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 Z 조카가 X세대 이모의 옷장을 뒤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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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Z 조카가 X세대 이모의 옷장을 뒤진 이유

마리끌레르 2026-06-09 11:30:00 신고

이모~~ 하고 부를 때는 안다. 이를 올리고 모를 길게 늘이면 반드시 원하는 바가 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조카가 옷장 앞에 섰다. “이모 옷 중에 안 입는 거 있어? 가방도 있지?” 질문이라기 보다 결단코 얻어내겠다는 통보였다.“어, 발렌시아가 모터백이다. 이건 비비안 웨스트우드 맞지? 이 아디다스 오리지널 집업 나 가져도 되? 이거 완전 난리났잖아. 이모, 바게트는 없어?”

나는 그 아이가 하나씩 꺼내는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학생이 되어 싸이월드 도토리를 용돈을 모으듯 모아 산 존 갈리아노의 새들백. 국내엔 자라조차 없던 에디터 시절 패션 위크 출장마다 품어온-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센추리 21’까지 빛의 속도로 오가며 집어든 마크 제이콥스, 비비안 웨스트우드. 소호 ‘오프닝 세레모니’에서 당시 막 이름을 알리던 알렉산더 왕, 로다테. 밀라노에서 피렌체 ‘더 몰’까지 원정을 가 건진 피비 파일로의 패딩턴, 오리지널 트리옹프 클래스프의 셀린느. 파리의 외곽 ‘라발레 빌리지’에서 골라낸 스테파노 필라티 시절의 이브생로랑(Yves Saint Laurent). 기억의 심연에서 그것들이 와르륵 쏟아졌다. 그때의 그곳엔 발견의 기쁨이 있었다. 낭만적이었다.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수동적 쇼핑에선 절대로 알 수 없는 그 맛. 조카가 빈티지숍과 빈티지 웹을 디깅하는 건 이십대의 내가 아울렛과 편집숍을 뒤지던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veryoutfitonsatc
@unfash

외국에 사는 조카의 룩은 내가 살아낸 이십대와 닮아 있었다. 서울에 오면 빈티지숍부터 찾는데, 언니의 등짝 스매싱도 그 열정을 막지 못한다. 그것조차 내 이십대와 닮았다. 그렇게 나의 이십대의 수집품은 이제 조카에게로 넘어갔다.

“다 가져가. 그런데 너는 요즘 어디서 옷 사니?” “후르츠패밀리가 편해. 번개장터도 있고. 근데 빈티지숍에서 직접 사는 게 젤 좋아. 동묘도 가고. 그러니까 서울 왔을 때 열심히 다녀야 한다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며 Y2K가 유행인 건 알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순히 유행의 순환이 특정 시대를 소환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Gen Z는 태어나기도 전인 시대를 틱톡과 인스타그램으로 배웠다. 패리스 힐튼의 핑크 트랙수트, 캐리 브래드쇼의 바게트, 케이트 모스의 모터 사이클. 그 이미지들이 알고리즘을 타고 흘러들어왔고, 그들은 여기에 꽂혔다. 세상이 디지털화될수록 디지털 키즈들은 특정 시대의 풍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그 시대 자체를 소유하길 원하는 듯 하다. 자연스럽게 변색되고 윤기가 생긴 가죽의 패티나, 20년이 지나도 견고한 박음질과 핏이 살아있는, 살아남은 것들이 지닌 가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탐닉은 언제나 있었지만, 지금처럼 뜨거웠던 적은 없었다. 모든 것이 복제되는 시대의 역설. 알고리즘이 취향을 골라주고, 매 시즌 비슷한 옷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같은 연도, 같은 시즌, 같은 컬러라도 시간을 거쳐간 물건은 제각기 다른 유일함이 된다. 거기에 경제적 실리가 더해졌다. 프라다 나일론, 펜디 바게트, 발렌시아가 시티백 같은 빈티지 아카이브 피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른다. 로고보다 출처를. 새것보다 시간을. 과시보다 이야기를. 이 세대에게 럭셔리의 정의는 내밀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벨라 하디드가 파리 패션위크에 존 갈리아노의 2006년 디올 고쇼백을 들고 나타났다. 엠마 스톤은 기네스 팰트로가 입어 90년대를 대표하는 룩으로 기억되는 그 리프 그린 실크를 입고 스티븐 콜베어 쇼에 나왔다. 1998년 도나 카란의 것이었다. 셀럽들이 아카이브를 꺼내들기 시작했고 Gen Z는 그 뒤를 따랐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인가. 디지털 안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고 쌓이니 그 시작을 누구라 정의하는 건 의미 없다.

브랜드가 그 뒤를 따른 것만은 분명하다. 클로에는 피비 파일로가 2005년에 만든 자물쇠 달린 잇백을 2025년 다시 꺼냈고, 샤넬의 90년대 슈퍼 모델은 2026년 라지 쇼핑 백으로 변신했다. 발렌시아가는 케이트 모스와 함께 르 시티백 캠페인을 찍었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는 미시 엘리엇과 20년 만에 다시 손을 잡았다. 조카가 내 옷장에서 그 집업을 꺼내며 “이거 완전 난리났잖아”라고 했을 때, 나는 소호의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매장에서 그 옷을 샀던 날을 떠올렸다. 누가 무엇을 입는지가 곧 어느 문화에 속하는지를 말해주던 때였다.

조카는 불안하면서도 설레고, 아프면서도 싱그러운 계절의 입구에 서 있다. 우리는 모두 그 계절을 한 번씩 통과한다. 그리고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안다. 내 이십대가 조카의 이십대가 되는 것이 묘한 기시감으로 남았다. 그리고 약간의 씁쓸함도.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2000년대가 다시 왔다. 그때의 것들이 내게도 남아있다. 그런데 꺼내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안 맞는 게 아니라 ‘못’ 맞기 때문이다. 힐은 버겁고, 무거운 가방은 사절이고, 몸을 드러내는 핏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그래서 조카에게 넘어가는 게 맞다.

조카가 나간 뒤 나는 후르츠패밀리에 접속했다.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크롤을 내리며 ‘디깅’을 시작했다. 1990년대 샤넬 트위드 재킷, 2000년대 초반 구찌 뱀부백, 니콜라 게스키에르의 2007년 발렌시아가 노마드 재킷, 알렉산더 맥퀸의 2006년 해골 프린트. 타임슬립이 따로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곱게 입고 고이고이 남겨둘걸. 셀러로 등록했으면 돈 꽤나 벌었을 텐데.

괜찮은 빈티지를 ‘디깅’ 할 수 있는 곳

@ourtriend_shop
@picoz.shop
@penthouse.shop
@gowon.vin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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