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일하는 노인에게 더 넓어진 국민연금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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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일하는 노인에게 더 넓어진 국민연금의 문

이데일리 2026-06-15 05: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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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 국민연금공단 전 연금상임이사]2026년 6월 17일부터 국민연금 노령연금의 ‘소득 활동에 따른 감액 제도’가 크게 달라진다. 그동안 은퇴 후 다시 일자리를 얻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국민연금이 감액됐지만 이번 제도 개선으로 감액 기준이 대폭 상향된다. 사실상 상당수 고령층이 연금을 감액 없이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필자는 국민연금공단에서 36년 넘게 근무하며 수많은 국민을 현장에서 만났다. 상담 창구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불만 중 하나가 바로 “열심히 일했더니 오히려 연금을 깎는다”는 하소연이었다. 특히 은퇴 이후에도 생활비와 의료비, 자녀 지원 부담 등으로 인해 다시 경제활동에 나서는 고령층에 이러한 제도는 큰 박탈감으로 다가왔다.

기존 제도는 노령연금 수급자가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최근 3년 월평균소득액인 이른바 ‘A값’을 초과하는 소득을 얻으면 최대 5년 동안 연금을 감액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2026년 기준 A값은 약 319만원 수준이다. 예전 같으면 한 달에 320만원만 벌어도 연금 감액 대상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2024년 한 해에만 약 13만 7000명의 수급자가 일한다는 이유로 총 2429억원의 연금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초고령사회에서 정부는 한편으로는 계속고용과 노인 일자리 확대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정 소득이 생기면 연금을 감액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정책 간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한국의 연금 감액 제도가 고령층의 노동 의욕을 떨어뜨린다며 지속적으로 개선을 권고해 왔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감액 기준선에 200만원의 추가 공제를 더했다는 점이다. 올해 기준으로는 A값 319만원에 200만원을 더한 약 519만원이 새로운 기준선이 된다. 즉 월소득이 약 519만원 미만이라면 국민연금을 감액 없이 전액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근로소득공제 등을 고려하면 실제 직장인의 경우 월급 630만원 수준까지도 감액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과거 기준이라면 매달 수십만원씩 연금이 삭감되던 수급자들이 이제는 보다 안정적으로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더 의미 있는 점은 혜택 적용 시점이다. 법 시행은 6월 17일부터지만 국민 편익을 고려해 올해 1월부터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도 새 기준을 앞당겨 적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난해 소득 때문에 이미 감액됐던 연금도 소급 정산해 환급해 주기로 했다. 국민 입장에서는 체감 효과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만난 수급자들 가운데는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다.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다. 일을 해야 생활의 리듬이 유지되고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다. 안정적인 생업과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사람의 마음도 안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노년층에 일은 단순한 소득원이 아니다. 삶의 활력을 유지하고 사회와 연결되며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실제로 은퇴 이후 다시 일터에 나선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건강 상태와 삶의 만족도가 더 좋아졌다고 이야기한다. 노동은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자존감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이미 8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아직도 평균 노령연금액은 70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노인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 현실을 고려하면 연금과 근로소득을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지원은 더욱 중요하다. 연금은 기본생활을 지탱하고 근로소득은 삶의 여유와 자립을 돕는 역할을 한다. 두 제도가 상충하기보다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때 노후의 삶은 훨씬 안정될 수 있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다면 연금을 일부 감액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국민연금 재정 안정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충분히 일리가 있다.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인 동시에 세대 간 연대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가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일하는 노인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오래 일하고 건강하게 활동하며 연금과 근로소득을 함께 활용해 노후를 안정적으로 꾸려가는 방향이 앞으로의 시대 흐름에 더 부합한다. 연금은 노후소득 보장의 기본 축이고 일은 삶의 활력과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번 제도 개선은 단순한 감액 기준 조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이 노인의 노동과 소득 그리고 존엄한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답변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단순히 노후에 지급되는 돈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사회적 안전망이자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국민이 연금과 일을 함께 활용하며 안정적이고 행복한 노후를 누리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일한다고 연금이 깎이는 시대’에서 ‘일해도 안심하고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시대’로의 변화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평생 월급 국민연금이 국민의 든든한 노후 버팀목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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