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강다연 작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하면 이미 많은 분들이 작품 속 발레리나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알려진 작품들이지만, 화가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면서 작품도 깊이 있게 살펴보자.
에드가 드가가 사실주의 화가인지 인상주의 화가인지부터 먼저 정리해 보자면, 초기 활동을 기준으로는 인상주의 화가로 보는 것이 맞다. 그는 인상파 전시의 창립 멤버였으며, 오늘날에도 인상주의 화가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다만 드가는 스스로 인상주의 화가로 불리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인상주의보다는 사실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그의 그림에서도 사실주의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벨렐리 가족’은 이러한 성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드가는 왜 인상주의라는 명칭을 선호하지 않았을까. 그는 인상주의 특유의 순간 포착 방식보다는 관찰과 구성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삼십 대 후반부터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실내에서 작업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빛을 따라 작업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졌던 점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는 물감을 조색하거나 건조시키는 시간을 기다리기보다 파스텔 작업을 선호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점차 ‘파스텔의 대가’로 불리게 되었다. 추천 작품인 ‘흔들리는 댄서’ 역시 에메랄드빛 파스텔 색채의 발레리나들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종이에 과슈를 바탕으로 깔고 파스텔로 빠르고 역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드가는 발레리나의 움직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발레리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무대 위 화려한 모습뿐 아니라 그 이면의 삶까지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다.
나 역시 작품을 대할 때 마냥 상상만으로 모든 것을 담아내기보다는 내가 직접 보고 느낀 공간의 감성과 분위기를 담아내려고 하는 편이다. 그게 더 대중에게 전달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작가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묘사할 때, 단순히 테크닉적인 표현을 넘어 또 하나의 차원이 생기고 관객과 그림 속에서 더욱 깊이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드가가 왜 발레리나를 그렇게 많이 그렸는지 생각해 보자. 전해지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그는 여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고 여성혐오적 성향이 있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 발레리나들을 바라보면, 단순한 혐오보다는 오히려 남다른 관심과 애정, 그리고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당시 발레리나들은 화려한 무대 위의 모습과는 달리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발레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낮은 임금과 고된 일정, 남성 부르주아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했고, 피해를 입어도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와 마주해야 했다. 드가는 이러한 현실을 포착해 작품 속에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발레리나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무용수가 아니라, 시대의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다가온다.
또한 ‘모자가게에서’라는 작품은 드가가 자주 방문하던 백화점의 모자가게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인데, 이 그림에서도 그가 여성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연애사나 사생활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애정과 연민의 시선을 보낸 존재가 바로 여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가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컬러풀한 색채와 파스텔 특유의 역동적인 터치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구도이다. 그는 과감하게 화면을 잘라내는 구성을 시도하며 전통적인 신고전주의의 정형화된 틀을 깨뜨렸다.
또한 카메라를 작업 도구로 활용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구도를 연구했는데, 이를 통해 기존 회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독창적인 화면 구성을 만들어 냈다.
드가가 실제로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여성혐오적이었는지 아니면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었는지는 오늘날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작품 속 발레리나들의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울하고 냉소적이며 비판적인 성격이었다고 전해지는 드가이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면도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작품과 화가들을 살펴보다 보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세계와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라면 어떻게 극복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겠지만, 결국에는 밝은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내 세상을 캔버스에 옮겨두었을 것 같다. 비워두는 것은 가끔 영화나 음악을 통해 흘리는 눈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마음을 두느냐가 결국 내 세상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나온 추억이든 아픔이든 그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어느 순간 늪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늘 밝은 빛을 향해 바라보고 나아가며, 내 마음에도 그림 속 세상에도 아름답고 따뜻한 것들로 채우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중심 역시 빛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여러분도 앞으로의 미래를 좋은 것들로 함께 채워가길 바라며, 다음 칼럼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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