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nsis’ 영상 속 표본을 관찰하는 모습이 진짜 연구원 같았어요. 꽃가루를 비롯한 미세 입자를 추적하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죠. 현미경 보는 법은 언제 배웠나요? 중고 현미경을 구입해 독학했어요. 책, 유튜브, 인터넷의 도움을 빌려 열심히 공부했죠. 미치광이 과학자처럼 작업실에 책이랑 표본을 잔뜩 펼쳐두던 순간이 생각나네요.(웃음)
이전에는 식물을 주제로 작업한 적이 없는데 어쩌다 그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나요? 2020년 작 ‘Forensis’는 통의동 보안여관 전시 〈식물계〉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에요. 신작 요청을 받고 관련 서적을 찾아보다 영국의 법생태학자 퍼트리샤 윌트셔의 〈꽃은 알고 있다〉를 봤어요. 신발에 묻은 흙이나 옷에 붙은 꽃가루 등으로 범죄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예요. 화분학을 알고 나니 도시 속 생태적 흔적이 흥미로운 단서처럼 보이더군요. 그렇게 작업실 주변의 공장 지대나 주거지, 인근 공원과 화단, 작업실 창가, 심지어 제 옷까지 다양한 데서 미세 입자를 채취했어요. 도시라는 딱딱한 풍경에 사실은 인간이 만든 인공 물질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도 자연은 번식할 방법을 찾아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됐죠. 윌트셔는 “한 주먹만큼의 흙은 하나의 장소성이 될 만큼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했어요. 예술에서 말하는 장소성이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전시 주제가 식물이어서 꽃가루를 주된 매개로 삼았지만 결국 이 세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 차원으로 존재하고 연결돼 있다는 걸 말하는 작업이에요.
이후에도 미시적 차원에 대한 탐구는 쭉 이어졌어요. 덕분에 제22회 송은미술대상을 안겨준 ‘Hummer’가 탄생했고요. 작은 세계에 대한 이러한 몰입은 작가님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어려서부터 꽤 집요한 구석이 있었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충분히 알 때까지 파고들고, 뭐든 혼자 힘으로 해내야 직성이 풀렸죠. 학창 시절 수업 중에도 이해가 안 되면 굳이 손 들고 질문해서 선생님들이 곤란해하기도 했어요. 이런 기질이 작업에는 도움이 되지만 사실 사회생활에 능숙한 편은 아닌 듯해요. 작가가 돼 다행이에요.(웃음)
오펜바흐 조형예술대학에서 뉴미디어와 무대미술을,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아트 앤 미디어를 공부했어요. 유학 시절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요. 스무 살 되던 해에 언니와 같이 유학길에 올랐어요. 언어부터 사회 환경까지 모든 게 낯설어 버겁기도 했지만 배움의 즐거움이 워낙 컸기에 어떻게든 열심히 해낸 것 같아요. 독일은 도제식 교육이라 현역 작가들이 교수로 활발히 활동해요. 올라푸르 엘리아손, 히토 슈타이얼, 그레고어 슈나이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등 거장의 수업을 가까이서 접하며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비교적 일찍 생각할 수 있었죠. 무대미술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뉴미디어가 더 잘 맞았어요. 뉴미디어라고 하면 컴퓨터만 다룰 것 같지만 본질은 다양한 매체를 주체적으로 활용해 기존 시스템이나 사회구조를 해체하고 개입하는 데 있어요. 철저히 계산된 연출인 무대미술보다 과정부터 의미 있는 뉴미디어의 방향성이 좀 더 흥미롭게 다가온 것 같아요.
2009년 독일에서 작업한 ‘Kopierfehler(Copying Errors)’를 재밌게 봤어요. 복사기에 작은 문구를 몰래 붙여놓고 이용자들을 지켜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더군요. 당시 교수님의 지도 아래 공공장소에서 예술의 개입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동네 인쇄소가 눈에 들어왔죠. 독일은 실물 문서가 매우 중요한 사회잖아요. 당시 제가 살던 동네에는 이주민이 많아 비자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 이들로 인쇄소가 늘 붐볐어요. 그곳 복사기에 이민자나 성소수자 등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기사 문구를 매우 작은 크기로 인쇄해 붙여뒀습니다. 돋보기를 대야 읽을 수 있는 크기였죠. 복사를 마친 사람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기분 좋게 웃어넘기는 반응이 의외였어요.
도시와 사람을 조용히 응시하는 눈은 꽤 오래전부터 기른 것 같아요. 비닐에 ‘사유’라는 뜻의 독일어를 인쇄해 배포한 ‘Privat’나 베를린 건물에 남은 총탄 자국을 다룬 ‘Phantom Limb’, 주택 철거 현장 속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무심(無心), 한 물줄기의 이름’ 등의 기존 작업만 봐도 일관된 시선이 느껴집니다. 제 내면보다 주변을 관찰하며 작업 동기를 얻는 편이에요. 초기에는 공공장소에 대한 개입, 도시 속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가시화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우리 사회가 마주한 여러 재난을 목격하며 시야가 확장된 것 같아요. 재난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 문명이란 얼마나 불안정한지 체감하기 시작했죠. 이 위기의식은 팬데믹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생태적 관점과 맞물렸어요. 개개인의 경험이 모여 사회를 이루듯 꽃가루나 먼지 같은 미세 입자 역시 이 세계를 이루는 미시적 단서라는 점에서 유사한 면이 있었죠.
‘Yellow Border’(2021)는 꽃가루와 ‘옐로케이크’라고 불리는 우라늄 정제 가루가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유사하다는 데서 착안한 작품이에요. 꽃가루를 얻기 위한 벌의 몸짓을 모방한 기계에서 노란 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매혹적인 동시에 소름 끼쳤습니다. 스테이시 앨러이모의 저서 〈말, 살, 흙〉에서 발견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어요. 저자는 꽃가루와 우라늄 가루가 너무 흡사해 우라늄 정제 공장 인근 주민들이 흡입할 위험성을 언급했죠. 마침 벌의 진동 수분 현상을 눈여겨보던 차에 그 둘을 접목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벌이 특정 주파수로 날갯짓해 꽃가루를 방출하는 움직임을 전시장의 진동 장치에 적용했어요. 꽃가루든 위험 물질이든 그것이 확산되는 방식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고 은밀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그 과정을 다 아는 듯 굴죠. 우리의 시각적 잣대로 대상을 쉽게 구분 짓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벌에 관한 이야기는 이후 ‘Hummer’로 이어져요. 전시장 중앙의 긴 테이블에 우라늄, 꽃가루, 군사기술, 난청 현상에 대한 이미지를 나열하고 테이블에 다가갈 때 초지향성 스피커의 소리가 관람객의 몸을 관통하도록 설계했죠. 팬데믹 당시 기술이나 사회가 개인을 교묘히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기를 느꼈어요. 여기에 초지향성 스피커 같은 기술이 적과 군중을 통제하는 데에도 쓰인다는 점, 드론 소리에 예민했던 제 경험이 작업의 단초가 됐습니다. 저는 관람객이 제 생각의 흐름을 따라오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걸 좋아해요. 제가 어떤 경위로 이런 현상에 매료됐고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최소한의 가이드랄까요. 제가 ‘덕후’처럼 집요하게 파고든 지점을 관람객들도 같이 즐겼으면 했어요. 우라늄 가루와 꽃가루의 유사성, 꽃가루가 벌의 진동으로 확산되는 현상, 수벌의 이름에서 탄생한 드론, 기술의 군사 무기화, 현대인의 청각 손실로 이어지는 일련의 순서는 결국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결론에 가 닿아요. 작품 제목 ‘Hummer’는 정체불명의 소음에 시달리는 이들을 뜻하기도 해요. 관람객 역시 그들처럼 보이지 않는 신호나 파동을 예민하게 느껴보길 바랐습니다.
흔히 지나치기 쉬운 작은 존재나 감춰진 고통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엿보여요. 작가님 역시 그들처럼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일까요? 한국 사회는 무난하고 원만한 성품을 미덕으로 여기잖아요. 그 속에서 예민한 사람들이 소외되는 것이 안타깝고 그런 이들을 만나면 오히려 반가웠어요. 저 역시 아닌 척 애쓰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해서 그런 듯해요. ‘묵음 처리된 존재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 같아요. 감정은 있는데 소리 내지 못하는 존재들요. 상처가 있어도 꾹 참는 사람들을 보면 그 이면의 감정이 더 진실되고 절실하게 다가와요. 말하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잖아요. 그 감정을 굳이 들추면서 섣불리 공감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기에 모든 작업을 리서치에 근거해 사실을 나열하는 것 같아요.
오는 6월 송은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인가요? 습기와 먼지, 건축구조와 공조 시스템, 인간의 면역 체계에 관한 이야기가 될 거예요. 실내 공기를 조절하는 건물의 공조 시스템이 우리 몸의 면역 체계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한 작품을 선보이려고 해요. 과거 습한 작업실에서 고생하던 중 “사람이 머물러야 습기가 잡힌다”는 말을 듣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 몸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장(腸)’은 외부 요소가 끊임없이 유입되는 부분이자 위상학적으로 ‘바깥’에 해당해요. 결국 ‘나’라는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외부와 섞이며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조금 더 관대해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송은미술대상 수상 이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전혜주가 그리는 다음 챕터는 어떤 모습인가요? 몇 년간 작업에만 매진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작업 말고 남은 건 하나도 없고 내 삶은 정체된 게 아닐까’ 하는 무기력감이 찾아왔어요. 그 와중에 들려온 수상 소식은 큰 응원이 됐죠. 제 아집일 뿐이라 생각한 일을 인정받은 기분이었거든요. 쉴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요. 이제 조금 속도를 늦추고 내 안에 응축된 에너지를 보다 밀도 있게 쏟아내는 작업, 그것이 가능한 환경을 갖춰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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