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론 안팎에선 평범한 청년들과 무주택 서민들의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금리·한도 우대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개개인 별로 내 집 마련 난이도 격차가 큰 탓이 상대적 박탈감은 물론 삶의 의욕까지 잃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이유에서다. 가령 일부 대기업 근로자의 경우 수억원대 성과급에 회사 대출까지 받아 어렵지 않게 집을 살 수 있는데 반해 나머지 근로자는 적은 급여에 대출규제까지 적용받아 내 집 마련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 역시 취업까진 개인의 능력이라 하더라도 내 집 마련 과정에서도 차별을 받는 것은 불평등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며 청년·무주택자 대상의 파격적인 대출 규제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아파트 12억, 대출한도 6억…삼성맨·SK맨 아니면 10년 꼬박 모아도 내 집 마련 희박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12억3833만원을 기록했다. 1월 대비 10.56%, 금액으론 1억1833억원 상승한 가격이다. 1~5월까지의 상승률은 2008년 해당 통계 집계 이래 같은 기간 기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위가격은 전체 아파트를 가격 순서로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하는 가격이다. 평균 가격에 비해 특정 지역 고가 아파트 시세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실수요자의 체감 수준에 가장 가까운 통계로 평가된다. 신축 아파트 분양가도 빠르게 오르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전용 84㎡ 평균 분양가격은 21억3608만원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 11.49%,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땐 무려 32.13%나 상승한 수준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현재 서울의 경우 주담대 최대 한도는 6억원이다. 이 마저도 15억원 이하 아파트에만 적용되고 그 이상일 땐 4억원으로 줄어든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을 적용해도 8억원이 넘는 현금이 있어야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셈이다. 올해 기준 직장인 평균 연봉이 대기업 7000만원, 중소기업 4500만원 등인 점을 감안하면 내 집 마련까지 걸리는 기간을 단순 계산하면 대기업 직장인 12년, 중소기업 직장인 18년 등으로 추산된다. 단, 소득세나 4대 보험 등의 비용을 제하지 않고 단 한 푼도 쓰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다. 재테크 등 근로 외 별도의 소득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도 포함됐다.
그러나 특정 기업 직장인들에겐 이러한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연봉 외 성과급만 수억원에 달하고 회사 대출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직원의 경우 얼마 전 타결된 임단협 결과에 따라 올해 성과급만 평균 6억원 가량 수령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금을 제하더라도 성과급 실수령액은 4억5000만원 가량이 될 전망이다. 또 현재 삼성전자 직원은 25억원을 초과하지 않는 단독주택, 아파트, 오피스텔, 분양권 등을 매입할 때 회사에서 최대 5억원까지 연 1~2% 수준의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연봉을 한 푼도 모으지 않아도 단숨에 9~10억원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주담대를 최대한도까지 받지 않아도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를 매입 가능한 수준이다.
삼성전자 같은 기업은 앞으로 몇 곳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가장 유력한 곳은 삼성전자 보다 먼저 억대 성과급을 지급하기 시작한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일찌감치 노사합의를 통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했고 올해 초엔 지난해 호실적에 힘입어 평균 1억5000만원의 성과급을 실제로 지급했다. 올해는 메모리 반도체 실적이 더욱 늘어 성과급 규모가 약 6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아직까지 SK하이닉스의 사내 대출 최대한도는 1억원 가량에 불과한데 이를 두고 내부에선 삼성전자 수준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생들도 "삼전·SK하닉 못 가면 인생 끝" 한탄…"무주택자 대상 파격대출 정책 시급"
억대 성과급이나 사내 대출과 거리가 먼 무주택 청년·서민들은 박탈감을 토로하고 있다. 일각에선 삶의 의욕을 상실했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서울 소재 대기업 본사에 재직 중인 직장인 주장훈 씨(37·남·가명)는 "누구는 단숨에 내 집 마련이 가능하고 반대로 누구는 10년을 꼬박 모으고 심지어 그 마저도 집값이 오르면 영영 불가능한 지금의 구조는 정말 말이 안 된다"며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개인 노력이라 이해한다 치더라도 나머지 직장인들도 억대 성과급과 사내 대출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방법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성토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박지원 씨(25·남·가명)는 "요즘 주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취직 못하면 사실상 인생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농담을 종종하곤 한다"며 "실제로 요즘 같이 집값이 엄청 비싸고 대출도 못 받는 시대에 억대 성과급이나 사내 대출을 못 받으면 어떻게 결혼을 하고 애를 낳을 생각을 하겠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직원들도 그만큼 노력해서 거기까지 간 것이니 무조건 깎아 내리거나 성과급·사내대출 같은 걸 막자는 이야기가 아니다"며 "다른 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최소한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끔 이자를 더 내더라도 능력 내에서 최대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내 집 마련 여부는 결혼이나 출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금융지주 미래전략연구소가 지난 3월 발표한 '집값이 안정되면 달라질 것들: 내수의 질적 전환과 금융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불평등의 중심에 부동산이 자리 잡은 현재 구조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은 세대 간 후생 격차 완화, 소비 여력 회복, 청년층의 결혼·출산 여건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유·무의 경우라면 그 효과가 더욱 클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이다. 또한 최근 한국의 계층 간 소득 격차가 완화되고 있지만 자산 불평등은 심화된 상황이다. 우리나라 가구 자산의 70%는 부동산이다. 지난해 한국의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로 통계 집계 이래 최고 수준에 달했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분배 균등 상태, 1에 가까울수록 불균등한 상태를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소득 차이나 은행대출 외에 다른 자금원 확보 유·무에 따른 자산 불평등이 청년은 물론 대다수 직장인들의 박탈감을 키우고 삶의 의욕까지 꺾고 있는 만큼 청년·무주택자 대상의 파격적인 대출 우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고 교수는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은 단순한 자산 증식의 수단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이자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최소한의 토대다"며 "기업의 성과급이나 사내 대출 같은 사적인 자금원 유무가 주거 격차를 넘어 계층 간의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고 말했다. 이어 "무주택자 또는 청년들에게 장기적 대출 프로그램이나 파격적인 우대 금리를 적용하는 등 청년층이 내 집 마련의 희망을 놓지 않도록 돕는 공적 금융의 사다리 역할이 시급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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