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청년층 탈모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1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탈모약 건강보험 급여화를 올해 하반기 중점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방안 검토를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해석된다. 또 이 대통령은 2022년 대통령선거 당시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어 이번 논의는 단순한 정책 검토를 넘어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건강보험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탈모치료까지 공적 재정으로 지원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반면 청년층의 현실적 부담과 삶의 질 문제를 고려할 때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논의는 탈모약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건강보험이 어디까지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지, 또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를 어떤 기준으로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지난 수십년간 보장성 확대를 통해 국민 건강 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해 왔다. 특히 암, 희귀질환, 중증질환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영역에서 보장성을 강화함으로써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고 건강권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방향성은 앞으로도 유지돼야 하며 건강보험이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할 핵심 영역임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단 건강보험의 기능을 중증질환치료에만 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현대 복지국가에서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안녕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라 건강보험에 대한 사회적 기대 역시 변화하고 있으며 삶의 질과 관련된 건강 문제에 대한 정책적 관심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탈모 문제는 이러한 변화된 환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탈모는 미용적 문제로 분류돼 왔지만 최근에는 심리적·사회적 영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청년층의 경우 탈모로 인한 스트레스와 자아존중감 저하, 대인관계 위축, 취업 과정에서의 심리적 부담 등을 경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곧바로 건강보험 급여화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은 제한된 재원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제도이며 모든 의료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탈모치료 지원 여부는 의료적 필요성은 물론 재정 지속가능성, 비용 대비 효과성, 사회적 수용성,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특히 이번 논의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기준에 관한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만일 삶의 질 향상을 이유로 탈모치료를 지원하게 된다면 향후 비만, 여드름, 만성 피부질환, 정신건강 문제, 시력교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유사한 요구가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탈모약 급여화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적 의료보장의 범위를 결정하는 사회적 기준과 원칙을 마련하는 일이다.
한편 청년층 지원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도 존재한다. 건강보험은 이미 생애주기별 특성과 건강 위험을 고려해 차등적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영유아 국가건강검진, 아동·청소년 의료비 지원, 노인 대상 본인부담 경감 제도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특정 연령층을 우대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와 정책적 우선순위를 반영한 결과다. 청년층 탈모 문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검토될 수 있으며 적어도 정책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를 비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전면적인 건강보험 급여화와 현행 비급여 유지라는 양극단 사이에는 다양한 정책 수단이 존재한다. 일정 수준의 본인부담을 유지하는 선별급여 방식이나 연령, 중증도, 치료 효과 등을 고려한 제한적 적용이 가능할 수 있다. 또 정책 시행 이후 재정 영향과 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도를 조정하는 단계적 접근도 검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다. 건강보험은 국민 모두가 비용을 부담하고 혜택을 공유하는 사회적 제도인 만큼 정책 결정 과정 역시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 최근 정부가 국민참여형 토론을 통해 탈모약 급여화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시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가진다. 공공정책의 목적은 요구를 단순히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사회적 요구와 재정적 한계를 조화시키면서 지속가능한 제도를 설계하는 데 있다.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논의 역시 특정 공약의 이행 여부를 넘어 건강보험이 미래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돼야 한다.
이번 논의가 탈모치료제 지원 여부를 둘러싼 찬반 논쟁에 머물지 않고 건강보험의 역할과 보장 범위, 또 공적 재원의 배분 원칙에 대한 보다 성숙한 사회적 합의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면서도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문제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정책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글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ㅣ정리 헬스경향 조선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