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픽] 세계은행 “가격표에 숨은 비용까지 보라”… K-보조금, 눈에 안 보이는 비용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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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0:00 기준

[로드픽] 세계은행 “가격표에 숨은 비용까지 보라”… K-보조금, 눈에 안 보이는 비용 살펴야

뉴스로드 2026-06-19 14:26:13 신고

​세계은행이 태양광과 풍력, 석탄발전 효율 개선, 전기차 보조금의 공공자금 한계가치(MVPF)를 국가·지역별로 비교한 결과다. 한국은 태양광과 석탄발전 효율 개선 부문에서 비교 대상 가운데 가장 높은 중앙값을 기록했다. 풍력은 인도와 중국, 전기차는 노르웨이의 재정 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파란 점은 중앙값, 막대는 추정치의 25~75분위 구간을 나타낸다. [자료=세계은행]​
​세계은행이 태양광과 풍력, 석탄발전 효율 개선, 전기차 보조금의 공공자금 한계가치(MVPF)를 국가·지역별로 비교한 결과다. 한국은 태양광과 석탄발전 효율 개선 부문에서 비교 대상 가운데 가장 높은 중앙값을 기록했다. 풍력은 인도와 중국, 전기차는 노르웨이의 재정 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파란 점은 중앙값, 막대는 추정치의 25~75분위 구간을 나타낸다. [자료=세계은행]​

정부가 기업과 국민을 지원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직접 돈을 주거나, 상품의 가격을 묶는 것이다. 전자는 예산서에 보조금으로 찍힌다. 후자는 전기와 가스, 교통, 금융 같은 서비스의 가격표에 숨어 있다. 당장은 정부가 돈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공기업의 손실과 정책금융기관의 이자수입 감소, 지급보증과 자본확충을 거쳐 언젠가 세금이나 요금 인상으로 돌아온다.

한국의 보조금 정책을 다시 짜려면 지원금 총액보다 먼저 이 ‘가격표 밖의 회계’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은행이 내놓은 ‘세계 가격규제에 관한 기업 단위 데이터 분석’과 ‘보조금에 중독되다: 개혁의 필요성’을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종합한 결과다.

가격규제와 재정보조금은 서로 다른 정책처럼 보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같은 이전지출일 수 있다. 정부가 기업에 100원을 지급하는 것과 공기업 상품을 원가보다 100원 싸게 팔도록 요구하는 것은 수혜자 입장에서 같다. 달라지는 것은 비용을 언제, 누가, 어떤 장부에 기록하느냐다.

세계은행은 103개국 기업을 조사해 기업이 판매하는 주력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정부가 규제하는지 물었다. 조사 대상 기업의 평균 12%가 가격규제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규제 비율은 낮아졌지만 단순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로만 설명되지는 않았다.

세계은행이 분류한 보조금 회계의 범위. 정부가 파악하는 기업·가계 직접지원과 조세지출 외에도, 원가회수 수준에 미달하는 공공요금 정책에 따른 암묵적 보조금, 정책금융기관의 저리대출 및 우대금리 제공으로 발생하는 이자수익 감소분,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자본출자 및 재정지원, 특정 기업 또는 산업에 대한 우대조달 제도, 신용보증·예금보호제도 등과 같은 잠재적 재정지원이 존재한다. 이러한 지원은 국가재정 및 공공부문 회계장부에 직접 계상되지 않거나 객관적 금액 산정이 어려워 보조금 규모의 정확한 측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자료=세계은행]
세계은행이 분류한 보조금 회계의 범위. 정부가 파악하는 기업·가계 직접지원과 조세지출 외에도, 원가회수 수준에 미달하는 공공요금 정책에 따른 암묵적 보조금, 정책금융기관의 저리대출 및 우대금리 제공으로 발생하는 이자수익 감소분,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자본출자 및 재정지원, 특정 기업 또는 산업에 대한 우대조달 제도, 신용보증·예금보호제도 등과 같은 잠재적 재정지원이 존재한다. 이러한 지원은 국가재정 및 공공부문 회계장부에 직접 계상되지 않거나 객관적 금액 산정이 어려워 보조금 규모의 정확한 측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자료=세계은행]

▲ 가격규제, 독과점·과당경쟁서 동반 성장

가격규제는 경쟁자가 적은 독과점 시장에서 높았다. 주력 시장의 경쟁자가 4곳 이하인 기업 가운데 약 12%가 가격을 규제받았다. 경쟁자가 5~9곳이면 약 10%, 10~50곳이면 7%대로 낮아졌다.

그러나 경쟁자가 50곳을 넘으면 가격규제 비율은 약 14%로 다시 뛰었다. 시장집중도가 높을수록 규제가 증가한다는 통념과 달리 경쟁이 지나치게 분산된 시장에서도 정부 개입이 늘어난 것이다. 가격규제와 경쟁자 수의 관계가 직선이 아니라 ‘U자형’을 보였다.

양쪽 끝에서 개입 이유는 다르다. 독과점 시장에서는 지배적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규제가 들어온다. 기업이 지나치게 많은 시장에서는 가격 변동이 커지고 생필품 공급과 소비자 보호 문제가 생기면서 정부가 가격을 붙잡는다.

한국에 중요한 대목은 두 번째다. 국내 가격정책 논쟁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독점력을 억제하는 문제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세계은행 분석은 소규모 사업자가 밀집한 시장에서도 가격규제가 강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격을 계속 눌러 놓으면 낮은 생산성의 사업자가 시장에서 빠져나가거나 규모를 키울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 가격규제가 소비자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시장의 재편을 막는 장벽이 되는 것이다. 경쟁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볼 수 없는 까닭이다.

세계은행이 103개국 기업을 대상으로 주력 시장의 경쟁업체 수와 가격규제 적용 비율을 분석한 결과다. 가격규제 비율은 경쟁업체가 4곳 이하인 시장에서 약 12%를 기록한 뒤 10~50곳 구간에서 7~8%대로 낮아졌지만, 경쟁업체가 50곳을 넘는 시장에서는 약 14%로 다시 상승했다. 독과점 시장뿐 아니라 경쟁이 지나치게 분산된 시장에서도 정부의 가격 개입이 늘어나는 ‘U자형’ 관계가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함께 나타났다. 음영은 추정치의 95% 신뢰구간을 표시한다. [자료=세계은행]
세계은행이 103개국 기업을 대상으로 주력 시장의 경쟁업체 수와 가격규제 적용 비율을 분석한 결과다. 가격규제 비율은 경쟁업체가 4곳 이하인 시장에서 약 12%를 기록한 뒤 10~50곳 구간에서 7~8%대로 낮아졌지만, 경쟁업체가 50곳을 넘는 시장에서는 약 14%로 다시 상승했다. 독과점 시장뿐 아니라 경쟁이 지나치게 분산된 시장에서도 정부의 가격 개입이 늘어나는 ‘U자형’ 관계가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함께 나타났다. 음영은 추정치의 95% 신뢰구간을 표시한다. [자료=세계은행]

▲ 공기업 서비스 가격, 규제 최전선에 

가격규제는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서 강했다. 민간 국내기업이 가격규제를 받는 비율은 제조업 11.2%, 서비스업 12.5%였다. 외국계 기업은 각각 7.7%, 11.3%였다.

정부가 지분을 가진 기업에서는 격차가 커졌다. 국영 또는 국가 지분 참여 기업의 가격규제 비율은 제조업에서 15.2%, 서비스업에서는 31.1%였다. 서비스 부문의 국가 참여 기업은 민간 국내기업보다 가격규제 가능성이 약 2.5배 높았다.

공기업이 요금 인상을 자제하면 국민은 낮은 가격이라는 혜택을 얻는다. 그러나 원가와 판매가격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기업이 투자를 미루거나 부채를 늘리고, 정부가 나중에 자본을 넣으면 가격규제는 시간차를 둔 재정보조금으로 바뀐다.

세계은행이 103개국 기업을 소유구조와 업종별로 나눠 가격규제 적용 비율을 비교한 결과다. 국가 지분이 51% 이상인 기업의 가격규제 비율은 제조업 15.2%, 서비스업 31.1%로 민간 국내기업과 외국계 기업보다 높았다. 서비스업의 국가 참여 기업은 민간 국내기업(12.5%)보다 가격규제를 받는 비율이 약 2.5배 높았다. 완전 국영기업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료=세계은행]
세계은행이 103개국 기업을 소유구조와 업종별로 나눠 가격규제 적용 비율을 비교한 결과다. 국가 지분이 51% 이상인 기업의 가격규제 비율은 제조업 15.2%, 서비스업 31.1%로 민간 국내기업과 외국계 기업보다 높았다. 서비스업의 국가 참여 기업은 민간 국내기업(12.5%)보다 가격규제를 받는 비율이 약 2.5배 높았다. 완전 국영기업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료=세계은행]

▲ 보조금 진짜 규모는 예산서 밖에 있다

세계은행은 원가를 반영하지 않은 공공요금, 정책금융기관의 저리대출, 공기업 자본확충, 정부보증, 국내 기업에 유리한 공공조달까지 넓은 의미의 보조금으로 분류했다. 정부의 현금지출뿐 아니라 받지 못한 세금과 이자, 정부가 대신 떠안은 위험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을 한국에 적용하면 보조금 장부는 예산서보다 넓어져야 한다. 특정 산업에 지급한 현금과 세액공제뿐 아니라 정책대출의 시장금리와 실제금리 차이, 공기업의 원가 미달 요금, 정부보증의 예상손실, 공공조달에서 추가로 지급한 가격까지 포함해야 한다.

정부가 당장 현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손실이 공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남아 있는 동안 재정지출이 뒤로 밀렸을 뿐이다. 보조금을 삭감했다고 발표하면서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거나 보증을 늘리면 국가가 부담하는 경제적 비용은 줄지 않는다.

세계은행 분석에 따르면 기업과 가계에 대한 직접 지원이 늘어난 국가는 이를 주로 재정적자와 차입 확대, 세금 인상, 다른 지출의 축소로 충당했다. 공공투자를 줄여 보조금 재원을 마련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보조금 1원을 늘리는 결정은 당해 연도 지출 1원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의 이자비용과 투자 감소까지 불러올 수 있다.

세계은행이 1994~2024년 신흥·개도국에서 기업·가계 직접지원이 늘어난 사례의 재원 조달 방식을 분석한 결과다. 지원 확대 사례의 42%는 재정적자 증가 또는 흑자 축소 등 차입 확대와 연결됐고, 31%는 세수·보조금 등 수입 증가, 27%는 기존 지출 재배분으로 충당됐다. 세부적으로는 적자지출 확대가 35%로 가장 많았으며, 공공투자 축소도 21%를 차지했다. [자료=세계은행]
세계은행이 1994~2024년 신흥·개도국에서 기업·가계 직접지원이 늘어난 사례의 재원 조달 방식을 분석한 결과다. 지원 확대 사례의 42%는 재정적자 증가 또는 흑자 축소 등 차입 확대와 연결됐고, 31%는 세수·보조금 등 수입 증가, 27%는 기존 지출 재배분으로 충당됐다. 세부적으로는 적자지출 확대가 35%로 가장 많았으며, 공공투자 축소도 21%를 차지했다. [자료=세계은행]

▲ 숨은 지원 청구, 부채·투자 축소로 회귀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의 차이는 어떤 장부를 통해 지원하느냐에서 나타난다. 세계은행 가격규제 도표에서 중국 기업이 정부의 가격통제를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13% 수준이었다. 미국은 지역별로 대체로 0~5%에 머물렀다.

한국과 일본의 개별 수치는 보고서 도표에 별도로 표시되지 않았다. 다만 고소득 국가일수록 가격규제가 적다는 전체 경향과 국영 서비스기업에서 규제가 집중된다는 소유구조별 결과는 두 나라에도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미국은 가격을 직접 묶기보다 세액공제와 재정지출, 정책신용을 통해 투자와 소비를 움직이는 방식에 가깝다. 일본도 위기 때 정부 신용을 대규모로 동원했다. 코로나 사태 당시 미국과 일본이 제공한 보조성 신용의 규모는 각각 국내총생산의 약 4%로 추산됐다.

중국은 보이는 보조금과 보이지 않는 보조금을 함께 쓴다. 중국의 보조성 신용 비용은 국내총생산의 약 0.5%, 정부가 토지를 시장가격보다 싸게 공급하면서 발생한 비용은 약 0.25%로 추산됐다. 국유은행의 저리대출과 지방정부의 토지공급, 국유기업의 가격정책을 결합해 기업의 생산비를 낮추는 구조다.

미국과 일본의 위기대응 신용지원 비율이 중국보다 높았다는 사실이 중국의 실제 지원 규모가 작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지원은 재정과 금융계정에서 비교적 빨리 드러난다. 중국식 지원은 국유기업과 지방정부, 토지, 금융기관의 재무제표에 분산될 수 있다.

보조금 경쟁을 총액으로만 비교하면 중국의 비용을 과소평가하고 미국의 비용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 국가 간 산업정책을 비교하려면 예산지출뿐 아니라 정부가 포기한 수입과 공공기관이 떠안은 손실, 미래에 현실화할 보증까지 같은 기준으로 환산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식 대규모 재정지출이나 중국식 국유금융을 그대로 복제하기 어렵다. 일본처럼 장기간 정책신용을 확대하는 방식도 금리와 인구, 재정여건에 따라 부담이 달라진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지원의 규모가 아니라 한정된 재정을 어디에 투입할 때 가장 큰 사회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가다.

세계은행이 OECD 자료를 토대로 각국의 전체 보조금 가운데 연구개발(R&D)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한 결과다. 한국의 R&D 지원 비중은 약 4%로 일본과 프랑스, 뉴질랜드보다 낮았고, 헝가리와 이탈리아, 이스라엘은 10%를 웃돌았다. 고소득국에서도 생산과 소비를 지원하는 보조금에 비해 기술혁신을 위한 R&D 지원 비중은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세계은행·OECD]
세계은행이 OECD 자료를 토대로 각국의 전체 보조금 가운데 연구개발(R&D)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한 결과다. 한국의 R&D 지원 비중은 약 4%로 일본과 프랑스, 뉴질랜드보다 낮았고, 헝가리와 이탈리아, 이스라엘은 10%를 웃돌았다. 고소득국에서도 생산과 소비를 지원하는 보조금에 비해 기술혁신을 위한 R&D 지원 비중은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세계은행·OECD]

▲같은 보조금 1달러, 기술에 따라 편익은 달랐다

세계은행은 이를 ‘공공자금의 한계가치’로 측정했다. 정부가 보조금 1달러를 썼을 때 탄소 감축과 기술 확산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편익이 몇 달러인지를 계산한 지표다. 지표가 1이면 정부지출과 사회적 편익이 비슷하고, 1을 크게 넘으면 투입한 재정보다 사회적 가치가 크다는 뜻이다.

한국의 결과는 녹색산업 정책의 우선순위가 지금의 산업별 목소리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태양광 지원에서 한국의 공공자금 한계가치 중앙값은 4를 웃돌아 미국과 일본, 중국을 모두 앞섰다. 정부가 1달러를 투입했을 때 기후비용 감소와 학습효과를 포함한 사회적 편익이 4달러 이상이라는 의미다.

태양광에서 일본과 중국, 미국의 수치는 모두 2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네 나라 가운데 한국의 태양광 지원 효율이 뚜렷하게 높게 나타났다. 태양광 산업의 생산 경험과 기술학습, 보급 확대가 비용 하락으로 이어지는 속도가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크다는 모형 결과다.

풍력은 순서가 달랐다. 중국의 공공자금 한계가치가 4 안팎으로 가장 높았고 미국은 3을 웃돌았다. 한국은 약 2, 일본은 1대 중반이었다. 한국에서 풍력 지원도 사회적 편익이 비용보다 크지만 중국과 미국만큼 높은 수익을 내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석탄발전 효율 개선에서는 한국이 네 나라 중 가장 높았다. 그러나 중앙값은 약 1.3에 불과했다. 미국과 중국은 1.2 안팎, 일본은 1 수준이었다. 여기서 순위와 경제성은 구분해야 한다. 한국이 석탄 효율 개선에서 1위라고 해도 태양광 지원의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다른 나라보다 낫다는 상대평가가 해당 사업에 재정을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절대평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전기차 구매지원은 일본과 미국이 약 1.5, 중국이 1 안팎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해당 전기차 비교도표에 수치가 제시되지 않았다. 세계은행도 전기차와 석탄효율 개선 보조금의 공공자금 한계가치가 대체로 1 안팎에 머물고, 풍력과 태양광은 평균 3.08과 2.19로 훨씬 높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의 탄소중립 예산을 자동차 판매대수나 발전설비 설치량으로만 배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같은 1조원을 써도 기술의 학습속도와 공급망 파급효과, 탄소감축량에 따라 국민에게 돌아오는 가치가 달라진다.

세계은행이 2009~2020년 소득수준별 법인세 투자 인센티브를 비교한 결과다. 개발도상국의 평균 인센티브 수는 40개에서 60개로 늘어 고소득국의 18개에서 30개를 크게 웃돌았다. 반면 설비·연구개발·고용 등 실제 투자비용에 연동하는 비용기반 인센티브 비중은 고소득국이 54.5%에서 71.3%로 높아진 데 비해 개발도상국은 48.8%에서 42.2%로 낮아졌다. [자료=세계은행]
세계은행이 2009~2020년 소득수준별 법인세 투자 인센티브를 비교한 결과다. 개발도상국의 평균 인센티브 수는 40개에서 60개로 늘어 고소득국의 18개에서 30개를 크게 웃돌았다. 반면 설비·연구개발·고용 등 실제 투자비용에 연동하는 비용기반 인센티브 비중은 고소득국이 54.5%에서 71.3%로 높아진 데 비해 개발도상국은 48.8%에서 42.2%로 낮아졌다. [자료=세계은행]

▲ 소비지원은 선별적으로, 산업지원은 투자와 연계

전기차 구매보조금은 이미 자동차를 살 능력이 있는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완성차 판매는 늘어도 충전망과 전력계통, 배터리 재활용, 핵심소재 기술이 함께 발전하지 않으면 보조금이 산업 경쟁력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반면 기술학습 효과가 큰 분야에 대한 지원은 생산량이 늘수록 단가가 낮아지고, 낮아진 단가가 다시 수요를 늘리는 순환을 만든다. 세계은행은 이 같은 ‘학습에 의한 비용 하락’ 때문에 풍력과 태양광 보조금의 재정 효율이 높다고 봤다.

한국의 정책은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을 낮추는 지원과 산업의 생산비를 낮추는 지원을 분리해야 한다. 취약계층의 전기료나 교통비 부담을 줄이는 목적이라면 사람을 선별해 현금을 지원하는 편이 낫다. 모든 소비자의 가격을 낮추면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고소득층과 대기업이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산업 육성이 목적이라면 기업의 이익을 보전하는 보조금보다 연구개발과 설비, 인력, 전력망처럼 생산성을 높이는 비용에 지원을 붙여야 한다. 기업이 지원금 없이도 투자했을 사업인지, 지원으로 추가 투자가 발생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기업이 이미 벌어들인 이익에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은 과거 투자에 보상할 가능성이 크다. 설비와 연구개발, 고용에 실제로 돈을 쓸 때 지원하는 방식은 기업의 미래 행동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세계은행이 이익 기반 법인세 감면보다 비용 기반 세제지원을 권고한 이유다.

가격규제도 시장구조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독과점 시장에서는 경쟁정책과 원가검증, 한시적 상한제가 필요할 수 있다. 경쟁자가 지나치게 많은 시장에서는 가격을 직접 묶기보다 사업자의 퇴출과 통합, 디지털화와 표준화를 막는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두 시장에 같은 가격통제를 적용하면 독과점에서는 기업의 초과이윤을 억제할 수 있지만 과당경쟁 시장에서는 영세성을 고착시킬 수 있다.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같은 명분이 시장구조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세계은행이 신흥·개도국의 보조금 재정비용을 분석한 결과다. 2020~2024년 보조금은 중위값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6.9%, 정부 수입의 약 26%, 정부 지출의 약 21%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기업과 가계에 대한 직접지원의 GDP 대비 비중이 모두 확대됐고, 조세지출도 2.6%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왼쪽 그래프의 점은 중위값, 음영은 25~75분위 범위를 나타낸다. 조세지출은 2019년과 2022년, 기업·가계 직접지원은 2019년과 2023년을 비교했다. [자료=세계은행]
세계은행이 신흥·개도국의 보조금 재정비용을 분석한 결과다. 2020~2024년 보조금은 중위값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6.9%, 정부 수입의 약 26%, 정부 지출의 약 21%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기업과 가계에 대한 직접지원의 GDP 대비 비중이 모두 확대됐고, 조세지출도 2.6%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왼쪽 그래프의 점은 중위값, 음영은 25~75분위 범위를 나타낸다. 조세지출은 2019년과 2022년, 기업·가계 직접지원은 2019년과 2023년을 비교했다. [자료=세계은행]

▲ 한국 보조금 개혁, 통합 장부와 성과평가에서 시작해야

한국 보조금 개혁의 출발점은 통합 장부다. 정부는 현금보조와 세액공제, 정책금융, 지급보증, 원가 이하 공공요금, 공기업 자본확충을 하나의 ‘보조금 지출명세서’로 묶어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는 지원 목적을 물가 안정과 소득보전, 산업육성, 탄소감축으로 구분해야 한다. 한 제도에 네 가지 목표를 얹으면 어느 목표도 평가할 수 없다.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작한 가격규제가 기업보조금이 되고, 산업을 키우기 위한 세액공제가 기존 대기업의 이익만 늘릴 수 있다.

지원에는 종료조건도 붙어야 한다. 기술이 충분히 보급돼 시장가격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되면 보조금을 줄이고 경쟁입찰로 전환해야 한다. 반대로 장기 학습효과가 확인되는 기술은 단년도 집행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보조금 총액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과 같은 정책을 그대로 베끼는 것도 답이 아니다. 한국의 경쟁력은 지출액이 아니라 선별력이다. 어느 기술이 비용을 가장 빠르게 낮추고, 어느 보조금이 민간투자를 실제로 추가하며, 어느 가격규제가 소비자를 보호하면서도 시장의 생산성을 훼손하지 않는지 가려내야 한다.

보조금의 반대말은 시장이 아니다. 실패한 보조금의 반대말은 성과가 측정되는 보조금이다.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복지가 되고, 공기업의 부채가 산업정책이 되는 회계에서는 정책의 성패를 판단할 수 없다. 한국이 먼저 고쳐야 할 것은 지원금 액수가 아니라 비용을 숨기는 방식이다.

파블로 사베드라 세계은행 균등성장·금융·제도(EFI) 부총재는 “보조금 개혁은 지원을 거둬들이는 일이 아니라 효과가 있는 지원을 제공하는 일”이라며 “재정 여력을 둘러싼 경쟁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는 성과가 낮은 정책에 자원을 잃을 여유가 없다”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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