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서점·술집 통한 조용한 연대…"감시 피한 전략적 적응"
(서울=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당국의 삼엄한 경계 속 중국 남부 쓰촨성의 한 도시에서 조심스레 자리 잡아가고 있는 여성 전용 공간들을 영국 일간 가디언이 조명했다.
10일 가디언은 중국에서 페미니즘 활동이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엄격한 감시를 받는 가운데 서점이나 술집 같은 공간을 여성 전용으로 운영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권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로 알려진 쓰촨성 청두시 중심가에 위치한 작은 서점 '라이수샤'는 여성 전용 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주디스 버틀러부터 시몬 드 보부아르까지 페미니즘 서적들을 위주로 판매하는 서점의 주인인 선선(42)은 "세상에 남성을 위한 서점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2023년 8월 문을 연 이 서점은 청두에서 여성이 중심이 되는 커뮤니티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책 판매만이 아닌 갱년기 대처법이나 인공지능(AI)이 얼마나 편향적인지와 같은 주제를 다루는 독서 토론 모임 등도 꾸리고 있다.
그러면서 문제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그는 항상 행사 개최 전 공안에 신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작은 모임조차도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항상 따라붙는다. 어떠한 모임이 집단행동이나 시위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를 당국에서 항상 주시하고 있는 탓이다.
주요 대도시인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지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영화제나 강연, 심지어는 보드게임 행사까지도 취소되곤 했다.
청두에서 여성 전용 바 '리어뷰 미러'를 운영 중인 장원자(28) 또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힌 그는 그저 이성애자 여성과 동성애자 여성이 모두 안전하게 휴식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 전용 공간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 아님에도 그가 술집을 개업했을 때 한 남성이 경찰에 가게를 신고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청두에서 이러한 공간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게 된 것은 중국 당국의 과도한 감시 속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적응 방편의 하나라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2010년대에 중국에서는 소규모 여성 단체들이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가 구금되거나 감시의 대상이 됐다.
온라인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소셜미디어 계정들은 '적대 행위'라는 명목으로 주기적으로 폐쇄 당하고 있다.
이후 가부장제나 전통적인 여성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보다는 여성들 간 연대와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방식으로 여성주의 운동의 양상이 변모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 여성들은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음에도 고령화와 국가 지원 보육 축소로 인해 돌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활동가였다가 중국을 떠난 리마이쯔는 가디언에 "권리에 초점을 맞춘 조직 활동은 정부의 눈길을 끌기 쉽다"며 "(이러한 변화는) 페미니즘의 후퇴라기보다는 더욱 엄격해진 정치 환경에 대한 전략적 적응"이라고 말했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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