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삼해주는 날짜를 마시는 술이다. 음력 정월 첫 돼지날, 해일(亥日)에 술독을 들인다. 다시 돌아오는 돼지날마다 덧술을 더한다. 이름의 ‘삼해(三亥)’는 세 번의 해일을 뜻한다. 술 빚는 날부터 마시는 때까지 계절 하나가 천천히 지나간다. 정월 찬 기운 속에서 시작된 술은 버들개지가 흩날릴 무렵 잔에 오른다.
해일은 십이지의 끝인 돼지날이다. 옛사람들은 이 날을 정갈한 날로 여겼다. 술독을 여는 시간까지 살폈다. 밑술을 빚은 뒤 다시 찾아온 해일에 덧술을 치고, 세 번째 해일에 재덧술을 넣는다. 짧게는 한 달 남짓, 길게는 100일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해주는 백일주라 불렸다. 버들개지가 날릴 때 마신다 하여 유서주(柳絮酒)라는 이름도 얻었다. 술법만 놓고 보면 삼해주는 삼양주다. 한 차례 발효로 끝나는 술보다 공이 많이 든다. 덧술을 반복할수록 발효가 안정된다. 쌀과 누룩, 물이 여러 번 만나며 향은 깊어지고 술의 뼈대는 단단해진다. 맑은 약주로 떠내면 삼해약주가 된다. 익은 약주를 다시 증류하면 삼해소주가 된다.
◇금주령을 부른 한양의 명주
삼해주는 옛 서울에서 이름난 술이었다. 고려 문헌으로 알려진 '동국이상국집'을 비롯해 '산림경제', '요록', '주방문', '양주방' 등 여러 주방문에 삼해주 제조법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 음식·술 관련 기록에서 삼해주가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은 당시 술이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말해준다. 술 한 종류가 여러 조리서에 반복해 적혔다는 점만으로도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인기는 때로 문제를 불렀다. 영조 때에는 서울로 들어오는 쌀이 삼해주 제조에 몰린다는 상소가 올랐다. 흉년과 미곡 정책이 민감했던 시대에 쌀을 많이 쓰는 고급 술은 금주령의 표적이 됐다. 삼해주는 사대부 술상에서 사랑받은 명주였다. 하지만 권력이 쌀 소비를 걱정하게 한 술이기도 했다. 맛이 좋았고, 수요가 컸다. 정월 한때 집중해서 빚어야 했기에 논쟁의 한가운데 섰다. 마포와 공덕 일대도 삼해주 기억에서 빠지지 않는다. 한강 물길을 끼고 세곡선과 상선이 오가던 마포나루 주변은 한양의 물류 중심지였다. 공덕의 옹막이가 삼해주 대량 제조 공간처럼 쓰였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겨울에는 옹기를 굽지 않는 가마가 비어 있었다. 차가운 공간은 정월 술을 빚기에 알맞았다. 한양의 쌀, 한강의 물길, 마포의 술독이 삼해주라는 도시 술의 배경이 됐다.
◇복온공주에서 권희자 명예보유자까지
삼해주의 전승에는 궁중과 사대부 가문이 겹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순조의 딸 복온공주가 안동 김씨 집안에 시집가며 궁중의 삼해주 술법이 가문에 전해졌다. 궁중 술이 혼례를 따라 사대부 집안으로 옮겨가고, 다시 며느리들의 손을 거치며 가양주로 살아남았다는 서사는 삼해주를 서울 술답게 만든다. 술 한 병 안에 궁중, 한양 양반가, 집안 부엌의 시간이 겹쳐 있다.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제8호 삼해주(약주)는 권희자 명예보유자가 올라있다. 권희자 명예보유자는 안동 김씨 가문의 며느리로 들어가 집안 술법을 익혔다. 1993년 보유자로 인정됐다. 지난해에는 명예보유자가 됐다. 삼해약주는 상품 한 병의 문제보다 사라질 뻔한 서울 가양주의 술법을 보존하는 일에 가깝다. 술맛을 지키는 일은 곧 도시가 잃어버린 생활문화를 다시 붙드는 일이다. 삼해소주는 맑은 약주를 만든 뒤 증류하면 도수 높은 소주가 된다. 약주 투입량의 일부만 소주로 얻을 수 있어 고급 술로 여겨졌다. 삼해소주는 이동복 보유자, 김택상 명인 등으로 전승사가 이어졌으나 현재 보유자 문제는 약주보다 복잡하다.
◇100일 저온발효가 남긴 순후한 맛
삼해주는 재료보다 시간이 앞서는 술이다. 멥쌀과 찹쌀, 누룩, 물이 중심 재료지만 문헌마다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권희자 명예보유자의 삼해약주는 멥쌀을 중심으로 하며, 밀기울을 걷어낸 흰 누룩인 백곡을 쓰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같은 이름 아래 여러 제조법이 남은 까닭은 삼해주가 특정 집안만의 술이기보다 긴 시간 널리 빚어진 술이었기 때문이다. 핵심은 세 번 담그는 과정과 낮은 온도다. 정월 추위는 발효 속도를 늦춘다. 술은 급하게 끓어오르지 않고 천천히 익는다. 덧술이 더해질수록 맛은 두꺼워지고 향은 차분해진다. 빨리 마시는 술에서는 얻기 어려운 순후한 맛이 나온다. 입에 닿을 때는 부드럽고, 목을 넘긴 뒤에는 은근한 취기가 늦게 도착한다. 삼해주를 두고 “정신은 맑은데 몸이 늦게 반응한다”는 식의 말이 전해지는 이유다.
색은 맑고 노르스름하다. 향은 누룩에서 온 고소함, 곡물의 단내, 오래 익은 약주의 깊은 기운이 겹친다. 단맛이 있지만 가볍게 튀지 않고, 산미와 쓴맛이 균형을 잡는다. 삼해약주는 잔을 빨리 비우기보다 향을 맡고 조금씩 마실 때 제맛이 산다. 증류한 삼해소주는 약주의 향을 응축한 술로, 맑은 불기운과 긴 여운을 남긴다. 삼해주는 서울이 잊은 자기 술에 가깝다. 도시에는 술집이 넘치지만, 서울의 이름으로 오래 남은 술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마포나루의 술독, 한양 사대부의 술상, 복온공주의 혼례, 권희자 명예보유자의 손길은 삼해주 안에서 한 줄로 이어진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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