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취임 후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강력한 물가 안정 의지를 드러내며 사실상 '긴축 복귀'를 선언했다.
기준금리는 동결됐지만 시장은 이번 회의를 금리 인상의 예고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연준 내부에서도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17일(현지시간) 열린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들어 네 번째 연속 동결이다. 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금리 결정 자체보다 워시 의장이 내놓은 메시지에 집중됐다.
이번 FOMC 성명서는 기존의 완화적 표현을 대부분 삭제하고 "위원회는 물가 안정을 달성할 것"이라는 문구를 새롭게 담았다.
또 현재 물가 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를 여전히 크게 웃돌고 있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워시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높은 물가는 미국 가계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며 "최근의 인플레이션 경험이 미래까지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된 '물가 목표 상향론'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연준이 2% 물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신뢰를 회복하기 전까지 목표 자체를 논의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워시 의장이 첫 회의부터 강한 매파적 성향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기대와 달리 워시 의장은 완화 신호를 전혀 보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연준이 함께 공개한 경제전망요약(SEP) 역시 긴축 기조를 뒷받침했다. 올해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2.7%에서 3.6%로 대폭 상향됐다.
반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4%에서 2.2%로 낮아졌고, 실업률 전망도 4.4%에서 4.3%로 소폭 조정됐다.
이는 연준이 경기 둔화보다 인플레이션 위험을 더욱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중동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견조한 고용시장, 소비 회복세가 물가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큰 변화는 점도표에서 나타났다. 지난 3월 회의 당시 금리 인상을 전망한 위원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워시 의장을 제외한 18명 가운데 절반인 9명이 연내 최소 한 차례 이상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이 가운데 6명은 두 차례 이상 금리 인상을 전망했다. 반면 올해 금리 인하를 예상한 위원은 단 1명에 불과했다.
연말 기준금리 전망 중간값도 3.8%로 제시돼 현재 기준금리 상단인 3.75%를 웃돌았다.
사실상 시장에 금리 인상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시사한 셈이다.
JP모건자산운용의 프리야 미스라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을 놀라게 한 것은 워시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연준 위원회 전체가 예상보다 훨씬 매파적이었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국 2년 만기 국채금리는 장중 연 4.22%까지 상승하며 1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화는 강세를 나타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 이상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웰링턴매니지먼트의 브리지 쿠라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현재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가 사실상 논외가 됐다"고 진단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통화정책뿐 아니라 연준의 소통 방식 변화도 주목받았다. 워시 의장은 자신의 금리 전망치를 점도표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존 300단어가 넘던 FOMC 성명서는 132단어 수준으로 대폭 축소됐다.
또 향후 정책 방향을 미리 암시하는 '포워드 가이던스'도 사실상 폐기했다.
금리 인상 시점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할 수 없다"고 답했다.
제프리스의 토마스 사이먼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변화는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 시장에 판단을 맡겼던 앨런 그린스펀 시절 연준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연준의 매파 전환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한국은행은 중동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고환율, 반도체 호황에 따른 물가 압력을 이유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이 금리 인상 기조로 선회할 경우 한미 금리차 확대를 막기 위해 한국은행 역시 긴축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 FOMC를 계기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정책 우선순위가 다시 성장보다 물가 안정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케빈 워시 의장의 첫 회의는 단순한 금리 동결이 아니라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언한 회의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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