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권수빈 기자] 조선 후기 사상적 격변기를 증명하는 ‘완주 남계리 유적’이 국가지정문화유산 반열에 오른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이곳은 격동의 시기였던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유교 중심의 조선 사회 체제 속에서 발생한 종교적 갈등과 박해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다.
국가유산청은 17일 완주 남계리 유적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해당 유적은 당초 천주교 관련 묘역이 존재한다는 말만 전해지던 곳이었으나 지난 2021년 3월 천주교 전주교구가 무연고 무덤 이장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났다. 이후 진행된 정밀 발굴조사에서 피장자의 인적 사항이 기록된 백자사발 묵서명 지석이 출토됐고, 유해 DNA 분석 등을 통해 순교자들의 신원이 확인됐다.
완주 남계리 유적은 조선 시대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해박해(1791년)와 두 번째 대규모 박해인 신유박해(1801년)의 역사를 관통한다. 신해박해는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지한 진산 사건으로 촉발돼 윤지충과 권상연이 최초로 순교한 사건이다. 이어 10년 뒤 발생한 신유박해는 남인 시파에 대한 정적들의 정치적 공세와 맞물려 수많은 천주교도가 처형된 사건으로, 이때 윤지헌 등이 순교했다. 남계리 묘역은 이 세 명의 순교자 유해가 묻힌 상징적인 공간이다.
발굴조사 결과 21기의 분묘가 확인됐으며, 봉분 규모와 배치 양상 등을 통해 세 시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봉분의 크기 분석을 통해 신해박해와 신유박해의 순교자들이 먼저 매장된 이후 이들의 신앙적 뜻을 따르던 공동체 구성원들이 주변에 추가로 묻힌 정황이 포착됐다. 이는 일시적인 처형과 매장에 그치지 않고, 엄혹한 감시 속에서도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활동해 왔음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완주 남계리 유적은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도입된 천주교가 종교적 신앙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유교 전통 사회와 어떻게 충돌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이다. 최초 순교자들의 묘역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초기 천주교의 전개 과정과 수난의 역사를 한 공간에서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국가유산청은 향후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뉴스컬처 권수빈 ppbn0101@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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