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 = 조수빈 기자] 삼성물산 건설부문(028260, 이하 삼성물산)이 도시정비사업에서 파죽지세다. 지난해 한남4구역 재개발을 시작으로 최근 신반포19·25차 통합 재건축까지 서울 핵심 정비사업장에서 그야말로 연전연승이다.
무엇보다 브랜드와 설계·기술·사업관리 역량의 가치가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랜드마크를 선별해 수주전에 뛰어들고, 그 판에서 이기는 방식으로 하이엔드 도시정비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즉, 같은 선별 수주라도 개별 사업장 수익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권역 내 후속 사업장 표심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점형 선별 수주’라는 점에서 오세철 삼성물산 대표이사 사장의 전략이 차별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해 한남4구역 재개발을 시작으로 최근 신반포19·25차 통합 재건축까지 도시정비사업 17건을 연속으로 수주했다.
이에 2025년 도시정비사업 수주액은 9조2622억으로 창사 이래 최대를 기록했고, 올해도 대치쌍용1차 재건축, 압구정4구역 재건축, 신반포19·25차 통합 재건축 등 3개 사업장에서 3조2480억원의 수주액을 올렸다. 이 같은 자신감은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도시정비사업 수주 목표를 기존 7조7000억원에서 13조원으로 상향 조정한 데서도 드러난다.
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거침없는 수주 행보만이 아니다. 한남4구역, 압구정4구역, 신반포19·25차, 대치쌍용1차 등 사업장이 모두 서울 핵심 정비축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삼성물산의 선별 수주가 리스크 관리 중심의 일반적인 방어형 전략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도시정비시장에서는 공사비 상승, 금융비용 부담, 조합 갈등 등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성에 집중하는 선별 수주 기조가 짙어지고 있다. 이와 달리, 삼성물산은 오세철 대표 체제 아래 하나의 수주가 인근 사업장 표심까지 흔들 수 있는 권역의 기준점을 고르는 방식으로 선별 수주 전략을 차별화하고 있다.
반포권이 대표적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신반포4차 재건축을 확보한 데 이어 올해 신반포19·25차 통합 재건축까지 따냈다. 신반포19·25차는 신반포19차·25차와 한신진일, 잠원CJ아파트를 통합해 최고 49층, 616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사업으로 총 공사비는 4434억원에 달한다. 단일 사업장 수주를 넘어 반포 일대에서 래미안의 존재감을 다시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린 셈이다. 이미 삼성물산은 반포에서 래미안 원베일리, 래미안 퍼스티지, 래미안 원펜타스,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 래미안 신반포팰리스, 래미안신반포 리오센트 등을 구축하고 있다. 신반포19·25차까지 확보하면서 반포권에서 ‘래미안 타운’의 밀도를 높이고, 향후 인근 정비사업장에서 래미안 브랜드를 비교 기준으로 세우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대치권에서도 같은 흐름이 읽힌다. 삼성물산은 올해 6892억원 규모의 대치쌍용1차 재건축 시공권을 확보했는데, 이 사업은 대치동 핵심 입지의 재건축 사업인 데다 후속 정비사업과도 연결될 수 있는 권역 내 거점 성격이 강하다. 대치동에서는 은마아파트를 비롯해 대치미도, 대치선경, 대치우성1차·대치쌍용2차 통합 재건축 등 주요 노후 단지가 잇따라 사업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사업장의 추정 공사비를 합산하면 1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치쌍용1차 수주가 단순한 한 건의 실적을 넘어 대치권 정비사업 공략의 교두보로 평가되는 이유다.
압구정4구역은 강남권 도시정비 시장에서도 상징성이 큰 사업장이다. 공사비만 2조1154억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장이라는 점은 물론, 압구정 일대 재건축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핵심 현장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쟁사 텃밭으로 여겨지는 압구정에서 래미안 브랜드가 조합원 선택의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특히 시장에서는 삼성물산 연승 행보의 시발점이 된 한남4구역에 주목한다. 빅매치였음에도 삼성물산은 조합원 투표에서 675표를 얻어 경쟁사(335표)를 크게 앞섰다. 시장 예상을 뛰어넘은 대승은 삼성물산이 서울 하이엔드 도시정비 시장에서 조합원 선택의 기준점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줬고, 오세철식 ‘거점형 선별 수주’ 전략에도 힘을 실었다.
실제, 삼성물산의 정비사업 입찰은 최고경영진의 판단 영역에서 관리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1월 경영위원회 안건으로 ‘주택 정비사업 입찰의 건’을 올려 의결했다. 경영위원회는 오 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주요 사내이사가 참여하는 조직이다. 정비사업 수주가 영업 현장의 개별 판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수익성, 리스크, 브랜드 가치, 향후 권역 내 파급력까지 따지는 경영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 오세철 대표의 선별 수주 전략이 단순히 ‘먹을 만한 판’을 고르는 일반적인 선별 수주와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사비가 급등한 시장 여건 속에서 브랜드 파워와 설계·기술·사업관리 역량을 앞세워 ‘제값’을 인정받고, 조합에는 준공 후 자산가치 상승 기대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즉 삼성물산만의 프리미엄을 조합원 표심으로 연결하며 핵심지를 중심으로 수주 규모와 내실을 동시에 키워가고 있는 셈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한남, 압구정 같은 상징성 높은 정비사업장은 단순 도급 물량이 아니라 래미안 브랜드 가치와 향후 도시정비 시장 내 레퍼런스를 동시에 키울 수 있는 무대”라며 “오세철 대표의 전략은 단순히 수익성만을 본 선별 수주가 아니라 브랜드 프리미엄을 회수할 수 있는 선별 수주"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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