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65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선율이 다시 무대 위에 오른다. 거문고산조의 깊은 울림을 오늘로 잇는 자리에서, 한 명인의 축적된 예술 세계가 현재형으로 호흡한다. 전통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연주와 몸짓으로 새롭게 확장된다.
오는 26일 민속극장 풍류에서 펼쳐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보유자 김영재 명인의 공개행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 기록이 된다. 공연을 넘어, 오랜 시간 이어진 전승의 흐름과 예술적 축적이 집약된 무대다.
김영재 명인은 신쾌동류 거문고산조의 대표적 전승자로, 교육과 공연을 병행하며 전통음악의 맥을 지켜온 인물이다. 그의 연주는 기술의 숙련을 넘어 삶과 시간이 스며든 울림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무대는 그가 직접 참여해 음악적 유산을 관객과 공유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깊고 묵직한 음색과 유려한 장단 전개로 한국 산조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파로 꼽힌다. 느림에서 빠름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며,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다양한 정서를 품는다. 이러한 음악적 특질은 단지 전통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과 만날 때 더욱 강렬하게 살아난다.
공연은 바로 그 접점을 무대 위에서 구현한다. 전통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오늘의 감각으로 확장하는 기획은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오래된 선율이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순간, 전통음악은 동시대 예술로 다시 자리 잡는다.
공연의 시작은 거문고 향제풍류 ‘잔도드리’로 열린다. 향제풍류 특유의 단정한 흐름은 무대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며, 이어질 산조의 깊이를 예고한다. 이수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내는 합주는 전승 공동체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신쾌동류 거문고산조 ‘진양’과 ‘중모리’는 이번 공연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한다. 김영재 명인을 비롯한 연주자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선율은 유파의 정체성을 가장 밀도 있게 드러낸다. 장단의 흐름 속에서 축적된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진양에서 시작해 점차 속도를 높여가는 산조의 전개는 음악적 긴장감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린다. 느린 호흡 속에 담긴 깊은 여운과, 빠른 장단에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비를 이루며 관객의 몰입을 이끈다.
철가야금과 춤이 결합된 무대도 눈길을 끈다. 김영재 명인의 65주년 기념 음반 '2025 철가야금 독주곡'을 바탕으로, 양승미 안무가가 움직임을 더한다. 소리와 몸짓이 결합되며 음악의 감정이 시각적으로 확장된다.
무대는 전통음악이 다른 예술 장르와 만날 때 발생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청각 중심의 경험이 시각적 요소와 결합되며 관객의 감각을 넓힌다. 전통은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가는 예술임을 증명한다.
거문고 즉흥곡과 병창 ‘팔도유람가’ 역시 주목할 만하다. 즉흥 연주와 노래가 결합된 이 무대는 전통음악의 유연성과 생동감을 드러낸다. 여러 연주자가 함께 참여하며 만들어내는 호흡은 현장성을 극대화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문고산조 합주는 전승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수자와 전수자들이 한 무대에 올라 세대를 잇는 흐름을 구현한다. 음악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공동체의 유산으로 확장된다.
특히 다수의 연주자가 함께 만들어내는 산조는 개인 독주의 형식을 넘어선 또 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서로 다른 해석이 한데 어우러지며 다층적인 울림을 형성한다. 이는 전통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공연은 신쾌동류 거문고산조의 보존과 확산을 위한 중요한 계기로 기능한다. 공연을 통해 전통음악의 미학을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며, 전승의 기반을 넓힌다. 문화유산은 관객과 만날 때 비로소 현재의 의미를 획득한다.
결국 무대는 한국 전통음악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긴 시간 이어진 선율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울린다. 그 울림은 또 다른 세대로 이어지며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갈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