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재 기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시작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벌써 13일째 계속되고 있다. 그 시간만큼 올림픽공원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일터로 들어가지 못하는 직원들과 시위대의 갈등이 격화하면서다. 그 사이에서 중재를 하는 현장 경찰들은 지휘부의 소극적 태도와 흥분한 시위대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
2주째 현장을 취재하면서 지켜 본 입장에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이번 시위의 초기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당초 참정권 침해에 대한 상식적 분노를 표출하며 평화 시위를 주장했던 이들은 떠나고, 그 빈자리를 부정선거론자들이 채웠다.
시위는 점차 격렬해졌다. 개표소인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은 욕설·폭력 등 크고 작은 불법행위가 발생하는 악다구니의 집합소가 됐다.
시위대의 분노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닌 경찰로 향하기 시작했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현장에 배치된 경찰들을 향해 “중국 공안”, “가짜경찰”이라 외치고 관등성명을 요구하는 행태도 보였다.
현장에서 모욕과 조롱에 시달리는 경찰관들의 무력감과 피로는 켜켜이 쌓이고 있다. 지난 14일 핸드볼경기장 한 쪽에 마련된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30대 남성은 주변에 있던 경찰들을 바라보며 “중국 공안놈들이 한국 경찰로 위장해 현장 곳곳에 배치됐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의 말을 듣던 다른 시위 참가자들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말을 들은 경찰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경찰 지휘부의 눈에는 혼란스러운 광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무력감을 삼키는 부하 직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이 시위대를 향해 “불법행위에 동조하면 패가망신할 수 있으니 유념했으면 좋겠다”고 경고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시위대는 박 청장의 발언이 나온 뒤에도 세 차례에 걸친 경찰의 경고 방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체육회 산하 체육단체 직원들의 경기장 출입을 통제했다. 체육단체 직원들이 발길을 돌리자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환호하며 “우리가 해냈다”고 외쳤다.
지난 6일 새벽 핸드볼경기장에서 시위대에 둘러싸여 30분 넘게 중국 공안이라고 조롱당하며 욕설을 들은 서울경찰청 2기동단 경비과장 김 모 경정은 경찰 내부망에 ‘경권(警權)은 어디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시위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규모의 불법과 일탈 행위는 대부분 교정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번 시위가 경찰의 불법행위 용인 수준을 시험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 중 논란이 될 만한 사안에 대해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지칭하는 말로 ‘흐린 눈을 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 경찰 지휘부의 모습은 마치 개표소 봉쇄 시위를 ‘흐린 눈’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그 사이 시위대의 힘은 더 세졌고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시험대에 올라선 경찰은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님 계속 흐린 눈을 뜨고 이를 볼까. 결단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