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뉴욕증시가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 고조와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라는 메가톤급 악재를 만나 일제히 급락했다.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최근 시장을 견인하던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기술주를 중심으로 가파른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
10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953.33포인트(1.87%) 밀린 4만9918.78에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119.66포인트(1.62%) 내린 7266.99를,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509.32포인트(1.98%) 급락한 2만5169.50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이로써 뉴욕증시 주요 지수는 고평가 논란이 일던 AI 기술주 세일즈에 이어 중동 악재까지 겹치며 3주 만에 처음으로 이틀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밸류에이션 부담 속 자금 조달 악재…AI·반도체주 전방위 포화
이날 증시 하락을 주도한 핵심 축은 AI와 반도체 섹터였다. 그동안 가파르게 올랐던 주가에 부담을 느낀 투자자들이 악재가 터지자 빠르게 현금 확보에 나선 결과다.
시장 플래그십 종목인 엔비디아가 3.4% 하락했고,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4.7% 떨어졌다. 업종 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3.6% 밀렸다.
특히 AI 서버 제조사인 슈퍼마이크로컴퓨터(SMCI)의 폭락이 시장 심리를 극도로 위축시켰다. SMCI는 부품 구매 자금을 마련하고자 70억 달러 규모의 유상증자(주식 발행) 계획을 발표했고, 주가는 하루 만에 23.1% 곤두박질쳤다.
외신들은 이번 매도세에 거시적 요인 외에도 수급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는 12일로 예정된 스페이스X의 초대형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기관투자자들이 공모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빅테크 주식을 대거 처분하며 기술주 전반의 하락 압력을 가중시켰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더 강하게 타격” vs 이란 “강력 맞대응”…유가 폭등에 물가 경고등
지정학적 위기는 시장의 공포를 극대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이란과의 교전을 언급하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이란을 더 강하게 타격하겠다”며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역시 이에 맞서 강력한 맞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양국의 전면전 우려에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8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1.80% 오른 배럴당 93.10달러를 기록했고, 7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2.07% 상승한 90.03달러에 마감하며 배럴당 90달러선을 돌파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즉각 인플레이션 우려로 이어졌다. 이날 오전 발표된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해 3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2%, 전년 대비 2.9% 올라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으나, ‘유가 급등 조짐이 향후 물가 지표를 다시 끌어올릴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예상치에 부합한 근원 물가 호재가 중동발 유가 충격에 완전히 묻혔다”며 “시장 참여자들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막기 위해 연말까지 최소 한 차례 이상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을 자산 가격에 빠르게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국채금리 상승 속 금값은 4%대 급락…“낙관론 거둬야 할 때”
채권시장에서는 장기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며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전장보다 3bp(1bp=0.01%포인트) 상승한 4.55%를 기록했다. 반면 통화정책 변화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4.12%로 소폭 하락하며 혼조세를 보였다.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국제 금 가격은 이례적으로 폭락했다.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4,077.91달러로 4.3% 급락했다. 지정학적 위기보다 유가 상승에 따른 연준의 추가 긴축(금리 인상) 우려가 더 크게 작용하면서, 이자를 주지 않는 자산인 금의 투자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향후 증시 전망에 대해 전문가들은 극도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노스라이트 자산운용의 크리스 자카렐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금 같은 중동의 긴장 국면이 지속되거나 악화한다면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시장의 모든 낙관적인 예측은 전부 빗나갈 수밖에 없다”며 “치솟는 에너지 가격이 그동안 쌓아온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을 완전히 가로막을 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Copyright ⓒ 직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