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ing the Trend
2026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포착한 시계 트렌드 9.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 셀프와인딩 퍼페추얼 캘린더 오픈워크’.
{ Perpetual Reborn }
몇 년간 이어진 미니멀 스포츠 워치 흐름 속에서 메종들이 다시금 가장 전통적인 컴플리케이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날짜와 월, 윤년까지 스스로 계산하는 퍼페추얼이 그 주인공. 이 복잡한 구조는 오랫동안 하이 워치메이킹의 권위를 상징해왔다. 흥미로운 건 올해 신작들이 퍼페추얼을 단순히 기능에 머물게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메종들은 오픈워크나 반투명 다이얼, 루미노바 같은 시각적 장치를 활용해 복잡한 메커니즘 자체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쉽게 말해, 전통적인 드레스 워치 문법에서 벗어나 훨씬 대담하고 시각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예컨대 랑에 운트 죄네는 ‘랑에 1 투르비옹 퍼페추얼 캘린더 “루멘”’을 통해 반투명 다이얼 아래 퍼페추얼 구조를 드러냈고, IWC는 전면을 루미노바로 꾸민 ‘빅 파일럿 워치 퍼페추얼 캘린더 세라룸Ⓡ’을 선보였다. 로저드뷔는 ‘엑스칼리버 바이-레트로그레이드 퍼페추얼 캘린더’로 과감한 아방가르드 퍼페추얼을 제안했고, 오데마 피게는 ‘로열 오크’와 ‘코드 11.59’ 오픈워크 모델에 이를 결합하며 복잡한 기능 자체를 하나의 조형 요소처럼 활용했다. 올해 퍼페추얼은 더 이상 조용한 클래식 컴플리케이션이 아니었다.
쇼파드의 ‘L.U.C 스트라이크 원 티타늄’.
IWC의 ‘인제니어 퍼페추얼 캘린더 41’.
{ Titanium Upgraded }
올해 티타늄 이야기가 유독 자주 등장한 건 단순히 ‘가벼운 시계’가 많아져서가 아니다. 기준이 바뀌었다. 예전엔 ‘얼마나 가볍게 만들 수 있나’였다면, 지금은 ‘티타늄을 얼마나 고급스럽게 보이게 만들 수 있나’로 이동했다. 티타늄은 원래 가볍지만 표면 가공이 까다로운 소재라 스포츠 워치나 툴 워치 중심으로 쓰여왔다. 쉽게 말해 실용성에 가까운 소재였다. 그런데 최근 브러싱, 새틴·샌드블라스트 같은 마감이 훨씬 정교해지면서 티타늄이 ‘보여주는 소재’로 바뀌고 있다. 스틸이나 골드에서 하던 소재 마감 경쟁이 티타늄으로 넘어온 흐름. 이제 티타늄은 브레이슬릿까지 마감 완성도를 끌어올린 드레스 워치나 복잡한 컴플리케이션 모델에도 자연스럽게 쓰인다. 이 흐름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신작이 IWC ‘인제니어 퍼페추얼 캘린더 41’. 복잡한 캘린더를 티타늄 케이스에 담백하게 올린 모델이다. 또 바쉐론 콘스탄틴 ‘오버시즈 듀얼 타임 카디널 포인트’는 여행자용 듀얼 타임 기능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기능보다 브레이슬릿까지 이어지는 마감 완성도다. 스포츠 워치이면서도 드레스 워치에 가까운 인상을 남긴다. 이 외에도 불가리 옥토 피니시모 37’, 쇼파드 ‘L.U.C 스트라이크 원 티타늄’ 등이 있다.
쇼파드의 ‘비하이브 테이블 워치’.
{ Time as Object }
시간을 읽는 기능보다 ‘보는 즐거움’에 가까운 타임피스들이 눈에 띈다. 워치를 손목 위에 남겨두기보다 하나의 조형 오브제로 확장한 것이다. 우선 샤넬은 거대한 ‘체스 보드’를 통해 워치를 오트 쿠튀르적 오브제로 풀어냈다. 방돔 광장 기둥과 마네킹, 사자 등 하우스의 세계를 반영한 32개 체스 말은 정교한 장인정신을 응축한다. 스틸보다 7배 견고한 하이테크 소재인 세라믹으로 제작했는가 하면, 화이트 골드 위에는 다이아몬드를 하나하나 세팅했다. 쇼파드는 벌집 형태의 ‘비하이브 테이블 워치(The Beehive Table Clock)’를 공개했다. 숫자 대신 회전하는 유리 디스크 두 개로 시・분을 읽는다. 여기에 미닛 리피터 기능이 더해져 버튼을 누르면 시간을 소리로 알린다. 시계가 손목을 벗어난 흐름은 주얼리로도 이어졌다. 피아제는 ‘스윙잉 페블스’를 펜던트 워치로 선보였고, 샤넬은 ‘너 드 까멜리아’와 ‘마드모아젤 프리베 부통 리옹’, ‘샤넬 코코 게임’ 컬렉션을 링・목걸이 형태로 제안하며 하이주얼리와 워치메이킹의 경계를 더욱 흐려 놓았다.
돌체앤가바나의 ‘새크리드 하트’ 모티프 워치.
샤넬 워치의 ‘가브리엘 롱 네크리스’.
{ Dressed in Symbols }
패션을 기반으로 한 메종들은 대체로 시그너처가 분명하다. 그만큼 워치메이킹 역시 브랜드 DNA를 드러낼 수 있는 언어가 풍부하다는 뜻. 까멜리아(샤넬), 대나무(구찌), 하트(돌체앤가바나), 말(에르메스)처럼 각 하우스를 상징해온 코드는 장식에 머무르지 않고 시계의 형태와 구조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로써 시계는 시간을 읽는 도구라기보다 브랜드 세계관을 압축한 형태로 확장한다. 샤넬은 ‘너 드 까멜리아’에 까멜리아와 리본, ‘마드모아젤 프리베 부통 리옹’에 사자, ‘샤넬 코코 게임’에 가브리엘 여사의 아이콘을 담아 장식을 서사로 확장했다. 구찌는 홀스빗과 대나무 모티프를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전반에 활용했다. 돌체앤가바나는 ‘새크리드 하트(Sacred Heart)’ 모티프 골드 케이스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워치를 ‘디보션(Devotion)’ 컬렉션 라인업에 추가했다. 에르메스 역시 말과 승마 코드를 ‘슬림 데르메스 포켓 워치 로아아아!’와 ‘아쏘 사마르칸드’로 가져오며 하우스 DNA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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