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통 제약사들이 자체 전문의약품(ETC) 영업으로 벌어들인 탄탄한 자금력을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해 글로벌 기술수출(L/O)을 성사시키는 'K-제약형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고 있다. 자금난으로 외부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거는 바이오 벤처들과 달리 전통 제약사들은 견고한 본업의 현금 창출력을 바탕으로 장기 R&D를 뚝심 있게 밀어붙여 결실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평가가 남다르다.
종근당·유한양행, 글로벌 빅파마가 선택한 독자 기술력
최근 전통 제약사 기술수출의 가장 대표적인 이정표는 종근당이 세웠다.
종근당은 글로벌 빅파마 노바티스(Novartis)와 저분자 화합물질 성분의 희귀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CKD-510'에 대해 총 13억 5,000만 달러(약 1조 7,300억 원) 규모의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만 8,000만 달러(약 1,000억 원)에 달하는 역대급 규모다. 바이오 벤처가 아닌 전통 제약사가 자체 연구소에서 장기간 공들여 개발한 합성신약 후보물질로 순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업계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
유한양행 역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의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유한양행이 개발해 글로벌 빅파마 존슨앤드존슨에 기술수출한 비소세포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는 글로벌 상업화 단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마일스톤과 로열티(경상기술료) 수익 본격화를 앞두고 있다. 유한양행은 렉라자로 증명한 신약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제2, 제3의 렉라자 발굴을 위한 R&D 투자를 더욱 확대하는 추세다.
플랫폼 기술과 신규 모달리티 수혈로 무장한 한미·동아
한미약품은 전통 제약사 중 가장 먼저 독자적인 약물 지속형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LapsMedicine)'를 구축해 성과를 이어오고 있다. MSD(머크)에 기술수출한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제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는 글로벌 임상 단계에서 순항 중이며, 최근에는 비만 치료제 자체 파이프라인(H.O.P 프로젝트)을 전면에 내세워 차세대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자체 매출을 기반으로 차세대 바이오 기술을 과감하게 수혈하는 전략도 눈에 띈다. 동아ST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전문 바이오텍인 '앱티스'를 인수하며 전통 제약사의 인프라에 차세대 플랫폼 기술을 이식했다. 이를 통해 글로벌 학회에서 차세대 항암제 파이프라인 연구 성과를 연이어 발표하는 등 모달리티(치료 접근법)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승계 시험대' 오른 오너 2·3세… R&D 성적표가 리더십 가른다
이 같은 전통 제약사들의 R&D 총력전은 최근 업계의 화두인 '경영권 승계'와도 맞물려 있다. 주요 전통 제약사들이 오너 2세 혹은 3세 체제를 본격화하며 세대교체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후계자들의 리더십을 검증할 핵심 시험대가 바로 'R&D 성과'이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단순히 지분을 확보하거나 리스크 없는 내수 영업에만 안주해서는 시장과 주주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후계자가 주도한 신약 파이프라인이 글로벌 기술수출로 이어지거나, 과감한 R&D 투자가 실제 성과로 증명되어야만 경영권 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전통 제약사들의 기술수출은 단순한 일회성 잭팟이 아니라 본업에서 번 돈을 R&D에 재투자해 글로벌 신약을 만들고 그 수익으로 다시 미래 기술을 사는 '지속 가능한 엔진'이 켜진 것"이라며 "오너가(家)의 승계 리스크를 불식시키고 기업 가치를 밸류업하기 위해서라도 전통 제약사들의 글로벌 기술수출 드라이브는 하반기에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폴리뉴스 김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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