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20일 "반도체가 벌어온 국부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흡수되고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면 이번 호황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부동산 과세 정상화와 재정 여력 및 기업 이익을 취약층과 미래산업 등으로 연결하는 상상력과 실행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4월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겸 대표 접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스1
김 실장은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명목 10% 후반 경제의 환희, 낯섦,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한국 경제 상황을 '역대급 호황'이라고 평가하며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그는 "올해 한국 경제의 명목 GDP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라며 "주가, 영업이익, 세수, 경상수지. 숫자들이 일제히 좋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숫자만 놓고 보면 환호할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고 운을 뗐다. 그는 "경제 전체가 좋아진 것이 아니다. 주로 반도체와 AI(인공지능) 관련 섹터가 만들어낸 숫자"라고 짚었다.
김 실장은 "하반기가 되면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명품 소비가 살아나고 선호 지역의 부동산 매수 심리도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할 수 있다. 진짜 고비는 연말과 내년 초"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연말부터 기업의 성과급 지급과 임금 인상, 수출 대금 유입 등이 본격화되며 부동산 시장에 시차를 두고 자금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 실장은 "과거를 돌아보면, 이런 돈은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경향을 반복해왔다. 이번에도 예외일 것이라고 쉽게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과세를 정상화해야 한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것만으로 충분할까"라고 반문하며 "세금을 내고도 남는 장사라는 확신이 생기면 어지간한 규제로는 역부족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며 "금리가 오르면 누가 먼저 맞을까. 반도체 성과급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호황을 체감하지 못한 자영업자와 취약차주, 변동금리 대출자들이 먼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호황의 과실은 위로 향하고, 긴축의 고통은 아래로 향한다. 이것이 가장 불편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 전체는 잘 나가는데 정작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은 상황. '경제가 좋다는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지?'라는 질문이 사회 곳곳에서 쌓이기 시작하면 경제 문제는 정치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관건은 이 돈을 어디로 흘려보낼 것인가다"라고 말한 김 실장은 "재정 여력과 기업 이익을 청년과 취약계층, 미래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이번 호황은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저성장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역대급 호황은 그에 걸맞은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 상상력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실행력도 함께"라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지난달에도 "인공지능(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이 끌어낸 결과가 아니다"라며 초과 세수를 국민에 환원하기 위한 '국민배당금제'를 제안한 바 있다.
다음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명목 10% 후반 경제의 환희, 낯섦, 그리고 두려움>
올해 한국 경제의 명목 GDP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1분기 명목 성장률 전년동기대비 17.1%). 우리나라 명목 성장률이 마지막으로 10%대를 기록했던 것은 한일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2002년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환호할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우리 경제는 오랫동안 낮은 한 자릿수 명목 성장에 익숙해져 있었다. 2010년대 평균 5.0%, 2020~25년 평균 4.7%. 기업도, 정부도, 가계도 모두 이 속도에 맞춰 살아왔다. 금리도, 임금도, 부채도. 우리는 어느새 저성장의 리듬에 몸을 맞추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환희: 진짜 돈이 들어왔다
이번 호황은 착시가 아니다. 글로벌 AI 투자 폭발이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렸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폭증했다. 코스피 9000p를 넘어섰고,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 규모로 달러가 실제로 들어오고 있다. 법인세 수입은 급증하여 재정 여유가 생겼다. 국가채무비율은 다시 50% 아래로 내려갈 전망이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도 당초 예상했던 2028년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달성이 가능해졌다.
주가, 영업이익, 세수, 경상수지.
숫자들이 일제히 좋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낯섦: 우리가 잊고 있던 세계
그런데 이 숫자들이 낯설다.
10% 후반의 명목 성장률이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우리는 잊은 지 오래다. 1980년대 평균 17.9%, 1990년대 평균 13.8%의 세상. 그 시절을 경험한 세대도 기억이 희미해졌고, MZ세대에게는 아예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다.
더 낯선 것은 이 호황의 근원이다.
경제 전체가 좋아진 것이 아니다. 주로 반도체와 AI 관련 섹터가 만들어낸 숫자다. 숫자는 1980~90년대의 고성장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성격은 다르다. 그 시절의 명목 성장이 국내 물가 상승의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의 명목 성장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과 기업 수익성 개선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이번 호황은 더 진짜인데, 더 낯설다.
GDP 디플레이터는 10%를 넘겼지만 CPI는 3%에 머물고 있다. 거시지표는 뜨겁지만 자영업자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폭증하는데 동네 상가는 공실을 걱정한다.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향하는데 폐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게다가 반도체 수출 급증에 따른 증시 상승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리밸런싱을 자극하면서, 과거의 상식과는 반대로 원화 약세를 가져오는 역설적인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수입물가와 국내 물가 압력을 높이고, 내수기업들의 채산성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라 전체의 평균은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평균이 모든 사람의 현실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평균은 좋아지는데 중간은 흔들리기 시작할 수도 있다.
두려움: 시차를 두고 밀려오는 압력
이 두려움에는 숫자로 된 증거가 있다.
올 1분기 실질 GDP는 3.8% 늘었다. 우리가 실제로 만든 양이다. 그런데 같은 분기, 실질 GDI는 13.2% 늘었다. 우리가 만든 것을 팔아서 살 수 있는 양이다.
두 숫자의 격차는 9.4%포인트. 지난 25년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기다. 보통 이 둘은 거의 같이 움직인다. 만든 만큼 살 수 있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똑같이 일했는데 살 수 있는 것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반도체 가격이 너무 올라서, 우리가 파는 것의 가격이 우리가 사는 것의 가격보다 훨씬 비싸졌기 때문이다.
이 숫자가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이건 이미 확정된 구매력이다. 다만 아직 전체가 풀리지 않았을 뿐이다.
1분기 통계는 이미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가계와 기업의 손에 들어올 돈이 통계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더 걱정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차를 두고, 파도처럼 밀려온다.
지금 상반기는 아직 조용하다. 주가가 선반영했고, 반도체 벨트가 살짝 들썩이는 정도다. 대부분은 아직 관망 중이다. 사람들은 좋은 숫자들을 뉴스에서 보고는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과 연결된 현실이라고까지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반기가 되면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상반기 실적이 확정되고 성과급 규모가 가시화되면 사람들 마음속에 조금씩 확신이 자리 잡기 시작할 것이다.
“올해는 정말 다르구나.”
명품 소비가 살아나고 선호지역의 부동산 매수 심리도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할 수 있다.
진짜 고비는 연말과 내년 초다.
성과급이 실제로 지급되고 임금 인상이 현실화되고 수출 대금이 국내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행동도 달라진다. 호황을 선반영했던 주식시장도 어느 정도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쌓여 있던 무역흑자가 국내로 환수되면서 원화가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면, 그동안 관망하던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아니면 늦을 수 있다는 조급함도 더 넓게, 더 멀리 퍼져나간다.
한국 경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 장면을 여러 번 경험해왔다. 유동성이 결국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집단적인 학습을 해왔다. 과거를 돌아보면, 이런 돈은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경향을 반복해왔다. 이번에도 예외일 것이라고 쉽게 장담하기는 어렵다.
부동산 과세를 정상화해야 한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이번에는 빚을 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금을 가진 사람들이 움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세금을 내고도 남는 장사라는 확신이 생기면 어지간한 규제로는 역부족일 수 있다.
금리도 마찬가지다. 중동 정세가 안정되고 원화가 정상 수준을 되찾는다면 수입물가 압력은 다소 진정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높은 명목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지금의 금리 수준이 영원히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면 누가 먼저 맞을까.
반도체 성과급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호황을 체감하지 못한 자영업자와 취약차주, 변동금리 대출자들이 먼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호황의 과실은 위로 향하고, 긴축의 고통은 아래로 향한다.
이것이 가장 불편한 그림이다.
나라 전체는 잘 나가는데 정작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은 상황. “경제가 좋다는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지?“라는 질문이 사회 곳곳에서 쌓이기 시작하면 경제 문제는 정치 문제가 된다.
역사적으로 가장 어려운 순간은 불황의 시기가 아니라, 평균은 좋아지는데 중간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비관할 이유는 없다.
냉정하게 보면 이것은 나빠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좋아서 생긴 문제다. 세수가 늘고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고 있다. 과거 위기 때처럼 쓸 돈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과는 다르다.
관건은 이 돈을 어디로 흘려보낼 것인가다.
결국 이것은 단순한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나누고, 지금 생겨난 여유를 어떤 미래로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벌어온 국부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흡수되고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면 이번 호황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재정 여력과 기업 이익을 청년과 취약계층, 미래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이번 호황은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저성장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숫자는 방향을 보여줄 뿐,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저성장에 익숙해진 나머지, 풍요가 가져오는 문제를 다루는 법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난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풍요 역시 언제나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20여 년 만에 찾아온 이 기록적인 번영 앞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마주하지 않았던 종류의 선택을 다시 요구받고 있다.
숫자만 놓고 보면 환호할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무거운 것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종류의 문제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대급 호황은 그에 걸맞은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실행력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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