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판화하기⑥ 에칭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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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 판화하기⑥ 에칭의 묘미

문화매거진 2026-06-09 14:57:09 신고

[아름다운 것] 판화하기⑤ 판화의 계절에 이어 

[문화매거진=MIA 작가] 예전에 쓴 글에서, 작업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판화의 매력 중 하나가 ‘손이 가진 기술과는 다른 측면의 표현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에칭(Etching) 기법을 사용할 때 이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에칭은 동판 위에 그라운드를 입힌 뒤 니들로 선을 긋고, 산(酸)으로 부식시켜 홈을 만드는 동판화의 기본 기법이다. 애쿼틴트 작업을 하려면 명암을 표현할 면을 구분해야 하므로, 이 에칭 과정이 꼭 필요하다.

에칭으로 표현되는 선은 아주 얇다. 송곳처럼 생긴 니들 끝이 바늘 정도로 날카롭기 때문에 힘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지언정, 아무리 굵게 그리려 해도 샤프나 연필 선만큼의 두께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정확한 수치로 잴 수는 없겠지만 분명 0.5mm 미만이다. 보통 샤프심이 0.5mm인 것을 감안하면, 날카로운 니들이 긁고 지나간 자리는 확연히 얇고 아주 예리하다.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재료로는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선 느낌을 에칭으로는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이 기법을 처음 쓰면, 그전에는 그려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기법 특성을 잘 모르고 습관처럼 연필로 드로잉한 스케치를 참고했었다.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에칭 작업을 프린팅해 보니 원래 의도와 많이 다른 그림이 나타났다. 당시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스케치에 어울리는 다른 기법을 찾는 것, 또 하나는 그림체를 수정하는 것. 나는 후자를 택했다. 재미있었던 건, 작업을 거듭할수록 스케치가 동판화에 어울리는 형태로 점점 수정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원화도 그렇게 바뀌었다.

이후로는 가능한 선 중심이 아닌 명암 표현 중심으로 작업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러면서 에칭은 단지 면 바깥의 테두리를 한정하는 용도로만 생각하게 되어, 나도 모르게 에칭 과정을 소홀히 여기기에 이르렀다. 최근 작업에서 그 결과가 여실히 드러났다. ‘어차피 선은 두드러지게 잘 표현되기만 하면 되고 명암 표현이 중요한 거니까’라는 생각으로 부식 시간을 습관적으로 충분히 길게 주어 작업한 프린팅을 확인했을 때,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정의 익숙함 때문에 원래의 의도를 잊은 것이다. 

그림 소재가 바뀐 탓도 있었다. 몇 년 전에 내가 다루는 소재는 선명한 에칭 선이 어울렸던 반면, 이번에 다루고 있는 소재는 다른 느낌의 선이 더 어울렸다. 작업을 해내는 것에만 급급해 이런 본질적인 부분도 놓쳤다.

▲ 에칭 작업의 예시 / 사진: MIA 제공
▲ 에칭 작업의 예시 / 사진: MIA 제공


결국 작업하던 판을 버리고 새로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힘을 빼고 가능한 니들로 판 위를 스치듯 지나가며 선을 표현하려고 했다. 굵기가 일정한 느낌이 아니라 미세하게 끊어지는 점선과 흔들리는 선들을 섞어 넣었다. 부식 시간도 늘 하던 시간보다 적게 주었다. 그렇게 미세하게 힘을 빼고 더 집중한 그림이 훨씬 보기 좋았다. 내가 원했던 잎의 여린 느낌이 선에서부터 잘 드러났다.

매체를 잘 다루게 되는 것과 익숙함에 취해 집중력을 잃는 태만은 언제나 한 끗 차이다. 그림은 신기할 정도로 그 미세한 차이를 숨기지 않고 지면에 고스란히 뱉어낸다. 어쩜 이렇게도 속일 수가 없는지. 

자, 반성할 타이밍인데 “늘 집중하자.”라는 다짐에는 어쩐지 스스로도 설득이 잘 안된다. 이제 이렇게 채근하는 방식의 술수에 내 몸이 잘 반응하지 않는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대안을 떠올려 본다. 

“원하는 마지막을 놓지 말자.” 이건 좀 괜찮은 것 같다.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원하는 마지막’ 즉 작품 자체를, 그저 비슷한 행위를 다시 반복하면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이 그림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결과는 언제나 같아야 한다면, ‘이토록 더디게’ 한 장 한 장을 달성해 가는 기준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결국 닿을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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