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냉면: 이마에 땀이 맺힐 때 비로소 완성되는 차가운 여름의 한 그릇
- 콩국수: 차갑고 고소한 콩물로 입맛 없는 날에도 든든하게 채우는 여름 별미
- 물회: 싱싱한 회와 얼음, 새콤한 양념이 어우러지는 바다의 한 그릇
- 산오징어: 1년 중 지금 가장 맛있는 투명한 살과 달큰한 감칠맛
- 초당옥수수: 생으로 먹어도, 살짝 쪄도 좋은 6월의 달콤한 제철 간식
6월의 식탁을 차리며
6월은 여름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달이다. 아직 장마가 오기 전, 더위가 절정에 닿기 전의 그 미묘한 시간. 계절이 막 바뀌는 이 타이밍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작 방법이 있다. 음식으로 여름을 맞이하는 것. 뭔가를 먹으면서 '아, 여름이 왔구나'를 실감하는 그 순간이, 달력보다 정직하게 계절을 알려준다.
음식에도 타이밍이 있다.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고,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그 맛이 나지 않는 음식이 있다. 평양냉면도, 콩국수도, 물회도 사실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6월에 먹는 것과 12월에 먹는 것은 같은 음식이 아니다.
더운 날 땀을 닦으며 먹는 차가운 한 그릇에는 계절이 들어 있다. 산오징어와초당옥수수는 조금 더 솔직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제철이 직접 말해준다. 6월을 먹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평양냉면 - 이마에 땀 한 방울이 맺혀야 완성되는 한 그릇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뜨거운 계절에 먹는 냉면을 두고 계절이 반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평양냉면을 제대로 즐기려면 조금 더운 날이어야 한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면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마에 살짝 땀이 맺히는 그 타이밍. 면이 테이블에 오르면 차가운 육수가 그릇을 감싸고 있고, 첫 모금에서 냉기가 목을 타고 내려간다. 그 온도 차가 평양냉면의 핵심이다. 12월의 식당에서 먹는 냉면과는 결이 다르다.
금천구 진영면옥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강남구 진미평양냉면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담백하고 슴슴하다는 표현이 자주 붙는 음식이지만, 정확히는 계절이 간을 맞춰주는 음식에 가깝다. 사실 나도 평양냉면 입문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엔 이 슴슴한 맛이 왜 좋은지 잘 몰랐다. 그래서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곳을 먼저 찾아다녔다.
금천구 진영면옥, 강남구 진미평양냉면. 두 곳 모두 맑은 국물인데 진한 고기의 향이 난다. 그러면서 마무리는 깔끔하다. 평양냉면이 처음인 사람에게는 이 두 곳부터 시작해보길 권한다. 입문의 순서가 있다면, 여기서 시작하는 게 맞다.
2. 콩국수 - 고소하고 차갑고, 설명이 필요 없는 여름의 언어
콩국수는 설명하기가 조금 어려운 음식이다. 고소하다고 하면 부족하고, 담백하다고 하면 틀린 것 같고.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그 묵직한 콩물이 낯설 수 있다. 그런데 더운 날에는 달라진다.
차갑게 갈아낸 콩물 국수는 목넘김이 부드럽고, 포만감이 길다. 허기를 달래면서도 속이 가볍다는 느낌. 입맛이 없어 식사를 거르고 싶은 날, 콩국수 한 그릇이 가장 확실한 선택이 되는 건 그래서다.
콩국수는 소금파와 설탕파로 나뉜다. 나는 둘 다 아니다. 그냥 그대로 마신다. 콩물 자체의 고소함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다. 추천하는 곳은 시청역 근처의 진주회관. 콩국수 본연의 맛에 집중하는 곳인데, 매년 여름이 되면 콩국을 페트병에 담아 따로 팔기도 한다. 그걸 사다가 집에 두고 먹는 게 나의 여름 루틴 중 하나다. 냉장고에서 꺼내 바로 한 잔, 그것만으로도 여름이 좀 견딜 만해진다.
진주회관 외관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업체 등록 사진
6월은 콩국수 전성기의 직전이다. 본격적인 한여름이 오기 전, 조금 이른 타이밍에 먹는 콩국수 한 그릇이 의외로 가장 맛있다.
3. 물회 - 바다를 한 그릇에 담는 가장 빠른 방법
바다 앞에 앉아 먹는 물회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인데 포항이나 속초에서 먹으면 다른 맛이 나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초고추장에 참기름, 그 위에 얇게 썬 싱싱한 회. 얼음 몇 조각을 넣으면 국물이 차갑게 풀리면서 회와 채소가 어우러진다. 첫 숟가락은 국물부터, 두 번째는 회와 채소를 함께. 쌉싸름하고 차갑고 달큰한 맛이 순서대로 온다.
속초 청초수물회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물회는 역시 속초다. 청초수물회. 에버랜드보다 실시간 방문자 수가 더 많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인데, 실제로 가보면 왜 그런지 바로 이해가 된다. 청초호를 내려다보며 탁 트인 뷰와 함께 먹는 물회는 서울에서 먹는 것과 분명히 다르다. 회가 더 싱싱한 것인지, 바람이 더 시원한 것인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오징어순대도 놓치지 말 것. 물회를 시키고 오징어순대를 곁들이면, 그게 속초에서의 완성된 한 끼다.
겨울에도 물회를 파는 집이 있다. 그래도 굳이 6월에 먹으라고 하는 건, 이 계절의 회가 가장 싱싱하고, 이 온도 차가 가장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4. 산오징어 - 1년 중 딱 지금, 투명한 살의 절정
산오징어는 사실 살아있는 오징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싱싱한 오징어 회를 산오징어라고 부른다. 6월은 그 절정이다.
갓 잡은 오징어의 살은 투명하다. 냉동이나 보관을 거친 것과는 색부터 다르다. 씹히는 질감도 다르다. 탱글하면서도 부드럽고, 단맛이 난다. 오징어가 달다는 게 낯선 사람도 있는데, 산오징어를 먹으면 이해가 된다.
달달한 사당 청송산오징어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6월 제철 식재료 한상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처음으로 산오징어가 달다는 걸 실감한 곳이 있다. 사당의 청송산오징어. 웨이팅은 감안해야 하지만, 오로지 산오징어 하나로 승부하는 곳이다. 메뉴가 단순할수록 재료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맞았다. 투명한 살을 한 점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진짜 달고 감칠맛 나는 오징어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 전까지 먹었던 오징어와는 다른 음식 같았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가볍게 소금과 참기름만 곁들여도 충분하다.
제철 식재료의 가장 솔직한 형태가 산오징어다. 조리가 필요 없고, 양념이 많이 필요 없다. 지금 잡은 것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재료다. 6월이 지나면 맛이 달라진다. 지금 먹어야 한다.
5. 초당옥수수 - 6월만 허락하는 단 하나의 맛
초당옥수수를 처음 먹었을 때, 이게 같은 옥수수 맞나 싶었다. 일반 옥수수보다 훨씬 달고, 껍질이 얇아서 생으로 먹어도 될 만큼 부드럽다.
처음 생으로 먹게 된 건 우연이었다. 택배로 초당옥수수를 받았는데, 박스 안에 먹는 법을 쪽지로 적어주신 분이 있었다. 거기에 '생으로 먹어도 됩니다'라는 한 줄이 있었다. 반신반의하면서 하나를 껍질째 까서 그냥 베어 물었다. 여름에 무언가를 삶는 것도 귀찮기도 했고. 그런데 아삭아삭한 식감과 함께 단맛이 터지는데, 이게 익혔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삶으면 포슬해지고, 생으로 먹으면 아삭하다. 초당옥수수는 두 번 먹는 재미가 있는 재료다.
초당옥수수 / 이미지 출처: 언스플래쉬
강릉 초당동에서 이름이 시작된 초당옥수수는 지금 전국에서 재배되지만, 제철은 짧다. 6월 중순에서 7월 초 사이, 길어야 한 달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내년을 기다려야 한다. 마트나 재래시장에서 초당옥수수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게 신호다. 딱 두 개만 사서 그날 바로 먹을 것. 신선도가 생명이고, 갓 수확한 것이 가장 달다.
6월의 식탁을 마치며
여행을 가지 않아도 계절을 느끼는 방법이 있다. 그 계절에만 나오는 것을 먹는 것. 평양냉면 한 그릇에서 여름이 시작되고, 초당옥수수 한 입에서 6월이 마무리된다. 음식은 계절을 먹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6월은 짧다. 더위가 익숙해지기 전에, 제철이 지나기 전에, 오늘 저녁 메뉴부터 골라볼 것을 권한다. 여름은 그렇게, 한 그릇씩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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