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꽁치와 함께 바다를 대표하는 등푸른생선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겨울철 말린 과메기로만 주로 기억되는 생선이 있다. 바로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수많은 문화권의 식탁을 채워온 ‘청어’다.
청어는 몸속에 기름기가 풍부하고 영양가가 높아 유럽에서는 ‘바다의 밀’이라고 불릴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요리로 쓰이는 반면, 한국에서는 과메기 외의 조리법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아 낯선 식재료가 되었다. 한때는 서민들의 기운을 돋아주던 친숙한 생선에서 이제는 아는 사람만 찾는 별미가 된 청어의 숨겨진 이야기와 재미있는 상식들을 소개한다.
교토 명물 소바부터 유럽의 삭힌 별미까지
일본에서 청어는 오랜 역사를 지닌 귀한 식재료다. 특히 교토에서는 짭조름하게 조린 청어를 메밀국수 위에 얹어 먹는 '청어 소바'가 200년 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과거 일본에서는 메밀국수를 주식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채소 중심의 식단 탓에 영양가가 낮아 기력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청어를 함께 곁들이기 시작했고, 이 식문화가 오늘날 교토를 대표하는 명물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유럽 대륙에서도 청어의 입지는 독보적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치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민 식품으로 꼽히며, 핀란드에서는 훈제 요리로, 스웨덴에서는 수르스트뢰밍의 재료로 쓰인다.
과거 냉장 기술이 없던 유럽에서는 청어를 육지까지 신선하게 나르는 일이 숙제였다. 그러다 한 어부가 청어의 천적인 메기를 수조에 함께 넣으면, 청어들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 신선함이 오래 유지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유럽 전역에 청어 유통망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난중일기 속 수군을 살린 비유어
조선 시대만 해도 청어는 밤하늘의 별만큼 흔하고 대중적인 생선이었다. 오죽하면 돈 없는 선비를 살찌우고 건강하게 만드는 고기라는 뜻에서 ‘비유어(肥儒魚)’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굶주린 수군들의 군량미를 대신해 청어를 잡아 식량 자원으로 요긴하게 썼다는 기록이 또렷이 남아 있다. 과거에는 구이, 찜, 조림, 전, 식해 등 상에 올릴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조리되던 대중 보양식이었다.
이처럼 친숙하던 청어가 우리 식탁에서 멀어진 계기는 기후 변화와 어획량 감소 탓이다. 수온이 오르면서 청어 무리가 살기 좋은 차가운 바다를 찾아 점차 북쪽으로 올라가 버렸고, 동해안에서 청어가 씻은 듯이 사라지자 어민들은 그 자리를 대신해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청어는 꽁치에 비해 잔가시가 많고 살이 연해 말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어, 가공과 섭취가 편한 꽁치에 대중적인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패션 디자인의 시초가 된 청어 가시의 비밀
청어는 몸속에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깨물었을 때 입안 가득 고소한 풍미가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불포화 지방산은 사람의 혈관 속 노폐물을 깨끗하게 청소해 피를 잘 돌게 돕는 이로운 성분이다. 청어는 가시가 무척 많지만, 뼈 자체가 아주 연하고 부드러워 뼈를 일일이 바르지 않고 두툼하게 썰어 회무침으로 먹으면 칼슘과 비타민을 통째로 섭취할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세련된 코트나 바닥재 패턴으로 자주 접하는 '헤링본' 무늬의 어원이 바로 이 청어 가시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다. 헤링본은 직역하면 '청어의 뼈'라는 뜻이다. 청어의 가시가 중심축을 기준으로 'V'자 모양으로 촘촘하고 규칙적으로 늘어선 모습이 마치 균일한 화살표 무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 온도를 알려주는 지표
청어는 차가운 바닷물을 좋아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동해 바다의 온도가 낮아지는 겨울철에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한동안 동해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청어가 수십 년 만에 다시 포항 구룡포 앞바다에 무더기로 걸려 올라오기 시작한 적이 있는데, 이는 동해의 수온이 청어가 살기에 알맞은 청정 상태로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그물에 걸려 올라온 청어는 크기와 신선도에 따라 버릴 것 하나 없이 귀하게 쓰인다. 씨알이 굵고 싱싱한 최상품은 횟감이나 조림용으로 수산시장에 팔려 나가거나 과메기 덕장으로 이동한다. 반면 크기가 작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개체는 가축의 사료로 쓰이거나, 바다 속 게와 다른 물고기를 유인하는 통발 안의 미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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