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대신 경험 중시, 고졸 배제·스펙 사교육 경쟁 우려
'천재 우대 없는 공채'는 포퓰리즘, 파격적 인사 설계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미국의 글로벌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학벌 중심 채용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명문대를 나오지 못하면 신입으로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AI의 양대 강자인 오픈AI와 앤트로픽 직원들의 출신 대학을 보면 스탠퍼드, MIT, 하버드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문과생들에게 꿈의 직장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컨설팅 기업 매켄지는 더 노골적으로 학벌을 본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아이비리그를 중심으로 채용 풀을 운용하고 있다. 비명문대 출신이 이 장벽을 뚫으려면 소수 인종이거나 부모의 인맥과 재산, 군 복무 등 남다른 배경이 요구된다.
기업들이 학벌을 중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쉽게 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천, 수만 장의 지원서를 일일이 검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 간판은 가장 빠르고 비용이 안 드는 1차 필터로 작동한다. 학벌이 곧 실력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검증을 이미 거쳤다는 기본 인사 자료로 기능하는 것이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삼성전자는 줄곧 공채 시험으로 직원을 선발해 왔다. 그 결과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반도체 시장 최상위 경쟁력이어서 공개 채용이 닫힌 채용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한편으론 삼성이 지역균형 등 정치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미국처럼 검증된 소수를 뽑고 우대해 파격적 보상을 제공했다면 오픈AI를 뛰어넘는 성과를 냈을 것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SK하이닉스가 최근 신입 채용에서 학력 자격 요건을 폐지했다는 소식이다. 하이닉스를 꿈의 직장으로 여기는 많은 취업준비생들에게 반가운 변화일 수 있지만, 학력 대신 경험과 기업문화 적합성을 보겠다는 말은 또 다른 형태의 '희망고문'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고교생에게 경험을 요구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불분명한 기준은 결국 또 다른 '스펙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삼성 공채가 낳은 부작용이 보여주듯, 이는 사교육 시장을 키우고 취업난 가중과 회사 내 유휴인력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해법은 분명하다. 수학·물리 올림피아드 메달리스트 같은 검증된 이공계 천재라면 연령 제한 없이 선발하고, 이들에게 압도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보너스를 포함해 초봉으로 7억~10억원 안팎을 지급하는 퀀트 기업 제인스트리트의 경우 학교 간판 대신 수학적 사고력을 검증하는 자체 시험으로 인재를 선발한다.
SK하이닉스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고교 수재들에게 의대보다 하이닉스 연구소가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의대 쏠림 현상도 흔들 수 있다. 이 기회에 SK하이닉스가 삼성도 시도하지 못한 영역에 과감히 도전해봤으면 한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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