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머니=홍민정 기자] 금값이 4년 만에 약세장에 진입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이 반등하지 못하고 오히려 위험자산인 주식시장과 동조화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거래된 8월물 금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153.10달러(3.6%) 하락한 온스당 4133.30달러에 마감했다.
금 가격은 4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11월 이후 최저치이기도 하다.
특히 이날 종가는 지난 3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 대비 20% 이상 하락한 수준이다. 통상 금융시장에서는 고점 대비 20% 이상 가격이 하락할 경우 약세장(Bear Market)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한다.
마켓워치는 금이 약세장에 진입한 것은 2022년 이후 약 4년 만이라고 전했다. 다우존스 마켓데이터는 이번 하락이 고점 기록 후 91일 만에 발생했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약세장 진입 사례라고 분석했다.
금값은 올해 초 강세 흐름을 이어갔다. 지난 1월 29일 온스당 5354.80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연초 대비 상승률도 한때 23.4%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하며 현재는 연초 대비 약 4.8% 하락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예상보다 높은 미국 물가 지표가 금값 하락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2%로 집계돼 전월(3.8%)보다 상승했다. 이는 2023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방향을 금리 인하보다는 금리 인상 가능성 쪽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크리스 개프니 에버뱅크 월드마켓 사장은 "이번 물가 지표는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을 크게 낮췄다"며 "현재 시장은 차입 비용이 낮아지기보다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예캐피털마켓의 나임 아슬람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중동 지역 긴장이 국제유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으며 이는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의미한다"며 "이 경우 연준도 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은 대표적인 무이자 자산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금리가 상승하면 상대적으로 금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이 커지면서 투자 매력이 낮아진다.
아슬람 CIO는 "금은 보유해도 별도의 수익을 제공하지 않지만 국채와 채권은 안정적인 이자를 지급한다"며 "금리가 상승하는 환경에서는 투자자들이 금보다 채권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미국 국채금리는 상승세를 보였다.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5.016%,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535%까지 올랐다.
시장에서는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금값이 상승하지 못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추가 조치를 예고하면서 이날 뉴욕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안전자산 선호 심리의 수혜를 받던 금 역시 증시와 함께 하락하며 과거와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실제로 이달 들어 금 선물과 나스닥지수의 상관계수는 0.91을 기록했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두 자산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미국 금리 경로가 금값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개프니 사장은 "시장이 미국 금리 방향에 대한 확신을 갖기 전까지 금 가격은 추가 조정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금은 여전히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나 지정학적 충격에 대비하는 '재앙 보험' 역할을 하는 자산인 만큼 장기 투자 관점에서는 포트폴리오 내 중요한 비중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가격 수준은 장기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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