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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