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페르난도 보테로 전시를 정규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관람했다. 보테로의 작품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 작품들을 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은 보테로를 ‘뚱뚱한 사람을 그리는 화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난 후, 나는 그가 단순히 사람을 크게 그린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형태를 확장시킨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풍만하다. 아이도, 어른도, 음악가도, 정치인도, 심지어 동물과 과일까지도 둥글고 커다란 볼륨을 지니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익살스럽게 느껴지지만, 작품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편안함이 찾아온다. 마치 누군가의 품처럼 넉넉하고 따뜻한 감정이 화면 전체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도슨트는 보테로가 비만한 사람을 그린 것이 아니라 ‘볼륨’을 탐구한 작가라고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작품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 속 형태는 단순히 커진 것이 아니라 존재감을 얻고 있었다. 작고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장면들도 보테로의 손을 거치면 특별한 이야기가 되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이었다. 그들은 크게 웃고 있지도 않고, 슬퍼하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행복, 외로움, 그리움, 평온함 같은 인간의 감정들이 과장된 형태와 대비되며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작가로서 전시를 관람하며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작업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판다곰 ‘몽다’와 거북이 ‘거복이’ 역시 행복과 희망을 전하는 존재들이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캐릭터를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보테로의 작품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예술은 복잡한 설명보다도 하나의 형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보테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형태 언어를 만들었고, 그 언어로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했다. 언어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그의 작품 앞에서는 누구나 미소를 짓게 된다. 이는 캐릭터 작업을 하는 나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좋은 캐릭터란 단순히 귀엽거나 예쁜 그림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보테로의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전시를 둘러보며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의 일관성이었다. 수십 년 동안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발전시키고 확장해 왔다는 점이다.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세계를 더욱 깊이 탐구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창작자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시대에, 보테로는 오히려 자신만의 색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갔다.
예술가에게 개성이란 무엇일까.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결국 개성이란 남들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믿는 것을 오랜 시간 반복하며 다듬어 갈 때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보테로의 작품 속 풍만한 형태는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긍정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따뜻한 시선은 작품을 넘어 관람객에게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전시장을 나서며 나는 다시 한번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보테로의 그림 속 일상처럼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고, 음악을 듣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 것일 수 있다. 아마도 내가 앞으로도 계속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보테로가 자신만의 볼륨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듯, 나 역시 나만의 색과 캐릭터를 통해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과 희망을 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전시를 통해 만난 보테로의 세계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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