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신용융자를 활용한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달 들어 수백억원 규모의 반대매매 물량이 시장에 출회되면서 '빚투(빚내서 투자)'의 위험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한국의 신용융자 제도가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아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코스피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8조3265억원으로 집계됐다. 코스닥 시장까지 더한 전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약 37조7904억원에 이른다. 지난 5월 29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약 38조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뒤 아직 갚지 않은 대출 총액을 뜻하며 개인 투자자의 '빚투' 규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활용된다. 통상 차입 투자 규모가 비대해진 상황에서 증시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담보유지비율을 채우지 못한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지며 주가 하락을 견인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최근 반대매매 규모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말 수십억원 안팎이던 일평균 반대매매 대금은 이달 들어 수천억원대로 치솟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 243억원이던 반대매대 규모는 5일 1662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어 소폭하락하긴 했지만 8일에도 1391억원을 기록했다. 반대매매 물량이 시장에 대거 출하되면 이는 주가 하락 압력을 가중시키고 떨어진 주가가 다시 추가 반대매매를 유발하는 연쇄적 매도 폭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신용융자를 활용한 이른바 '빚투'는 증시가 크게 상승할 때는 지렛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손실로 돌아올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며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자산 대비 과도한 빚을 지게 되면 가계 재정 파탄으로 이어질 위험성도 매우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내 증시의 신용거래융자 규모가 확대되는 주요 요인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진입장벽을 지적한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은 종목별 위험도에 따라 신용거래보증금률을 최소 40%에서 60% 수준으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 만약 보증금률이 40%로 책정된 종목이라면 투자자는 보유 자금의 최대 2.5배에 달하는 규모까지 주식을 매수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 비해 미국은 신용거래 투자 진입 단계부터 엄격한 규제를 적용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증권사 대출 및 신용거래 규제법인 '레귤레이션 T(Regulation T)' 규정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는 주식 매수 대금의 최소 50%를 자기자본으로 조달해야 한다. 최소 신용거래보증금률이 40% 수준인 국내 일부 종목의 레버리지 배율(최대 2.5배)과 비교하면 차입 한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용거래 계좌를 개설하기 위한 최소 요건도 존재한다. 미국 금융당국 규정상 투자자는 최소 2000달러(한화 약 300만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신용거래융자 투자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투자하는 마진 계좌를 활용해 단기 매매를 반복하는 투자자에 대한 규제 장치도 마련돼 있다. 미국 금융당국은 5영업일 이내에 4회 이상 당일 매수·매도를 진행하는 투자자를 '패턴 데이 트레이더(PDT)'로 지정한다. PDT로 분류된 투자자는 계좌 내 순자산 총액을 최소 2만5000달러(한화 약 3400만 원) 이상으로 상시 유지해야 하며 이 기준을 밑돌 경우 당일 매매(데이 트레이딩) 거래가 전면 제한된다. 계좌 개설 이후 단기 매매 횟수나 자산 규모에 따른 별도의 매매 제한을 두지 않는 한국 증시와는 대조적이다.
담보 부족 상황에 대한 증권사의 대응도 국내보다 강경한 편이다. 국내 증권사의 경우 담보유지비율이 기준선을 밑돌면 투자자에게 추가 증거금 납입을 요구하고 통상 2영업일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반대매매를 집행한다. 이와 달리 미국 증권업계는 담보비율이 미달하는 즉시 별도의 유예 기간이나 사전 통지 없이 장중에 보유 주식을 실시간으로 강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약관상 확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용거래융자가 자산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는 있으나 하락장에서는 투자 손실의 폭을 크게 늘릴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증시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현재 상황에서는 신용융자 잔고 증가가 향후 반대매매 물량 확대와 시장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신용융자 제도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진입장벽이 다소 낮아 자본력이 부족한 개인 투자자들도 너무 쉽게 빚을 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낮은 문턱이 최근의 '빚투 열풍'을 부추긴 측면이 크다"며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리스크가 될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 차원에서 신용거래 계좌 개설 요건이나 담보 비율 등 진입 규제를 보다 엄격하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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