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선 비평가】낸시랭은 대중문화의 키치함을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끌고 와 스스로를 브랜딩하며 대중과 직접 소통했던, K-팝아트(K-Pop Art)의 독보적인 원형을 구축한 팝아티스트다. 이번 《PLAY》展(2026.6.10.~7.12)을 통해 작가는 기존 자본주의 미술시장의 안전한 문법에서 과감하게 탈피했다. 미학적 상품성이 지닌 오브제들의 ‘균열의 틈’을 주목시키며, 이를 현대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일종의 잔혹극의 형태로 무대에 올린다.
그 틈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작가는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채를 지닌 이색적 캐릭터의 단단한 형체가 캔버스 위에서 해체되는 과정을 통해 이를 변이의 과정이라 명명한다. 전시제목인 ‘놀이(PLAY)’라는 구조 안에서, 그동안 작가의 이름을 둘러싸고 있던 고정관념과 편견의 경계는 깨어지기 시작한다. 여기서의 놀이는 결코 가벼운 유희의 차원이 아님을 선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1872~1945)가 주창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의 맥락처럼, 놀이는 특정 시공간 내에서 스스로 규칙을 부여하고 몰입하는 자발적 행위이자, 그 자체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추동력이다. 작가에게 캔버스는 일상과 분리된 긴장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완고한 자본의 문법을 전복하고 아티스트로서의 탁월함을 증명해 내는 역동적인 유희의 장이 됐다. 그동안 작가가 구축해 온 대표적 아이콘 <버블코코> 를 상기해본다면, 이는 소비사회 속에서도 순수를 잃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마지막 감정 조각이었다. 또 다른 시그니처인 <터부요기니> 는 인간과 기계, 천사와 악마 사이에 태어난 하이브리드 돌연변이 생명체이자 분열된 현대인의 자아를 대변하는 불완전한 수호신의 표본이었다. 매끄럽고 완벽한 이 캐릭터들은 시장이 가장 비싼 값에 소비하고 열광하는 확실한 상업적 브랜드이자 자산이다. 자본의 냉정한 논리로만 본다면, 이 안전하고 견고한 이미지들을 해체하는 것은 무모한 경제적 리스크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기꺼이 그 위험을 택했다. 터부요기니> 버블코코>
“변이는 이미지가 완벽함을 연기하기를 멈추는 순간 시작된다. (Mutation begins where the image stops performing perfection)”- 낸시랭-
매끄러운 가면을 찢고 나온 ‘언캐니의 푼쿠툼’
이번 신작을 통해 낸시랭은 고정되고 관념화된 정체성, 그리고 상품화된 형태의 속성에 종말을 선언한다. 이 해체의 선언은 유희라는 맥락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대상의 경계를 흔든다. 화면 속의 분열된 형체와 왜곡된 신체는 파괴가 아니라 존재의 새로운 각성을 의미한다. 자신에 대한 도전이자 세상의 편견을 깨부수는 자리임을 작업을 통해 증명한 것이다. 자유로운 드로잉 선과 파격적인 형광빛의 색채의 스펙트럼은 리듬감으로 공간을 채워가면서, 그대로의 솔직한 표현이라는 매혹적인 거리로 한 층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한다.
작가는 자신의 아이콘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를 거부하고, 잔혹할 만큼 격렬하게 해체하고 분열시킨다. 박제된 상업적 브랜드에 머물던 도상들이 캔버스의 균열을 통해 생생한 감정을 입고 ‘심리적 풍경(Psychological landscapes)’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한 작가의 예술적 실험을 넘어선 장엄함을 준다. 완벽함을 연기하길 멈춘 자리, 사회가 요구하는 매끄러운 가면 아래에서 기괴하게 흔들리는 캐릭터들은 관객의 무의식을 깊숙이 찌르는 낯설고 기묘한 충격(Uncanny Punctum)으로 기능한다. 작가는 현실과 SNS, 멀티 페르소나 사이에서 정체성의 붕괴를 겪는 현대인의 불안정한 감정 구조를 시각화한다. 고대 신화가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을 상징했다면, 작가의 변이하는 존재들은 현대사회의 실존적 불안을 담아내는 새로운 동시대적 신화 체계로 진입한 것이다.
박제된 아이콘에서 유동적인 액체적 존재로
이 과정에서 낸시랭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처럼 부드럽게 감각의 층위를 표류하게 하는 붓터치, 그리고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 위한 작가만의 유희적 감각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작가는 차갑고 절제된 유머를 넘어 자신의 온전한 감각에 집중하며, 기존의 아이콘들에게 말을 건넨다. 자신의 분신이자 상징적 기호였던 존재들에게 조금 더 관대하게 다가가 해체하고 흔들며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과감해졌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완결되고 깔끔하게 떨어지던 매끄러운 표면의 팝 아이콘들에게 낯선 균열이 불현듯 찾아온 것임은 분명하다. 오늘날의 인간은 결코 하나의 고정된 자아로 존재할 수 없다는 작가의 시각적 선언은, 수많은 페르소나를 생성하고 소비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인 초상의 민낯을 그대로 들추어낸다. 완성된 결과물로서 관람객과 만나는 고착된 상태를 넘어, 새로운 회화적 언어를 통해 유동적인 ‘액체의 형태’로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존재가 된다. 이는 작가가 인간의 감정이 구조화된 틀에 갇히기보다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명체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순수와 욕망, 아름다움과 불안이라는 마찰과 충돌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는 낸시랭의 신작은 동시대의 신화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가 마주한 이 시대라는 거대한 잔혹극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인간성의 단면을 거침없이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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