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 사이로 갈매기들이 낮게 비행한다. 옅게 낀 구름이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살을 적당히 막아주고 선선한 바닷바람이 간간이 불어 기분이 한껏 들뜬다. 지난 6월 5일 미국 LA 서쪽에 위치한 말리부 피어(Malibu Pier), 제냐의 2027 여름 패션쇼를 보기 위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보다 드라마틱한 장소가 있을까 싶었다. 바다를 향해 일직선으로 힘차게 뻗은 말리부 피어는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도 그 자체로 최고의 런웨이였다.
‘라 빌레자투라(La Villeggiatura)’, 일상에서 벗어나 교외나 해안가에서 길게 머물며 여유를 즐기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는 말로 이번 패션쇼의 출발점이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 이탈리아 상류층에서 시작된 이 문화는 가족과 함께 평상시 향유하던 일상을 그대로 옮겨와 마치 또 하나의 집을 만드는 것과 같았다. 공간은 달라졌지만 익숙한 일상과 품위는 유지하는 것, 그 속에서 속도를 잠시 늦추고 삶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지중해식 문화의 정수이자 이탈리아 고유의 미학을 담고 있는 개념이다. 제냐는 이 라 빌레자투라를 단순히 오래된 전통의 반복이 아닌 현재의 삶과 스타일에 적용했다. 편안하고 자연스럽지만 여전히 품위를 지키는 모습, 거창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아함이 더욱 돋보이는 스타일이 이번 패션쇼를 통해 구현한 오늘날의 라 빌레자투라였다.
“제냐가 생각하는 여름과 이탈리아의 감각이 어우러진 레저웨어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했지만 그 최종 결과물은 어느 한 곳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이고 개방적인 감성을 담으려고 했다. 제냐는 항상 소재와 실루엣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것이 곧 제냐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원단에서 시작한다. 실 한 올과 같은 작은 요소의 변주만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원단의 텍스처와 패턴을 통해 제냐는 늘 진화한다.” 이번 컬렉션에 대한 아티스틱 디렉터 알레산드로 사르토리의 자신감 넘치는 설명이다. 그의 이야기에서도 여러 번 강조됐듯 이번 컬렉션 역시 소재와 원단이 주는 힘이 대단했다. 울, 실크, 개버딘, 포플린, 캔버스, 시어서커, 레더, 벨벳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소재가 최상급으로 사용되었고 풍부한 색감과 고급스러운 질감이 어우러졌다. 과하게 꾸미지 않았지만 품위를 유지하는 것, 편안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바로 이러한 소재와 원단을 통해 구현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레더 소재 슬리퍼와 모카신, 스트라이프 패턴 토트백과 더플백, 스퀘어 프레임 선글라스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스타일의 완성도를 높였다.
Villa Zegna
」말리부 피어 패션쇼 후에는 LA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샤토 마몽(Chateau Marmont)’에서 ‘빌라 제냐(Villa Zegna)’가 열렸다. 2024년 처음 선보인 빌라 제냐는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문화 교류는 물론 삶과 스타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하는 글로벌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초청된 고객이 방문할 수 있는 프라이빗 클럽으로 운영되는 빌라 제냐는 그동안 상하이, 뉴욕, 두바이, 마이애미, 밀라노 등 전 세계 대표 도시를 순회했고 이번에 LA에서도 열린 것. 이번 패션쇼 테마인 라 빌레자투라를 그대로 구현한 빌라 제냐에서는 1970년대 이탈리아의 여름을 마치 실제처럼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빌라 제냐 익스클루시브 컬렉션과 이번 패션쇼에서 공개된 룩을 메이드-투-오더(Made-to-Order) 서비스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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