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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세종병원 손정아 심장이식코디네이터] 장기이식이 필요하고, 환자와 보호자가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모든 환자가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장이식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수술이지만, 동시에 세 사람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 기증자의 숭고한 생명 나눔, 그 심장을 받게 되는 수혜자, 그리고 같은 심장을 기다리고 있는 다음 순위의 대기자.
심장이식센터장님은 병원 교육이나 학회 강의에서 심장이식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늘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심장이식은 한 명의 환자만 보고 결정하는 수술이 아닙니다. 기증자, 수혜자, 그리고 다음 순위 대기자까지 세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수술입니다. 이식이 실패하면 단지 한 환자를 잃는 것이 아닙니다. 기증자의 장기도, 다음 순위 대기자의 기회도 함께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식은 절대 간절함만으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식 대기 등록을 설명할 때마다 나 역시 이 말의 무게를 느낀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원칙이 늘 선명하게만 서 있지 않다. 눈앞에 의식이 있는 환자가 있고, 보호자가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흔들린다. 의학적 판단과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환자는 69세 여성이었다. 체구가 작고 마른 편이었지만 입원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식사도 하며 일상생활을 하던 분이었다. 여러 병원을 다니며 진료를 받던 중 관상동맥질환이 확인되었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천세종병원 응급실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는 처음부터 가볍지 않았다. 심장을 먹여 살리는 관상동맥의 병변도 문제였지만 이미 심장 기능이 매우 떨어져 있었고, 폐부종도 심해지고 있었다.
수술을 한다고 해서 심장 기능이 얼마나 회복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미 손상된 심근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혈관을 이어 준다고 해서 심장이 다시 힘 있게 뛸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약물치료만으로는 폐부종과 심부전을 버티기 어려웠고, 환자는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결국 환자는 응급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았다. 고령의 작은 체구, 심한 심기능 저하, 진행하는 폐부종을 가진 환자에게 개흉 수술은 매우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수술이 환자에게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치료 선택지였다.
수술 직후 경과는 아주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의식이 돌아왔고, 인공호흡기도 제거할 수 있었다. 의료진은 조심스럽게 다음 날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기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수술 후 환자가 의식을 회복하고 인공호흡기까지 제거했을 때, 의료진과 보호자 모두에게는 조심스러운 안도감이 있었다.
“어쩌면 버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날 저녁, 갑자기 심실세동이 발생했다. 모니터 알람이 울리고, 의료진이 뛰어 들어갔다. 제세동이 반복되었고, 항부정맥제가 들어갔다. 심장은 잠시 돌아오는 듯하다가 다시 무너졌다. 환자는 심정지 상태가 되었고, 결국 에크모를 삽입하고 인공호흡기를 다시 적용한 뒤에야 겨우 순환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호자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당연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의식이 있었고, 수술 후 회복을 기대하던 환자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반병동으로 옮길 계획을 이야기하던 환자였다.
“조금만 더 하면 좋아질 수 있는 것 아니냐.”
“이식을 하면 살 수 있는 것 아니냐.”
“환자도 의식이 있는데 포기할 수 없다.”
보호자들의 말은 반복되었다. 환자도 완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진정제를 줄이면 눈을 뜨고, 가족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그 모습은 보호자들에게 더 큰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의료진에게는 더 큰 고민이 되었다.
이식 순위가 가까워졌을 때부터 중환자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이 환자가 이식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여기서 멈추어야 하는가.
심장혈관흉부외과는 수술 가능성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 심장내과는 이식 후 예후와 에크모 유지 기간, 그리고 환자의 전신 상태를 보며 계속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식이 심장을 바꾸는 수술이라고 해도 결국 환자를 살리는 것은 새 심장 하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심정지를 겪었고, 에크모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한 차례 개흉수술까지 받은 69세 환자가 이식이라는 또 한 번의 큰 수술을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단순히 심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장기 관류는 유지되고 있는지, 감염은 없는지, 출혈 위험은 감당할 수 있는지, 에크모 관련 합병증은 없는지, 장 허혈 가능성은 없는지 모두 확인해야 했다. 이식 수술을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지 보다 이 환자가 이식 후 살아서 회복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 고민이 이 환자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식 코디네이터인 나는 KONOS와 연락하며, 동시에 보호자의 얼굴을 보아야 했다. 보호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환자가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이식은 마지막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이식 코디네이터로서 나는 또 다른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 환자가 이식을 받는다는 것은, 같은 심장을 기다리던 다음 순위의 누군가는 그 기회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 사이 KONOS에서 전화가 왔다.
“수혜 결정 언제 가능하실까요?”
“다음 순위 병원에서도 대기 중입니다.”
“결정이 늦어지면 기증자 병원 일정에도 영향이 있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조여왔다. 우리 앞에는 의식이 있는 69세 환자가 있었다. 그 뒤에는 같은 심장을 기다리는 또 다른 환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기증자의 심장이 있었다.
센터장님은 당시 해외 학회 일정 중이었다. 그러나 환자 상태를 들은 뒤, 현지에서 심장혈관흉부외과 의료진과 밤새 통화를 하셨다. 수술을 할 수 있는지, 해서는 안 되는지, 환자가 버틸 수 있을지, 이식 후 회복 가능성이 있는지 반복해서 확인하셨다. 쉽게 “하자”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계속 물으셨다.
“이 환자가 이식을 견딜 수 있을까요?”
“이미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은 환자입니다. 재개흉에 에크모까지 있습니다.”
“장 허혈이나 감염 가능성은 없습니까?”
“신장, 간, 폐 상태는 정말 괜찮습니까?”
“이식 후 회복 가능성을 우리가 어느 정도로 보고 있습니까?”
“이 환자가 내 가족이라면, 나는 이 수술을 권할 수 있을까요?”
센터장님이 고민한 것은 단순히 수술 성공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환자는 이식을 하지 않으면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이식을 한다고 해서 살릴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오히려 이식 수술 자체가 환자에게 마지막 고통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지점이 가장 어려웠다.
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을 환자. 하지만 이식을 해도 죽을 수 있는 환자. 그리고 이식을 하다가 실패하면 기증자의 심장과 다음 순위 대기자의 기회까지 사라지는 상황.
센터장님은 결국 직접 환자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며 일정을 앞당겨 귀국하셨다. 새벽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오셨고, 환자의 기록과 검사 결과를 다시 보셨다.
에크모 flow, 승압제 용량, 젖산 수치, 소변량, 간수치, 신장기능, 감염 지표, 혈소판 수치, 출혈 가능성, 흉부 상태, 이전 수술 기록까지 하나씩 확인하셨다.
환자의 심장만 본 것이 아니었다. 이 환자의 몸 전체가 이식이라는 거대한 수술을 버틸 수 있을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CT를 확인하자고 하셨다. 특히 장 허혈이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에크모 환자에서 허혈성 장손상은 치명적이다. 겉으로는 복부가 심하게 나빠 보이지 않아도, 이미 장 점막 손상이나 허혈이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 그 상태에서 이식을 진행하면 수술은 끝나도 환자는 감염과 패혈증,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에크모와 인공호흡기를 달고 CT실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간호사 4 ~ 5명, 코디네이터, 이송요원, 의료진이 함께 움직여야 했다. 이동용 모니터, 산소, 인공호흡기, 에크모 장비, 주입 펌프들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CT실로 내려가는 몇 분 동안에도 모두가 환자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에크모 flow가 떨어지지는 않는지, 산소포화도가 흔들리지는 않는지, 혈압이 무너지지는 않는지, 누구도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지금 이 상태로 CT까지 가는 것도 환자 목숨 걸고 가는 겁니다.
정말 찍으실 건가요?”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찍어야 했다.
이식을 할지 말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감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 간절함으로도, 불안함으로도 결정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했다.
CT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KONOS에서는 다시 연락이 왔다. 기증자 병원도 기다리고 있었고, 다음 순위 병원도 준비 중이었다. 이식 코디네이터로서 그 시간은 매우 길게 느껴졌다. 내가 들고 있는 전화기 너머로 여러 병원의 시간이 함께 멈춰 있는 것 같았다.
CT 결과를 확인한 뒤, 수술 진행이 결정되었다.
심장혈관흉부외과 의사는 말했다.
“진행합시다. 하기로 했으면 해야 합니다.”
그 의사는 처음 관상동맥우회술을 집도했던 의사였다. 자신이 수술했던 환자였고, 갑작스러운 심정지 이후 에크모까지 간 환자였기 때문에 더 간절했을 것이다.
수술방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도 그 의사는 환자 곁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단순한 의학적 결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진도 환자를 포기하기 어렵다. 특히 환자가 의식이 있고, 보호자가 끝까지 매달릴 때는 더 그렇다.
그러나 나는 마음 한쪽이 계속 무거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환자의 이식을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았다. 환자가 의식이 있었고, 보호자들이 너무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이식을 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을 충분히 하고 진행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계속 질문이 남아 있었다.
이 환자가 정말 이식을 견딜 수 있을까. 이식이 이 환자에게 새로운 삶이 될까. 아니면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더 길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보호자의 간절함에 너무 가까이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환자가 의식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멈추어야 할 지점을 지나친 것은 아닐까.
센터장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진행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 결정이 기쁘거나 확신에 찬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자가 제일 어렵습니다. 이식을 안 하면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식을 한다고 살릴 수 있다는 확신도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하는 결정이 치료인지, 욕심인지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의료진의 욕심이라는 말은 때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욕심은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욕심이다. 조금만 더 해보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보호자의 눈물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의식이 있는 환자의 눈빛을 보고 돌아서지 못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식에서는 그 마음조차 조심해야 한다. 심장은 한 개뿐이다. 그 심장을 기다리는 사람은 여러 명이다. 그리고 이식이 실패하면, 환자 한 명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에크모 환자는 이식 전부터 이미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항응고제로 인한 출혈, 삽입 부위 감염, 혈전, 뇌출혈, 위장관 출혈, 신장기능 악화, 간기능 악화, 패혈증이 모두 가능하다.
특히 장 허혈은 매우 치명적이다. 에크모로 인해 혈류가 비맥박성으로 바뀌고, 저혈압과 염증반응이 겹치며 장 점막의 혈류가 떨어질 수 있다. 장 점막이 손상되면 세균과 독소가 전신으로 유입되고, 이는 복막염과 패혈증,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빠르게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CT를 찍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한 마지막 확인이었다. 그러나 모든 위험을 완벽하게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이 환자의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
수술방으로 환자를 보내기 전, 보호자들은 다시 한 번 환자의 손을 잡았다. 환자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눈을 뜨고 있었다. 보호자들은 그 눈을 보고 끝까지 희망을 놓지 못했다. 나도 그 장면 앞에서는 쉽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식 코디네이터는 희망을 연결하는 사람이다. 기증자와 수혜자, 의료진과 보호자, KONOS와 병원을 연결한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의 한계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식이 가능하다는 말보다, 이식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말은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때로는 그것이 환자를 위한 마지막 책임일 수 있다.
이 환자는 내게 그 사실을 다시 가르쳐 준 환자였다.
이식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은 “해도 되는가”다. 수술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그 수술이 환자에게 좋은 결정이라는 것은 다르다. 환자와 보호자가 원한다는 것과, 의료진이 권해야 하는 치료라는 것도 다르다. 의식이 있는 환자라고 해서 반드시 끝까지 모든 치료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말하는 일은 너무 어렵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계속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그때 우리는 충분히 멈추어 생각했을까. 그때 나는 더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을까. 그 결정은 확신이었을까, 아니면 환자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만든 욕심이었을까.
내 가족이라면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같은 심장을 기다리던 다음 환자에게도, 나는 이 결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식은 언제나 확신과 욕심 사이에 있다. 확신이 충분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순간도 있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지금 이 결정은 정말 환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포기하지 못해서 붙잡고 있는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이식은 없다. 그래서 이식은 어렵다. 그리고 그래서, 이식은 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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