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절반을 넘기고 전세 매물도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 규제가 추가될 경우 전세 축소 흐름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갭투자 등 레버리지 투자를 차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전세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추가 규제가 임대차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전세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일종의 사금융”이라며 “전세대출을 많이 해준 것이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고 밝혔다. 또 “남의 돈으로 투기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레버리지 투자 차단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전세대출 문제를 직접 집값 상승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규제 강화 논의가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당국도 관련 규제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2026년 가계대출 관리방안’을 발표하며 투기적 목적의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대출규제 방안을 추후 내놓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1일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부동산과 금융의 절연’ 기조를 언급하며 “투기적 목적의 비거주 1주택 대출 규제 방안을 계속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4월 말 수도권과 규제지역에서 유주택자가 받은 보증부 전세대출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세제 개편안과 맞물려 전세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현재는 지난해 10·15 대책을 통해 1주택자가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전세대출을 받는 경우 대출 이자에만 DSR을 반영하고 있다.
전세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갭투자 등 투기 수요에 금융권 자금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내 규제지역에서 아파트를 보유한 1주택자들이 은행권에서 조달받은 전세대출 규모는 약 9조2000억원, 건수로는 5만9000건 수준으로 추산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주택 매입 구조를 차단하지 않고서는 대출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자금 대출은 본래 저금리 시기 취약계층의 주거 지원을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적용 대상과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됐다”며 “다만 공급 확대와 수요 억제를 어떻게 함께 다룰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세시장이 이미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서울 아파트 신규 임대차 계약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4.2%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월세 비중은 45.9%였다. 1년 새 서울 아파트 신규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8%포인트 이상 높아진 셈이다.
전세 물량 감소세도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8574건으로 1년 전 2만5240건보다 26% 넘게 줄었다. 비거주 1주택자 등에 대한 전세대출 규제가 추가될 경우 월세 전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세 축소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의 선택 변화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고금리와 보증사고 우려가 커지면서 임차인은 보증금 규모가 큰 전세를 부담스러워하고, 임대인은 대출 규제와 세 부담을 고려해 월세 또는 반전세를 선호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미 지난해 9·7 대책을 통해 1주택자의 전세대출 한도를 2억원으로 축소했다. 추가 규제가 시행되면 전세를 끼고 주택을 보유하는 투자 수요는 줄어들 수 있지만, 동시에 전세 공급 축소와 월세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은 “전세는 레버리지 투자의 수익, 즉 가격 상승을 전제로 하는 시스템으로 가격이 안정되면 자연스럽게 축소될 것”이라면서도 “가격이 안정돼서가 아니라 1가구 1주택 주의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반강제로 줄어들 경우 세입자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세를 인위적으로 줄이려면 공급자금융을 통해 저렴한 월세로 전환하면서 주거비 부담을 완충하는 예방적 접근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아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