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는 돌아갔지만”···호르무즈에는 우회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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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는 돌아갔지만”···호르무즈에는 우회로가 없다

이뉴스투데이 2026-06-09 15:32: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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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에 정박 중인 선박들. [사진=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 중인 선박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중동지역 긴장이 장기화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안감이 극도로 커지고 있다. 현재도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홍해는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라는 대안이 있었지만,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마땅한 대체 항로가 없는 실정이다. 해운업계에서는 이번 위기가 특정 해상 통로가 막힐 경우 글로벌 물류망 전체를 흔들 수 있음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홍해는 돌아갔지만···호르무즈는 다르다

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상 통로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지역 에너지 수출국의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핵심 길목이다.

지난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직후 예멘의 친이란 무장 조직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 연관 선박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홍해 사태와 가장 큰 차이는 대체 항로다.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아시아~유럽 항로는 후티 반군 공격 이후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가는 방식으로 우회가 가능했다. 항해 기간과 연료비는 늘었지만, 선박을 추가 투입하고 운항 일정을 조정하면 물류 흐름을 완전히 끊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반면 호르무즈 해협은 구조가 다르다. 해협 안쪽 항만으로 들어가야 하는 선박은 사실상 다른 바닷길을 찾기 어렵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홍해가 막히면 거리가 늘어나고 선박을 더 투입하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항로가 있었지만, 호르무즈 해협 안쪽 항만은 성격이 다르다”며 “대체 항로가 있다기보다 막히면 서비스 축소나 중단 외에는 선택지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안쪽의 쿠웨이트 등으로 들어가려는 선박은 해협 통과가 어려워지면 사실상 들어갈 방법이 없다”면서 “컨테이너선의 경우에도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는 대신 오만 쪽 항만을 활용하는 방식이 거론될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은 긴장 국면에서는 그런 서비스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원유·LNG 몰린 길목···에너지 수송 흔드는 병목

호르무즈 해협의 중요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3월 발표한 ‘중동과 글로벌 에너지 시장(The Middle East and Global Energy Markets)’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석유제품의 약 80%는 아시아 시장으로 향했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LNG는 전 세계 LNG 교역량의 약 20%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거래되는 LNG 5분의 1이 이 해협을 지나간 셈이다.

IEA 자료에 따르면 카타르 LNG 수출의 약 93%, UAE LNG 수출의 약 96%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IEA도 이 물량을 시장으로 내보낼 수 있는 대체 항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이 단순한 해운 문제가 아니라 원유와 LNG 수급 문제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지난 3월 10일 발표한 ‘호르무즈 해협 교란이 세계 무역과 개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군사적 긴장 고조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 흐름이 차질을 빚었고, 그 영향은 에너지 시장과 해상운송, 글로벌 공급망으로 확산했다. UNCTAD는 호르무즈 해협을 세계 교역과 에너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병목구간으로 지목했다.

최근 상황도 불안정하다. 8일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항행은 유지하되 선박 종류와 화물 등에 따라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EU)은 호르무즈 해협 해상 교통을 제한한 데 관여한 이란 혁명수비대 관련 인사와 조직을 제재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가 해운업계를 넘어 외교·안보 사안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체 항로의 한계···서비스 중단까지 거론

해운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단순한 운항 차질이 아니다. 통항 제한이 장기화될 경우 일부 노선의 운항 축소와 서비스 중단, 에너지 공급망 재조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중동지역으로 향하는 서비스는 위험 수준과 항만 여건에 따라 운항 여부가 결정된다”며 “선사 입장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상황이 악화되면 운항 제한이나 서비스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선사들은 위험 해역 진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운항 계획을 조정하고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컨테이너선의 경우 해협 안쪽으로 진입하는 대신 오만 지역 항만을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최근 긴장 고조로 이 같은 대응도 제한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위기는 선박 운항뿐 아니라 화주들의 공급망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사는 화주의 요청에 따라 화물을 운송하는 구조”라며 “정유사 등 화주가 원유와 LNG 수입처를 변경하면 선사는 그에 맞춰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특정 지역의 분쟁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구조의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홍해 사태와 파나마 운하 가뭄,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잇따르면서 주요 해상 통로에 물동량이 집중된 구조 자체가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해운단체 BIMCO가 지난 5월 20일 공개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지침'에 따르면 현재도 수백 척의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향후 항행 여건이 정상화되더라도 이들 선박이 한꺼번에 이동할 경우 상당한 항행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의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물류망과 에너지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회로가 없는 해상 통로의 특성상 통항 제약이 길어질수록 선사와 화주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 수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더 먼 길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홍해 사태와 달리, 호르무즈 해협은 물류망 자체를 흔들 수 있는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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