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걸음을 예우하고, 찾아올 내일을 기대하는 이. 오직 현재라는 시간 안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는 얼굴, 배우 박보영.
계속되는 길 위의 마음에 대하여.
오늘 우리가 함께 촬영한 화보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준비한 전시 <Somewhere in Between>으로 이어져, 5월 25일부터 일주일 동안 성수동 Platz 2에서 공개됩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전시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번 프로젝트는 오롯이 팬들을 위한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사실 20주년이라는 시간을 크게 기념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거든요. 아직 과정의 중간 어디쯤에 서 있다는 생각이 더 컸고, 꼭 떠들썩하게 기념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팬분들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치면 서운하실 것 같더라고요. 돌아보면 제가 20년 동안 잘 걸어올 수 있었던 건 늘 옆에서 응원하고 지켜봐주신 분들 덕분이니까. 그 마음에 보답은 하고 싶었어요. ‘저 이제 이만큼 컸어요’ 하는 마음도 조금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전시에는 지금까지 했던 작품의 대본이나 어릴 때 작업하면서 간직한 것들도 함께 담으려고 해요.
앞서 말한 ‘과정의 중간 어디쯤’이라는 의미를 담아 ‘Somewhere in Between’이라는 전시 타이틀이 정해진 거죠?
맞아요. 돌아보면 제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가 그저 어디쯤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 인생에서도, 배우로서의 삶에서도요. 이 시간이 나에게 초반일지, 중반일지, 혹은 끝을 향해 가는 길일지는 아직 모르잖아요. 하나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계속 걸어가고 있는 중간 어디쯤이라고 생각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자연스럽게 ‘Somewhere in Between’이라는 주제로 이어졌어요.
떠들썩하게 이벤트를 여는 것보다 이렇게 조용히 지나온 시간을 꺼내 나누는 방식이 오히려 배우 박보영과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어요.
20주년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저를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선배로 바라보는 듯해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해요. 그래서 20주년이라는 사실을 타이틀로 내세우기보다는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을 한번 정리해보는 중간 보고서 같은 마음에 더 가까워요.
오늘 촬영한 한강 주변이 드라마 <미지의 서울> 포스터 촬영지이기도 하죠?
맞아요. 그래서 오늘 문득 그때의 시간이 바로 떠올랐어요. 참 묘하더라고요.
화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강이 본인에게 특별한 장소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화보의 마지막 촬영지를 한강으로 정하게 되었고요.
한강 변을 걷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 너무 힘들 때 어디 가서 마음 놓고 울 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강 근처에 와 차 안에서 아주 많이 운 적이 있어요. 그 뒤로도 힘들거나 울고 싶은 날이면 도망치듯 한강으로 오게 돼요. 와서 한참 울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는 덜 힘든 것 같은데?’, ‘그때만큼 무너질 일은 아닌데?’ 하고요. 그러다 한강 야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스스로를 달래게 돼요. ‘이 정도는 괜찮아. 잘 극복해보자’ 하면서요.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저만의 작은 피난처 같은 장소가 됐어요. 그래서 한강은 제게 일종의 기준이에요. ‘너 지금 정말 그때만큼 힘들어?’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웃음)
무엇보다 한강에서 가만히 사람들을 보는 것도 무척 좋아하거든요. 특히 데이트하는 사람들을 보면 두 사람의 분위기가 몸에서 막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져요. ‘저런 모습은 잘 기억해둬야겠다’ 싶고요. 예전에 친구랑 라면을 먹다가 산책하던 커플이 막다른 길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30대 후반쯤으로 보였는데, 돌아가는 게 너무나 아쉬운 듯 두 사람의 걸음이 한없이 느리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풋풋한 사랑이 10대나 20대에만 가능한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그날 괜히 영감을 받아 글도 한참 쓴 기억이 나요. 그래서 한강을 좋아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좋은 풍경이 계속 펼쳐지거든요.
최근 2~3년 사이 작품들을 보며 데뷔 초의 맑고 명랑한 이미지에서 어느 순간 더 깊고 넓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결국 배우는 작품 선택으로 자신의 시간을 보여주는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선택의 기준도 예전과 달라졌나요?
기준은 계속 바뀌고 있어요. 예전에는 대중이 저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드리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밝고 사랑스럽게 봐 주시는 이미지에 조금 더 집중했고요.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왜 사람의 능력치를 흔히 육각형에 비유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느 순간부터 한 방향으로만 계속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면들도 조금 더 키워보고 싶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라 어두운 면도 있고, 상처도 가지고 있잖아요. 저 역시 당연히 그런 모습이 있고요. 그런 부분을 표현하면서 누군가를 위로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배우가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작품을 통해 보는 분들께 재미를 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 외의 방향으로도 무언가 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 거죠. 그게 아마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출연 하던 무렵이었을 거예요. 그 시기에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누군가를 위로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품에 마음이 더 크게 움직였어요. 그래서 ‘나도 저런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감사하게도 그 무렵에 그런 작품들이 제게 찾아왔어요.
특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미지의 서울> 같은 작품들에는 박보영 배우가 오래 지키고 싶은 가치가 담겨 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두 작품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 시기에는 ‘타인의 삶’이나 ‘타인의 마음’을 중요한 키워드로 삼았던 것 같아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다은’이라는 인물이 자기 자신의 마음도 마주하게 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에피소드마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따로 있지만, 다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보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 었죠.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걸 들여다보는 일은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런데 그 드라마는 그런 마음을 시각적으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미지의 서울>은 처음 기획 의도를 읽었을 때 “타인의 삶이 내 삶보다 더 좋아 보인 적 없었나요?”라는 문장이 제게 크게 다가왔어요. 저 역시 늘 그런 마음이 있었거든요. 누군가가 보기에는 제 삶이 부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도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보면서 ‘저 사람은 정말 타고난 것 같아’ 하고 느낀 적이 많아요. 그렇게 보이기까지 당사자는 엄청난 노력을 했을 텐데, 그 노력과 시간은 잘 보이지 않잖아요. 그 문장이 당시 제 마음을 건드리더라고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비슷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면, 이 드라마를 통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두 작품 모두 결국에는 타인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위로를 주 고받는 마음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점점 더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이 배우라는 일을 계속해오며 더 커졌다고 느끼나요?
그럼요. 어떤 캐릭터를 맡더라도 그 인물과 제가 100% 같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게 돼요.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지고,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도 점점 커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재미를 중심으로 한 작품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종류의 성취감이 생긴 것 같아요. 그 성취는 결국 타인의 거울이 되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제 안의 어떤 마음이나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작은 위로나 공감으로 전해졌을 때 오는 마음 같은 거요. 예전부터 롤 모델로 늘 김혜숙 선생님을 꼽았거든요. 선생님이 어머니 역할을 하실 때면, 저는 아직 그 마음을 겪어보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선생님이 우시면 저도 같이 울게 되고요. 그래서 언젠가는 선생님 같은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내가 실제로 그 사람이 되어보진 않았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래서 저 사람이 슬프면 나도 슬퍼지는 것. 예전에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조금 더 단순했다면, 지금은 그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는 생각도 들어요.
부츠 Archivépke.
타인의 아픔이나 결핍을 연기로 표현하는 순간들을 지나오며 예전보다 더 이해하게 된 감정이나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의 모습도 있나요?
음, 그보다는 타인의 아픔을 감히 내가 넘겨짚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어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각자가 견디고 있는 무게는 전부 다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누군가의 아픔을 너무 가볍게 이야기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왜 저렇게까지 힘들어해?’,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지’, ‘용기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끝내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일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감도도 다르고, 견딜 수 있는 정도도 전부 다 다르니까요. 작품들에 함께하면서 타인의 아픔을 쉽게 판단하거나 함부로 단정 지으면 안 된다는 마음을 크게 배웠죠.
한데 그럴수록 연기가 어려워지잖아요. 함부로 넘겨짚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게 되고요.
맞아요. 그래서 너무 어려워요. 하면 할수록 더 어렵고, 할수록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같은 아픔이어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이니까요. ‘나 너무 아파’ 하고 드러내는 사람이 더 아플 수도 있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아플 수도 있고요. 그래서 연기할 때마다 늘 고민해요. 내가 어느 강도로 표현해야 이 인물이 가진 아픔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하고요. 예전에는 감정을 조금 더 직접적이고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미묘한 표정 하나나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에너지만으로도 감정이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미지의 서울>의 박신우 감독님이 해주신 말들을 많이 적어놨었어요.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시지?’ 싶을 정도로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연기는 묘사가 아니라 설득”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 말을 오래 기억하려고 해요.
타인에 대한 이해와 별개로 이전에 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정작 본인이나 본인의 연기에 대해서는 꽤 인색할 때가 있더라고요. 조금 의외였어요.
어릴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편이에요. 가까운 사람들의 긍정적인 피드백도 잘 믿지 못하고요. 예전에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해서 극장에 몰래 보러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손을 씻으며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그야말로 날것의 반응으로 느껴졌어요. 필터 없이 “그 장면 좋지 않았어?”, “나는 좀 별로였어” 하고 말하는 걸 듣는데 ‘이게 진짜 피드백이구나’ 싶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관객 반응을 더 찾아보게 됐어요. 몰래 듣기도 하고, 계속 검색도 해보면서요. 반대로 주변에서 “이번 작품 너무 좋아”라고 하면, 친하니까 나를 생각해서 좋게 말해주는 거라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진정한 평가로 믿지 못한 거죠. 그런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하고 나서는 조금 달라졌어요. 극 중에서 다은이 ‘칭찬 일기’를 쓰잖아요. 그걸 보면서 저도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인색한 사람인가 보다. 조금 더 나를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시기에는 새해 목표도 늘 ‘나를 좀 더 사랑하자’였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칭찬 일기도 쓰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좋은 말들도 조금씩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많이 건강해졌고요.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어요. 제 작품을 보면서도 ‘이 장면은 괜찮았는데?’ 하고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거든요.
돌이켜보면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에게 엄격한 부분이 있었던 건데, 그런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달콤한 말만 듣다가 발전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도 컸고요. 어릴 때 일을 시작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주변의 시선이나 피드백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던 시기였는데, 그 모든 반응을 스스로 잘 구별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들어오는 말들을 거의 그대로 흡수했던 거죠. 상처받고 흔들리기도 하면서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시간에도 분명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다고 느끼거든요. 어떻게 보면 자아가 완전히 자리 잡기 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셈이니까. 그 경험이 지금의 저에게도 분명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늘 평가 안에 놓여 있잖아요. 수많은 시선과 말들이 배우에게 닿게 되고요. 그런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일은 큰 숙제처럼 따라왔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그렇게 일기를 썼나 봐요. 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심하게 흔들릴 것 같았거든요. 밖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만 듣다 보면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매일 밤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어요. ‘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진짜 마음은 뭐야?’ 하고요. 그런 시간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저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어릴 때부터 일기 쓰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는 누가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거짓으로 쓰기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지금 이 순간에도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면, 나는 언제 솔직해질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는 금고를 사서 일기장을 넣어뒀어요. 그때부터는 정말 제 마음을 솔직하게 썼고, 조금씩 덜 흔들리게 됐어요.
오랜 시간 배우로 살아오면서 누군가와 약속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 꼭 지키고 싶은 원칙이 있나요?
배우인 나와 배우가 아닌 나의 균형을 지키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배우를 떠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 가족 안에서 딸이자 동생이고 이모인 나, 그리고 그냥 서른일곱 살 친구인 나처럼, 배우가 아닌 시간의 저를 잘 지켜두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혼자 걷거나 한강에 가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려 하고요. 이런 식으로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게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에요. 일할 때 스스로에게 늘 ‘오늘 나는 내 몫을, 1인분을 제대로 했는가’ 자주 질문하고, 그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고요. 현장에서는 조금 더 친절하려고 해요. 일하러 모인 자리지만,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잖아요.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특히 일할 때 더 그렇게 지내려고 해요.
지금까지 차분히 길을 넓혀왔다면 앞으로 10년은 어떤 모습일 것 같은가요?
10년 전 지금의 제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어요. ‘내가 이 일을 계속 잘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지금도 10년 뒤를 생각하면 비슷한 마음이 들어요. ‘그때의 나는 잘하고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떠오르죠. 당장 3년 뒤, 5년 뒤도 늘 미지수처럼 느껴지고요. 제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나 <미지의 서울>처럼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할 수 있는 작품을 하게 될 줄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흘러온 것처럼, 앞으로도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생기는 변화들을 받아들이게 되겠죠. 그 변화 속에서 제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도 돼요.
마무리할까요. 20년 전 오늘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주식을 사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20년 전이면 미래에 대해 절실히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출발선 앞에서 배우라는 일을 해야 하는지 많이 흔들리며 고민하던 때일 텐데, 그때의 저에게 자신을 너무 의심하지 말고, 조금 더 믿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도 저에 대한 믿음이 100%인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한데 그때는 훨씬 더 불안정한 시기였으니까. 스스로를 믿고, 주변을 믿고, 앞으로 걸어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물론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불안했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