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돌봄노동자들이 처우개선과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급속한 고령화로 돌봄서비스 수요와 사회적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정작 현장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인력 부족,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더욱이 최근 돌봄노동자 절반 이상이 폭언과 성희롱을 경험하고 폭염 등 안전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돌봄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9일 청와대 앞에서 ‘정부는 응답하라! 돌봄노동자 처우개선 예산쟁취! 돌봄노동자 6월 투쟁선포 민주노총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이들은 ▲기본급 최저임금 130% 보장 ▲월 16만원 정액 식대 지급 ▲명절상여금 연 120% 지급 ▲재가방문 돌봄노동자 교통비 월 15만원 지급 등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는 과도한 요구가 아닌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목소리다”며 “공무원 및 공무직과 동일한 수준의 처우를 돌봄노동자에게도 보장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현재 재가 요양보호사의 월평균 임금은 약 125만원(중앙값 102만원), 장애인활동지원사는 156만원, 아이돌보미는 172만원 수준이다.
이에 일선 현장에서는 임금 등 돌봄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애인활동지원지부 박대진 지부장은 “올해 65세 이상 인구는 1084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1%에 달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50년에는 국민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이 될 것”이라며 “돌봄 수요는 폭증하는데 처우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8개국 중 최하위”라고 규탄했다.
공공연대노조 이주남 부위원장은 “성평등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여년간 전체 노동자 임금이 95.9% 오르는 동안 돌봄노동자 임금은 절반밖에 오르지 않았다”며 “돌봄노동자의 88%가 여성으로 돌봄노동이 처음부터 저보상 여성노동으로 설계된 구조가 저임금의 근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돌봄노동자의 4분의 3이 비정규직이고 평균 근속기간은 1.9년에 불과하다”며 “이런 조건에서 양질의 돌봄 서비스는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임금에 이어 폭언, 성희롱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3월 26일부터 5월 30일까지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요양보호사·사회복지시설 종사자·보육교사·생활지원사 등 4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3.3%는 업무 중 이용자 또는 가족 등으로부터 갑질과 폭언·폭행·성희롱 등의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피해를 당했을 때 ‘혼자 참는다’는 응답은 조합원 기준 51.7%를 기록했다. 돌봄노동은 이용자와 직접 대면하는 감정노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노동자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또 돌봄노동자의 85.7%는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휴가를 사용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대신 일해줄 사람이 없어서’가 가장 많이 지목됐다. 대체인력과 적정인력 배치가 보장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이에 응답자의 96.3%는 정부가 실질 사용자로서 원청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처우개선 요구사항은 ‘생활가능한 월급·수가 인상(65.7%)’, ‘교통비·통신비 등 수당 지급(41.6%)’, ‘근속수당 신설·인상(35.4%)’ 순이었다.
폭염에 취약한 현실도 드러났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폭염 재난 관련 필수업무 종사자 실태조사’ 결과, 노인 돌봄 생활지원사의 경우 방문·이동 업무가 많아 장시간 폭염에 노출되지만 휴게 공간이나 냉방·보호 장비 지원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환경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 수요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달 18일 발표한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에서 4개 직군, 205개 직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향후 일자리 증가가 예상되는 직업군에 간호사,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 돌봄 관련 직종이 대표적으로 포함돼 있었다.
반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4월 발간한 연구보고서 ‘노인돌봄 인력의 전망과 정책 대응’에 따르면 2040년이면 현재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요양보호사가 무려 77만명 이상 부족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같은 전망들은 돌봄 수요의 구조적 증가가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인구 고령화에 따른 장기적 흐름임을 보여주며 인력 부족 문제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앞서 지난 4월 정부는 돌봄노동자와의 지속적인 소통·협의를 이어갈 첫 번째 노·정 협의체를 꾸린 상태다. 이번 출범을 계기로 공공부문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지원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다만 일선 현장에서는 정부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정부의 대응이 지속될 경우 오는 7월 15일 돌봄노동자 총파업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돌봄노동이 고령화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사회가 이를 지나치게 낮은 비용으로 해결하려고 하며 돌봄노동이 전문적인 노동임에도 여전히 노동자성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특히 돌봄노동이 ‘봉사’나 ‘헌신’의 영역으로 인식되면서 노동자로서의 권리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낮은 임금 때문에 청년층이나 남성 노동자의 유입이 어려워지고 결국 고령의 여성 노동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이른바 ‘노노(老老)돌봄’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며 “저임금과 부당한 처우를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하며 임금과 처우 개선을 통해 신규 인력을 유입하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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