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 제도가 시행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현장 활용도는 아직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 수술실에 CCTV 설치는 의무화된 가운데, 실제 수술 장면이 기록으로 남은 비율은 4% 수준에 그쳤다. 제도 도입 당시 논의가 ‘설치 여부’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사고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확인 가능한 기록 체계로 작동하고 있는지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모양새다.
9일 보건복지부의 ‘수술실 폐쇄회로 텔레비전 설치 현황 조사’ 자료에 따르면, 수술실 CCTV 제도가 시행된 2023년 9월부터 지난해 8월 31일까지 CCTV 설치 의무 대상 의료기관 2681곳에서 촬영된 수술은 12만3373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전체 수술 310만413건의 약 4% 수준이다.
촬영률이 낮게 나타난 데에는 현행 제도의 신청주의 구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수술실 CCTV는 전신마취나 수면마취 등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수술이라도 환자나 보호자가 사전에 요청해야 촬영된다. 환자가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병원에서 충분히 안내받지 못하면 수술실에 CCTV가 있어도 영상은 남지 않는 구조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최근 2년 이내 전신마취 또는 의식하진정으로 수술받은 환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수술실 CCTV 제도를 알고 있다는 응답은 49.5%에 머물렀다. 실제 CCTV 촬영을 한 경우는 18.5%였고, 촬영 여부를 모른다는 응답은 55.7%로 절반을 넘었다.
촬영 미요청 사유에서도 안내 체계의 한계가 드러난다. 조사에서 CCTV 촬영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로는 ‘안내받지 못해서’가 33.5%로 가장 많았고, ‘제도를 몰라서’가 28.1%로 뒤를 이었다. 병원 정보 제공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정보 제공이 미흡했던 사항으로는 ‘안내받지 못함’이 52.8%로 가장 높았다.
문제는 낮은 촬영률이 단순한 이용 저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료사고나 분쟁이 발생한 뒤에는 당시 수술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필요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사전 요청이 없으면 확인 가능한 영상 자체가 남지 않는다. 병원 게시판 안내문이나 수술 동의서에 포함된 문구만으로는 환자가 촬영 가능 여부와 신청 절차를 충분히 인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울산 남구의 한 산부인과에서 30대 산모가 제왕절개 수술 중 과다출혈로 숨진 사건도 이런 사각지대를 보여준다. 경찰은 의료 과실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유족은 병원 측에 수술실 CCTV 영상을 요청했지만, 병원은 사전 요청이 없어 녹화된 영상이 없다고 설명했다. 유족 측은 입원과 수술 과정에서 관련 안내를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경찰 역시 수술 장면이 녹화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별 사건을 넘어 수술실 CCTV 설치와 실제 녹화 사이의 간극은 다른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2023년 9월 25일부터 2025년 9월 30일까지 보도된 수술실 관련 사건을 분석한 결과, 핵심 사건 12건 중 CCTV 설치 여부가 확인된 11건 가운데 7건은 CCTV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실제 녹화가 이뤄진 사례는 1건에 그쳤다. 나머지 사례에서는 환자 요청 누락, 병원 내부 소통 오류, 안내 미흡 등으로 영상이 남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수술실 CCTV의 기능이 예방보다 사후 증거 확보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수술실 관련 의료분쟁 판례를 분석, CCTV는 환자 추행이나 성범죄 사건 등에서 주요 입증 자료로 활용됐다. 다만 보고서는 CCTV가 대부분 사후 증거 수단으로 사용됐고, 실시간 예방이나 분쟁 사전 차단 효과는 판례상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봤다. 일부 대리수술 사건에서는 CCTV 녹화 요청이 없을 때 불법행위가 이뤄졌다는 진술도 확인됐다.
다만 제도 개선 논의가 촬영 확대만으로 흐르기는 어렵다. 의료계의 우려도 제도 운용 과정에서 함께 고려해야 할 변수로 꼽힌다. 수술 관련 의료진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근무 기관의 수술실 CCTV 설치율은 93%였지만, 의료진의 72%는 CCTV가 환자와 의료진 간 신뢰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
의료진은 수술 영상 유출 가능성, 법적 책임 범위의 불명확성, 수술 집중도 저하, 의료진 간 소통 위축 등을 주요 부담으로 보고 있다. 수술 장면이 의료적 맥락 없이 외부로 공개될 경우 의료행위가 사후적으로 왜곡 해석될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 고위험 수술이나 돌발상황이 많은 진료과에서는 촬영이 방어진료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공의 수련 위축 가능성도 의료계가 제기하는 쟁점 중 하나다. 수술은 집도의뿐 아니라 보조의, 전공의, 간호인력 등이 함께 참여하는 팀 기반 의료행위다. 의료진은 촬영 부담이 커질 경우 전공의의 수술 참여 기회가 줄고, 장기적으로 수련의 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술실 투명성 강화와 의료 인력 양성이라는 두 과제가 충돌할 수 있다는 얘기다.
CCTV가 의료진의 방어권을 뒷받침한 사례도 확인된다. 보건의료연구원은 수술실 CCTV 영상이 증거로 활용된 일부 사건에서 의료진에게 무죄가 선고된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의료사고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의료진에게는 분쟁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CCTV는 환자 보호 장치인 동시에 의료진의 진료 행위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록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
정부의 후속 조치도 이 같은 공백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수술 참여 의료진과 수술 과정을 진료기록부에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수술 방법, 수술 일시, 참여 의료인의 성명과 역할, 수술 경과 등을 기록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CCTV 영상만으로 수술실 투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누가 어떤 역할로 수술에 참여했는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다.
2027년부터는 수술실 CCTV 운영 여부도 급성기병원 의료기관평가 인증 기준에 포함된다. 평가 항목에는 설치 장소와 성능, 촬영 대상과 범위, 촬영 요청 절차, 촬영 거부 사유, 영상 열람·제공 절차, 안전성 확보 조치, 보관 기준 등이 담겼다. 정책 초점이 단순 설치 여부를 넘어 환자 안내, 촬영 요청 처리, 영상 보관·열람 기준 등 실제 운영 체계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제도 보완의 방향도 촬영률 확대에만 머물기는 어렵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수술실 CCTV가 환자 안전장치로 작동하려면 영상 유출 방지와 열람 기준, 의료진 책임 범위가 명확해야 한다”며 “수술 장면이 의료적 맥락 없이 해석되지 않도록 운영 기준을 정교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위험 수술이나 응급상황에서는 짧은 영상만으로 의료진의 판단 과정을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환자 안전과 의료진 보호가 함께 작동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환자단체 관계자는 “수술실 CCTV 제도는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환자가 촬영을 요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사고가 발생해도 확인할 기록이 남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청주의를 유지하더라도 병원이 수술 전 환자와 보호자에게 촬영 가능 여부와 신청 절차를 명확히 안내하도록 해야 한다”며 “영상 보관 기간, 열람 기준, 보안 책임까지 함께 정비돼야 환자 안전과 의료진 보호라는 제도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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