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기판이 온다/上]플라스틱 한계 마주한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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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기판이 온다/上]플라스틱 한계 마주한 반도체

비즈니스플러스 2026-06-17 15:34:4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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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 생성 이미지
/사진=AI 생성 이미지

AI 반도체의 칩 크기가 커지고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플라스틱(유기) 기판이 물리적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서치인터내셔널(TechSearch International)에 따르면 서버용 CPU 안에 쌓는 회로층(빌드업 레이어)은 18층에서 22층까지 늘었다. AMD의 서버용 칩 '튜린'은 가로세로 75.4mm, 72mm 크기로 나왔고,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루빈'은 가로세로 크기가 각각 100mm로 알려졌다. 통신용 고성능 스위치 역시 85mm에서 100mm로 점점 커지는 추세다.

이처럼 칩이 커지고 회로층이 많아질수록 기존 플라스틱 기판은 열을 받으면 휘어지는 현상(Warpage)이 심해진다. 또한 표면도 거칠어져 가느다란 회로를 새기기 어려워진다. 이 한계를 풀어줄 대안으로 업계가 주목하는 게 바로 '유리기판'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전 세계 유리기판 시장 규모는 2023년 71억 달러에서 2028년 84억 달러로, 5년 사이 18% 정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플라스틱 기판에서 유리기판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흐름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로쓰리서치에 따르면 유리는 원자들이 불규칙하게 배열된 '비정질' 구조인 만큼, 열에 의한 휨 현상이 줄어들고, 표면이 뒤틀리는 것 같은 기계적 무리도 덜 받는다. 이같은 특성을 활용하면 기판을 더 큰 면적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표면이 아주 평평한 만큼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노광 공정(빛으로 회로 모양을 찍어내는 과정)에서 회로를 더 정밀하게 새길 수 있고, 그만큼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회로를 집어넣을 수 있다. 아울러 유리는 전기 신호가 빠져나가는 손실(유전손실)이 적다. 신호 속도가 빨라지는 고주파 환경에서는 이 손실이 클수록 에너지도 더 쓰고 신호도 깨지기 쉬운데, 유리는 이 손실이 작아서 에너지를 덜 쓰면서도 신호를 더 안정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이같은 장점에 현재 인텔과 브로드컴, AMD 같은 대형 테크기업들이 유리기판 적용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먼저 깃발을 든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에 10억 달러(약 1조 3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유리기판 전용 연구 라인을 구축했다. 10년 가까운 연구를 통해 확보한 특허만 600개가 넘는다. 인텔은 이미 시험용 칩으로 전기적 동작 구현까지 확인했으며, 오는 2030년 내 본격적인 상용화를 목표로 잡았다. 브로드컴 역시 자사 칩에 유리기판을 적용하기 위한 테스트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AMD의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AMD는 2028년 출시할 첨단 고성능 칩에 유리기판을 도입한다는 로드맵을 세우고, 올해(2026년)부터 본격적인 시험 생산 라인 가동에 들어갔다. 일본의 도판(Toppan)은 빛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광통신 칩용 유리기판을 개발 중이며,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SKC는 자회사 앱솔릭스를 통해 미국 조지아주에 유리기판 생산 거점을 마련했다. 올해 시제품을 통한 고객사 검증을 거쳐 이르면 내년(2027년)부터 본격적인 대량 생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기는 핵심 소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등 공급망을 다져왔으며, 세종 파일럿 라인을 기반으로 올해 하반기 이후 본격적인 양산 궤도 진입을 노린다. LG이노텍 역시 전문 기업들과의 연구개발(R&D) 협력을 한층 강화하며 차세대 기판 시장 선점을 위한 밑그림을 완성해가고 있다.

다만 유리기판이 대규모 양산단계까지 가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먼저, 유리기판을 만들어줄 회사들이 아직 많지 않다. 또, 칩 하나에 수만 개씩 필요한 미세한 구멍을 유리에 뚫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유리는 잘 깨지는 만큼 깨지지 않게 구멍을 뚫는 기술이 아직 더 필요하다.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유리는 흠집이 생기면 균열이 쉽게 확산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며 "관통홀 가공 과정에서 미세 흠집이 생기면 후속 공정을 거치며 손상이 확대되고, 결국 기판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관통홀 형성 과정에서 균열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가공 기술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양성모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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