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권택석(=경북) 기자] 수십 년간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 역할을 해오는 동시에 개선·개발을 향한 멈춤없는 노력으로 업그레이드를 거듭해 왔던 철강산업이 또 한 차례 중차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과거 철강업의 경쟁력이 '용광로의 크기'와 '쇳물의 양'이라는 물리적 규모에 의해 결정됐다면 이제 '현장의 경험을 어떻게 데이터화하느냐'가 생존의 열쇠로 급부상했다.
이와 관련, 최근 포항제철소의 데이터화 행보는 단순한 공장 자동화를 한 단계 넘어선 모양새다. 포항제철소가 추구하는 방향은 설비와 공정이 스스로 상태를 진단하고 최적의 대안을 찾아가는 '자율 제조', 다시 말해 '인텔리전트 팩토리(Intelligent Factory)'로의 진화다.
숙련공의 감각에 의존하던 현장 노하우가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되면서 제철소 스스로가 판단하고 진화하는 유기체로 거듭나고 있다.
◎ "잠들지 않는 눈"이 데이터 기반 설비 관리의 효용성 입증… '돌발 고장'과 '가동 중단' 원천 차단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설비 관리의 방식이다. 포항제철소 후판공장은 최근 설비통합관리시스템(PIMS)에 자체적으로 개발한 지능형 로직을 결합했다. 누적된 설비 장애 데이터를 분석해 구축된 이 시스템으로 인해 미세한 진동이나 육안으로 찾아내지 못하는 누유까지 실시간으로 잡아낼 수 있게 됐다.
현장 엔지니어들이 '잠들지 않는 눈'이라 부르는 이 예지정비 시스템 덕분에 각 설비는 스스로 이상 징후를 알리고 정비 시점을 제시하는 단계로 진일보했다. 이를 통해 잠재적 장애를 사전에 차단하고 불시의 가동 중단 사고를 예방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전기강판공장 역시 현장 노하우를 기반으로 구축한 예지정비 로직을 통해 설비문제 해결 시간을 단축하며 데이터 기반 설비 관리의 효용성을 입증하고 있다.
◎ 소결 공정 AI 제어와 무인 크레인… '자율 운영'의 실체
이러한 지능화는 생산과 물류 영역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제철소의 첫 단추이자 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단단한 덩어리로 굽는 '소결 공정'은 온도와 수분, 원료 배합비율에 민감해 과거에는 베테랑 작업자의 감각에 의존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AI 기반 제어 시스템으로 실시간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원료 장입량과 연소 속도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조업 가동률 99%, 제어 적중률 97% 등 높은 성과를 거두며 공정 편차를 최소화하고 후속 고로 조업의 안정성까지 견인하고 있다.
제품의 출하 단계 역시 변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수십 톤에 달하는 철강 제품을 옮기는 크레인 작업은 제철소 내에서 가장 정교함과 판단력을 요하는 영역 중 하나다. 포항제철소는 여기에 3D 레이저 스캐너와 비전 AI 기술을 탑재한 '지능형 무인 크레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크레인이 야드의 공간 구조와 제품의 형태를 스스로 인식해 최적의 동선으로 움직이면서 차량 제원을 실시간으로 파악한 후 오차 없이 제품을 싣는 '무인 상차 로직'을 구현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과거 상차 작업 시 물품 낙하 사고 위험에 노출됐던 현장 작업자의 리스크는 물론 수작업의 필요성 역시 감소하게 됐다.
여기에 냉연, 전기강판, STS 등 다소 혹독한 조업 환경 하에 있는 공정에는 100여 대의 '지능형 AI CCTV'를 배치,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고온의 열기와 화학 물질로 가득 찬 산세·코팅 라인에서 AI CCTV는 미세한 표면 결함 등까지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여기에다 화재 징후를 초기에 감지하고 제품번호를 자동으로 식별하는 등 품질 관리자이자 현장 파수꾼으로서의 역할마저 톡톡히 해내고 있다.
◎ '암묵지'를 '형식지'로 전환… 베테랑의 노하우를 디지털 자산화하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혁신의 본질은 디지털 솔루션을 단순히 이식한 것이 아니라 현장 엔지니어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암묵지'를 시스템화된 '형식지'로 전환시켰다는 데 있다.
철강업계의 크고 오랜 고민 중 하나는 수십 년간 현장을 지켜온 베테랑 숙련공들의 은퇴로 인한 '기술 단절'이었다. "기계 소리가 평소와 다르다", "냄새가 이상하다" 등 숙련공의 오감과 직관에 의존하던 노하우는 그들이 퇴사하면 사라지는 중대한 자산이었다.
포항제철소는 이 직관의 영역을 센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정량화했다. 현장 작업자들이 직접 예지정비 로직 설계에 참여해 자신들의 노하우를 PIMS 시스템에 코딩해 넣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장 작업자들의 역할도 새롭게 정의됐다. 철강 엔지니어들이 AI가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현장 상황에 맞게 알고리즘을 튜닝하는 '데이터 엔지니어'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인력의 고령화와 기술 계승의 단절이라는 제조업 본유의 난제를 디지털 전환을 통해 정면으로 돌파해 낸 셈이 된 것이다.
포항제철소 관계자는 "제철소 디지털 전환을 통해 공정의 안전성과 생산성을 이전보다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현장의 축적된 데이터와 AI 기술을 유기적으로 융합해 글로벌 철강 시장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현장 엔지니어들의 땀방울과 노하우를 데이터라는 새로운 자원으로 치환해 스스로 진화하는 포항제철소의 자율제조 실험이 대한민국 제조업 문화의 전반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에 전 산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