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랑그바드, 입양아 정체성 다룬 소설 '나의 통역사' 펴내
"친가족과 관계 회복 과정에 초점…침묵이 새 언어 될 수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입양인이 친가족을 찾는 과정은 '아침마당'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셨을 텐데요. 친가족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재회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한국계 덴마크 작가 리 랑그바드(46)가 신작 장편소설 '나의 통역사'(푸른숲 펴냄)로 한국을 찾았다.
16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신작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친가족과 만난 입양인이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하는지를 묘사하고 싶었다"고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보내진 그는 입양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입양 제도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을 써왔다.
신작은 한국계 입양인이 친가족과 재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언어와 정체성의 균열을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덴마크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몬타나상'을 받기도 했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는 수년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며 친가족을 만난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 탓에 가족과의 대화는 덴마크계 한국인 여성 통역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여성 통역사는 단순한 소통 창구가 아니라 '나'의 동성 연인이기도 하다. 만약 이런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출생과 동시에 가족에게 이미 한 차례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나'는 또다시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망설인다.
입양인이자 레즈비언으로서 사회적 소수자에 속했기에 입양가족과 친가족 모두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했던 작가의 체험이 반영된 소설이다.
소설은 형식 면에서도 독특하다.
작품은 나와 통역사 그리고 친가족이 주고받는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특히 대사와 지문, 그리고 '공백'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 인물 간 대화를 직접 구현하며, 혈연으로 맺어졌음에도 통역 없이는 소통할 수 없는 현실을 담담하면서도 슬프게 그려냈다.
작가는 디아스포라(이산)의 삶을 표현할 새로운 언어로서 '침묵의 언어'를 선택했다.
작품 속 인물이 주고받는 대사의 일부는 '빈칸'으로 남겨져 있거나. 물음표 같은 문장 부호가 대신한다.
"입양인이 겪는 상실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 즉 빈칸 같은 것을 만들어내야 했어요. 그것은 '침묵의 언어'이지만, 그 침묵은 부재가 아닌 존재로 충만합니다."
작가는 "그 빈칸은 한국어뿐 아니라 문화, 역사까지 모든 것을 상실한 입양인들의 상실감을 표현한다"며 "침묵이라는 것 자체가 부재 또는 상실일뿐만 아니라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실제 입양인이 친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긴 침묵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처럼 가족, 언어, 문화를 잃었지만 자기 뿌리와 다시 연결되고자 하는 주인공의 여정과 내면의 분투를 아프지만 따뜻하게 담아냈다.
그는 앞서 국가 간 입양과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구조를 시적 언어로 고발한 시집인 '그 여자는 화가 난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작가는 "전작 '그 여자가 화가 난다'의 주된 감정이 분노였다면 신작에서의 주된 감정은 상실감과 슬픔"이라며 "신작에서는 친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언어의 장벽, 문화 차이, 세대 간 격차와 트라우마를 넘어 관계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다만 그는 자전적 요소가 강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라고 선을 그었다.
작가는 "이 책에 등장하는 50% 정도는 다 만들고 지어낸 것"이라며 "입양인들이 보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 실제 입양인들이 겪었을 법한 이야기를 위주로 상황과 대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많이 변모했고 그 자체가 힐링이 됐다며 포부도 밝혔다.
"작가로서 초국가적인 입양에 대한 내용을 역사에 남기고 싶습니다. 해외 입양이 감소 추세이고 100년이 지나면 이제 입양인이 더는 없을 수도 있겠죠. 입양에 관해 그리고 입양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싶습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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