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한화오션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사실상 수주했다. 방위사업청 제안서 평가 결과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을 약 0.6점 차이로 앞서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주목할 부분은 한화오션이 첨단 수상함 분야 레퍼런스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HD현대중공업은 수상함, 한화오션은 수중함(잠수함) 분야에서 강점을 가졌다는 인식을 뒤집을 기회가 됐고, 향후 해외 특수선 수주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종합 방산 기업’으로 도약을 꿈꾸는 한화그룹의 목표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평가다.
12일 한화오션에 따르면 함정 설계·건조 역량을 총동원해 지연된 사업 일정을 만회할 계획이다.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되면 해군 전력 유지에 차질이 없도록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라며 “KDDX에 핵심 국산화 개발장비 9종이 탑재되는 만큼 완벽한 체계통합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품질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KDDX는 약 7조8000억원 규모로 6000t급 이지스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총사업비로만 보면 단일 방산 프로젝트로는 국내 최대급이다.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수행한 기업이 기준이 되는 설계도와 핵심 기자재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선도함 1척 수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화오션이 6척을 모두 건조하지 않더라도 사업의 주도권은 항상 쥐고 있게 되는 셈이다.
이번 수주전에서 양사의 희비를 가른건 보안 감점이었다. 기술 점수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약 0.6점 앞섰으나 보안감점 1.2점 적용으로 한화오션의 종합 점수가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법원이 이미 HD현대중공업의 보안감점 연장 적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만큼 결과 자체가 뒤집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화오션의 수주를 폄하할 수는 없다. 한화오션은 기본설계 이전 단계인 개념설계를 수행하며 초기 방향성에 깊이 관여했고, 이후에도 상세설계를 위해 기술을 연마했다. 특히 고난도 특수선과 잠수함 건조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력이 한화오션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실제로 한화오션은 KDDX 이전 단계인 ‘구축함(KDX)’의 모든 라인업을 건조한 실적이 있다. KDX-Ⅰ 광개토대왕함·을지문덕함·양만춘함, KDX-Ⅱ 충무공이순신함·대조영함·강감찬함, KDX-Ⅲ 율곡이이함이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 엔지니어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구축함과 이지스 구축함은 모두 첨단 수상 전투함이다. 구축함은 영어권에서는 ‘디스트로이어(Destroyer, 파괴자)’, 동양권에서는 구축(驅逐)이라는 한자어로 표현된다. 적을 몰아내고 쫒아가 싸우는 군함이라는 의미다. 압도적 화력과 다양한 전투 플랫폼을 갖추고 대함·대잠 공격과 방공 임무를 담당한다.
이지스 구축함은 ‘이지스(Aegis) 전투체계’를 탑재한 구축함을 의미한다. 이지스 전투체계는 고성능 대공 레이더와 중장거리 함대공 미사일을 이용해 적 비행 무기에 대응하는 통합 전투체계다. 미국 록히드마틴이 최초로 제시한 개념이지만 ‘최신 방공함’을 ‘이지스함’으로 통칭할 정도로 위상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이지스 체계가 탑재된 구축함은 자함 보호를 넘어 특정 권역에 방공 능력을 부여하는 ‘권역 방어’ 임무가 부여된다”고 설명했다.
KDDX의 핵심은 이지스 시스템에 상응하는 방공 전투체계를 국산 기술로 갖추는 것이다. 그만큼 방산업계에서 전략적 중요도가 높다. 한국국방기술학회 유형곤 센터장은 “KDDX는 후속함 관련 국내 사업이나 향후 해외 수출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사업”이라며 “방산업계에서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로까지 해석되며 경쟁이 격화됐고, 이번에 사업을 수주한 한화오션이 탄력을 받게 됐다”고 평가했다.
한화오션은 상선과 특수선·해외 수주 3개의 성장축을 마련하게 됐다. 상선 수주 잔고가 수익성을 뒷받침하고, KDDX 수주로 국내 특수선 사업 기반이 굳건해졌다. 미국에서는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마스가(MASGA,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참여 기반을 마련했다. 캐나다 신형 잠수함 사업(CPSP) 수주 기대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최기일 교수는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과 함께 K-해양방산의 ‘양대산맥’으로 불렸지만, KDDX를 수주하며 한층 발돋움할 계기를 마련했다”며 “이번 프로젝트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내외 해양방산 사업 분야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룹 차원에서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한화는 ‘육·해·공 통합 방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2023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했다. 당시 인수를 주도한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오션 출범 이후 전폭적인 인프라 투자를 단행하며 체질 개선을 이끌었다. 이후 함정 플랫폼(한화오션), 전투체계·레이더 등 핵심 장비(한화시스템), 각종 무장체계(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이어지는 종합 방산 체계를 구축했다.
방산 전문가들은 이번 KDDX 수주가 한화의 전략을 입증하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기일 교수는 “종합 방산 체계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한화오션에 KDDX 수주는 전략의 ‘마지막 퍼즐’이나 ‘확실한 마침표’ 정도로 평가할 수 있다”며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형곤 센터장은 “KDDX는 레이더·전투 장비 등 종합 시스템이 탑재된다”며 “한화시스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그룹 계열사의 공급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고,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기술 평가에서 HD현대중공업의 점수가 높았던 만큼 실제 성과를 통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한화오션도 비상한 각오다. 한화오션 측은 “대한민국 해군력 증강과 대양해군 도약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파트너로서 KDDX 적기전력화에 매진하겠다”며 “사업보국 정신에 입각해 중소협력사와 상생 협력을 통해 K-해양방산 생태계를 강화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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