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쉽게 지나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우리 곁으로 끌고 와 생생히 들려주는 일을 자처한 사람은 은유 작가입니다. 그동안 그는 일하는 사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겸손한 인터뷰어이자 르포르타주 작가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게 해왔는데요. 노동절에 맞춰 펴낸 일곱 번째 인터뷰집 『생업』을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것으로 묵묵히 세상을 떠받치는 존재”들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금융 소득이 근로 소득을 앞서는 사회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되새기고,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도록 말이죠.
생업, 그러니까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은 단순히 우리가 가진 직업의 이름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돈 벌러 오지만 책임감으로 일한다.”, “그들의 불편함이 나를 먹여 살린다.”, “부당한 일을 보는 순간 이건 바꿔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들에 배인 생업의 숭고함은 우리 생업을 돌아보는 힘을 지닙니다. “당신은 먹고살기 위해 무슨 일을 하십니까?”
듣는 신체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듣고 기록하는 일은 작가님의 생업이자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일곱 번째 인터뷰집 『생업』을 출간한 소감을 들려주세요.
소감이요.(웃음) 일곱 번째 인터뷰집을 낸 소감이라면, 일단 해도 해도 재미있는 작업이 저의 생업이라는 게 벅찼던 것 같아요. 주위에서 이렇게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힘들지 않냐, 기 빨리지 않냐고 물어보거든요. 그런데 인터뷰집을 계속 낼 수 있는 제 상황과 일,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요. 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자기 삶을 잘 살아내실 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그걸 또 엮어서 제가 알고 있는 좋은 것을 독자들과 나눌 수 있도록 책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소중하고요.
출판사 입장에서 인터뷰집 출간을 마음먹기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그렇죠. 안 팔리니까요.
그럼에도 꾸준히 인터뷰집을 내셨어요. 그 이유는 독자 분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일 겁니다. 작가님의 인터뷰집은 어째서 이러한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일까요?
글쎄요, 제 마음이 전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곤 하는데요. 정말 사랑에 빠져서 사람을 만나고 잘 소개하고 싶어서 공을 많이 들이거든요. 그렇게 간절함으로 준비하고 인터뷰하고 쓰고 알리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자’ 이런 마음으로 씁니다.
『생업』이라는 두 음절이 큼직하게 새겨진 표지를 보며, 바쁨에 치여 잊고 살았던 '숭고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동안 작가님의 출간작들과는 사뭇 다른 제목 스타일이라 궁금증도 크게 일었고요. 제목은 어떻게 지어졌는지요?
책 제목은 편집부와 논의해서 정해요. 연재할 때 제목 그대로 ‘먹고사는 일’은 어떤가 의견을 나누는데, 그 얘기가 재미있었어요. “벌써 지친다” “듣기만 해도 지친다”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같은 반응이 편집부 안에서 나왔다는 거죠. 그러다 담당 편집자님께서 산업 재해 노동자 부인 김영희 선생님 인터뷰에 “아들 석채가 (중략) 생업을 그만두고…”(104쪽)라는 대목에서 ‘생업’이라는 단어를 건져 올리신 거예요. 노동보다 직관적인 말이면서도,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니 제목 삼기에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 말이 ‘사는 일’과 ‘먹는 일’을 아주 간결하게 담아낸 것 같았고요. 단어가 가진 힘이 강렬한 만큼 표지에 그대로 사용되기에도 알맞았고, 그런 의도를 담아 디자이너 선생님은 지문 같은 질감을 표현하시려고 이 표지 용지를 고르셨다고 해요.
『생업』은 2024년 8월부터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캠페인의 일환으로 시작된 〈시사IN〉 연재 인터뷰를 바탕으로 합니다.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시민사회단체의 홍보를 기획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오늘의행동’과 〈시사IN〉이 이끈 프로젝트예요. 실제로 병원을 이용하게 될 노동자들의 얼굴과 이야기를 보여주면 좋겠다는 취지로 인터뷰 연재를 기획했고, 제게 제안이 온 거였죠. 기사 말미에는 늘 전태일의료센터 후원 안내가 붙었어요. 직접적인 광고라기보다는 간접적인 홍보인 셈이었죠. 처음엔 네다섯 분 정도만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어요. 하다 보니 재밌어서 더 하게 됐지만…
너무 많이 하셨어요. 당초 계획보다 네 배나 더 하신 셈이잖아요. 열일곱 분을 만나셨어요.
처음 기사가 나갔을 때, 출판사 몇 군데서 출간 제안을 받았어요. 당연히 다 거절했죠. “이 인터뷰는 네 명만 하기로 해서 책이 안 됩니다” 하면서요. 그런데 『크게 그린 사람』을 함께 만들었던 최해경 편집자님이 연락을 주셔서는 “쌤, 이 연재 『크게 그린 사람』 2탄처럼 만들면 좋겠는데요” 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또 넘어간 거죠.
인터뷰를 위한 취재 과정도 궁금합니다. 매체와 함께한 인터뷰이기에 인터뷰이 선정이 작가님께 온전히 부여된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총 열일곱 분을 만난 과정을 들려주세요.
처음부터 인터뷰이 후보 리스트가 있었어요. 오늘의행동에서 녹색병원 이용자 리스트를 정리해두었더라고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시사IN〉과 의견을 나누고 누구를 만날지 정하게 됐어요. 나중에는 저도 함께 “이런 직업군의 이야기도 있으면 좋겠다”라고 의견을 내게 되었고요. 서문에도 썼지만, 제가 한동안 ‘요양 보호사’라는 직업에 꽂혀 있었거든요. 언젠가 이분들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어서 인터뷰이를 알아보는데 섭외가 어려운 거예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으로 저와 인연이 깊은 강석경 선생님(故 김동준 군 어머니)이 요양 보호사를 하고 계신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과 선생님 직업을 연결시키지 못해서 인터뷰이 후보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영화 〈3학년 2학기〉 시사회에 강석경 선생님, 故 이한빛 PD의 부모님인 김혜영 선생님, 정관용 선생님과 함께 가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수다를 떨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요양 보호사 얘기를 들려주시는 거예요. 그 얘기가 내내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죽음을 바라보는 직업을 갖게 되셨는데 마음이 어떠실까… 더 듣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가만히 있어 봐. 강석경 선생님께서 요양 보호사이시잖아? 인터뷰해주시면 좋겠다’ 했어요. 그렇게 저와 두 번째 인터뷰를 해주셨고, 제 책에 최다 출연한 분이 되시기도 했죠.(웃음)
그다음도 계속 생각했어요. ‘누구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좋을까.’ 그러다 여성 버스 기사님 이야기를 담고 싶어졌어요. 요즘은 버스 기사님의 목소리를 들을 일이 없잖아요. 현금 받지 않는 버스가 대부분이라 카드만 태그하면 끝이니까요. 옛날에는 “이 버스 신촌 가나요?” 하고 묻는 게 익숙했고, “제가 5천 원짜리밖에 없는데 어떡하나요?” 하면 “그냥 타요” 이런 짧은 대화도 나누곤 했거든요. 요즘은 대부분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다 보니 사람 사이에 말이 오갈 일이 너무 줄었어요. 그렇다 보니 사람이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사람으로 인식을 잘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죠. 버스 기사님은 하루 종일 일하면서 아무하고도 말을 안 하는 건데 어떤 마음일까… 그런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저는 서울이 무척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하거든요. 버스 노선이 시내를 통과하면 나무가 있고 고궁이 있고, 예를 들어 272번 같은 노선은 그 길이 참 아름답고요. 계절의 변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는 길을 버스 기사님들은 매일 오가실 거잖아요. 그런 매일 속에서 기사님들은 어떤 생각을 품고 계실지 알고 싶었어요.
그런데…
섭외가 잘 안돼서 결국 못 만났죠.
너무 아쉬운데요.
당초 계획으로는 열여덟 분이었던 거죠. 언젠가 살아 있는 동안 인터뷰하게 되면 좋겠네요.
언젠가 꼭 들려주세요.
인터뷰가 점점 힘들어지긴 하지만요.(웃음)
씨앗을 뿌리는 일
인터뷰라는 게 남들이 봤을 때는 되게 쉬워 보이는 일 같아요. 그런데 인터뷰 글 한 편을 쓰기 위해서는 정말 큰 노력이 들잖아요. 『아무튼 인터뷰』에서 “인터뷰를 데이트”라고 표현하시기도 했듯, 인터뷰이에게 빠져 있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글이기도 하고요.
계속 이 사람만 생각해야 하니까요. 반하지 못하면 못할 거 같아요.
이렇게 단련된 글쓰기 노동자임에도, 이토록 많은 분량의 녹취록을 매달 떠안는 일은 고된 작업이었을 겁니다. 비단 “200자 원고지 2,000장을 넘겼다”는 건 『생업』의 이야기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인터뷰집을 일곱 권째 출간하시는 데 있어 동력은 무엇이었는지요.
인터뷰라는 게 육체노동이 과하게 투여되는 일이에요. 계속 읽고 쓰고를 반복하잖아요. 이 행위는 눈, 두뇌, 허리가 서로 협업하면서도 풀가동하는 걸 전제해요. 아마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면, 글을 계속 쓰거나 책을 꾸준히 내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문에도 “글쓰기의 원천”이라고 썼는데, 새로운 한 사람을 인터뷰하면 제가 한 세계를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 세계를 알게 되는 기쁨과 배움이 커요. 지적, 정서적 자극이 되고, 인생 수업 같은 측면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복합적으로 얻게 되니 계속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만약 제가 단편집을 열 권 넘게 내야 하는 소설가였다면, 언젠가 상상력의 고갈이 왔을 것 같아요. 그런데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저한테 어떤 씨앗을 뿌려주는 일이고, 저는 그 씨앗을 잘 키워서 세상에 내놓는 역할이 잘 맞는 사람이에요.
무엇보다 인터뷰는 힘을 얻는 작업이에요. 물론 두 배로 공력이 들어요. 두 사람의 명예가 달려 있으니까요. 제가 잘못 쓰면 저만 망하는 게 아니라 인터뷰이에게도 누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힘들지만 힘든 만큼 힘을 얻고, 보람도 더 크게 느끼고요. 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갈 힘을 받았기 때문에, 그 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 마음이 없다면 이 작업을 이어나가기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가장 수월하게 만나는 방법, 간접적으로 만나는 방법이 책 읽기라고 하잖아요. 작가님께서는 인터뷰를 통해 직접 만나고 계시네요.
“책은 음원 듣기, 인터뷰는 라이브 공연 관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라이브 공연에 가면 완전히 다르잖아요. 음원은 밋밋해서 못 듣게 될 정도로요. 생동감이나 연주, 편곡도 다 다르고요. 인터뷰도 그래요. 현장감이 있거든요.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죠.
그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인터뷰어에게는 필요한 일 같아요. 너무 오래 인터뷰 현장에서 떠나 있으면 돌아가기 어려운 것 같거든요.
사람은 환경에 금방 적응하고 익숙해지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힘든 일을 손 놓으면 다시 돌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죠. 그런데 그건 기질과 성향의 차이인 것 같아요. 혼자 작업하는 게 좋은 분들은 소설을 쓰거나 다른 창작을 하시고, 저는 사람 만나서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니까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생업』의 인터뷰는 “인터뷰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진행”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현장을 이렇게 꾸미신 까닭이 궁금했습니다.
이 역시 오늘의행동의 기획이에요. 우리에게 먹는 일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에는, 먹는 음식에 대한 사연이 누구나 있는 것 같고요. 이렇게 만나 대화를 나누면 이분들의 이야기가 더 풍부해질 것 같다는 취지로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따르게 됐어요.
대개 인터뷰 자리에서는 먹는 일을 지양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 인터뷰 형태를 보며, 이것이야말로 환대의 자리 같다고 느꼈습니다. 인터뷰이의 입장에 거의 처음으로 이입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누군가에게 음식을 준비해준다는 것은 큰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마음이 없다가도 같이 먹으면 마음이 만들어지고 생겨나기도 하고요. 특히 한국에서는 음식이라는 게 사람을 끈끈하게 엮어주는 매개가 되고요. 인터뷰 진행 시간 자체가 길어지는 측면은 있었지만, 무척 좋은 경험이었어요.
사람을 크게 그리는 일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습니다. 1부 먹이는 사람, 2부 짓는 사람, 3부 아우르는 사람. 이런 구성을 갖게 됨으로써 인터뷰 연재 순서가 조정되었는데요. 이것은 자연히 첫 인터뷰를 어떤 분 이야기로 배치할 것인가와도 연결되는 고민이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소설도, 시도, 음반도 첫 번째 작품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이번 인터뷰집도 마찬가지였어요. 김규희 선생님 인터뷰를 첫 번째에 배치하면 좋겠다고 제가 밀어부쳤어요. 김규희 선생님은 1,700명의 학생들에게 밥을 먹이는 급식 노동자세요. ‘먹고사는 일’이라는 취지에 너무 잘 맞는 분이고, 또 되게 복합적인 캐릭터이시고요. 밥을 직업으로 만드는 일을 하시면서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식구들 먹일 때 행복하다고 하시잖아요. “밥 지겹다” 소리를 안 하시고요. “식구들이 TV 보면서 기다리면 난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놀라웠고, “돈 벌려고 오지만 책임감으로 일한다”라는 말씀도 감명 깊고요. 또 노조 활동을 하시면서 권리도 찾으시고, 방통대 공부도 하시고…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인물이라 좋았어요. 그런 한편, 끝에는 “밖에서 나 급식 노동자라고 말 못한다”라고 하시거든요. 이렇게 긍지가 있으신데도 사람들이 아래로 보기 때문에 그냥 “교육 공무직”이라고 하신다고요. 사람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절묘한 인터뷰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이 열일곱 분 중 가장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이 있으셨다면요.
박사훈 선생님이요. 중년 남성 노동운동가라고 하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의식 있고, 헌신적이고, 조직 활동 열심히 하고. 그런데 이분은 제가 상상하지 못한 화끈한 정의로움 같은 게 있으셨어요. 담배도 하루 두 갑씩 피우다가 학원 셔틀버스 운전할 때 아이들이 “아우, 담배 냄새!” 하는 말에 어느 날 딱 끊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몸을 던져 싸우시고요. 그런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정말 의로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물욕이 없으세요. 지금까지도 1,000에 50 월세를 내며 안산 자락에 있는 집에서 사시는데 아무렇지 않다고,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노동운동을 오래 하면 정치도 하고, 좀 더 편안한 자리로 가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데 계속 그 자리에 남아서 건강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분을 보면 제 마음 자세도 다시 가다듬게 돼요. ‘정말 멋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분이었어요.
안 그래도 박사훈 선생님 인터뷰를 읽을 때, 최근 기사들과 오버랩되면서 왜 이런 분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나 싶은 거예요.
그렇죠? 이런 분들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하는데, 현실은 귀족노조 이야기 같은 것만 크게 노출되니까요. 그 때문에 노조 혐오만 생기고요. 저는 박사훈 선생님이 “막걸리만 있으면 행복하다” “돈 좀 있으면 순댓국 사 먹는다”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찡했어요. 집에 와서 글을 쓰면서도 그 말씀하신 게 계속 남아 맴돌더라고요. ‘그래, 좋은 사람이랑 기분 좋게 밥 먹으면 그 하루 잘 산 거지.’ 인생이라는 게 되게 단순해지는 거예요.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고, 저도 모르게 커졌던 탐욕이 좀 잦아들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정말 좋았어요.
대화를 가장 길게 나눈 인터뷰이는 누구셨어요?
이기중 선생님이에요. 그분과는 인터뷰를 두 번 했거든요. 인터뷰를 쓰는데 잘 마무리가 안 되더라고요. 이분 삶이 드라마틱한 게 없는 것도 아닌데요. 남들이 보기에는 “정당 정치하다가 지금 배달 노동을 한다”라는 이야기 자체가 마치 실패한 서사처럼 여겨질 수 있겠더라고요. 이분을 입체적인 인물로 보여주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어떤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만나게 된 거예요.
우리에게는 삶이 꼭 대단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잖아요. 특히 청소년이나 청년 시기에는 더 그렇고요. 그런데 배달 일을 하면서도 정직하게, 깔끔하게 노동하면서 살아가는 삶도 괜찮은 거잖아요. 누군가에게 먹을 것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삶이니까요. 저는 “이건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강요하지 않는 방향으로 잘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이미 인터뷰이를 너무 많이 알고 있고 애정도 생겨버렸기 때문에, 자칫하면 칭송하는 글이 되기 쉬운 것 같아요. 인터뷰어로서 그 기준과 태도를 계속 지켜오는 게 중요하고요.
책에 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게는 리스펙트예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존경과 예찬의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책으로 쓸 때의 마음은 달라요. 존경한다고 해서 그 감정을 막 버무려서 쓰는 건, 결국 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궁금한 건 제 감정이 아니에요. 이 사람의 삶이죠. 글을 쓸 때는 최대한 팩트 위주로, 담백하게 가려고 해요. 가급적이면 저는 물러나고, 이분들의 삶이 더 잘 보이게. 이분들의 삶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드러나게. 그게 제가 중심을 잡는 원칙 같아요.
저는 그냥 이분들을 길가에 세워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름답네” 하고 한 번쯤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크게 그린 사람』이라는 제목도 사실 같은 의미였어요. 조지아 오키프가 꽃을 크게 그린 이유가 “사람들은 꽃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잘 보지 않는다. 크게 그리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거잖아요. 저도 비슷해요. 한 사람을 크게 그리는 거예요. 바쁜 사람들이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생업으로 배우는 마음
서문에 이런 문장이 있잖아요. “우리는 밥과 일에 대한 가치 정립, 이 절대적인 삶의 필수 조건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이 문장이 작가님의 고백 같다는 생각도 했는데요. 지금은 어떠세요? 다 배운 어른이 되셨나요?
여전히 인터뷰 나갈 때마다 사회 초년생이 된 것처럼 긴장돼요. 글을 쓰고 나서도 이게 잘 쓴 건가, 못 쓴 건가 계속 생각해요. 확인용 원고를 인터뷰이에게 보내놓고 나면 “왜 말이 없지?” 초조하고요. 무슨 연애하는 사람처럼 애가 타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생각해요. “그래, 이렇게 힘들어야 일을 계속하지.” 이 일이 너무 쉬워지면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저는 인터뷰를 몇십 년 했어도, 그 사람에게는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같이 처음이 되는 것 같아요. 절대 쉬워지지 않습니다.
가치라는 것도 한번 정립하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에요. 고정불변이 아니죠. 계속 업데이트돼야 해요. 상황은 바뀌고 시대는 변하는데 혼자 고집부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늘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건가 점검하고, 돌아보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결국 어른은 못 되는 거군요. 그냥 부족한 어른으로 계속 살아가는 거네요.
인간이니까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연재는 웹에서도 일부 읽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책으로 묶였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서문을 읽는 일이었어요. 함께 살아가는 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주변을 둘러보게 만들더라고요.
누군가의 노동이 있기 때문에 일상이 굴러간다고 생각하면, 눈에 보일 것 같아요. 지하철을 청소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깨끗하게 이용할 수 있고, 화장실을 치워주시는 분이 있어서 편하게 쓸 수 있다는걸요. 그리고 나도 언제든지 이 자리로 건너갈 수 있고요. 그런 생각을 계속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엄마도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 청소나 빌딩 청소 일을 해보려고 하셨는데, 일주일 만에 못하겠다고 그만두셨어요. 너무 힘들어서요. 우리는 단순 노동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언제든 어느 일자리로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노동 조건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요.
아이를 낳고 나니 예전보다 훨씬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가족만 지키면 된다는 마음을 앞세워 살게 되고요.
육아할 때는 특히 외부를 볼 여유가 없어요. 정말 고립되거든요. 아기 키우는 엄마들끼리만 있다 보면 점점 아이에게 집착하게 되고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아이가 좀 더 크면서 여유가 생기면, 다양한 책도 보고, 다른 사람도 많이 만나야 해요. 눈을 자꾸만 다른 데로 돌리는 게 필요하죠. 그게 애한테도 좋아요.
“타인의 삶에 관심 갖는 만큼 내 아이가 행복하다.” 이거 말하고 보니 괜찮은데, 슬로건으로 쓸까요?(웃음) 엄마가 아이한테만 집착하면 서로 불행하거든요. 아이를 사랑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에게도 자기 삶이 있어야 하고, 친구도 있어야 하고, 읽는 책도 있어야 하고, 관심 갖는 사회 문제도 있어야 해요. 그래야 아이도 자기 삶을 살 수 있어요. 엄마 삶이 전부 아이가 되어버리면 아이 삶이 너무 가혹해져요. 결국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일이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한 거예요. 다 연결되어 있는 거죠.
그 감각을 아이들에게도 일찍 심어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작가님께서 강연에서 청소년들을 만나실 때도 그런 마음이 있으실 것 같고요. 작가님의 SNS 피드 글 중 자주 생각하는 게 있어요. 한 학생이 “돈 버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를 계산해보라”는 답변을 주셨다는 이야기였죠. 그 글을 읽고 좋으면서도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돈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요즘을 보내느라 뜨끔한 것이겠지만요.
우리는 돈이 많아서 풍요롭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많이 봤잖아요. 그런데 가치나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잘 사는 사람들은 많이 못 봤어요. 알려진 사례가 없어서 그래요. 저는 박사훈 선생님 같은 사람들을 많이 보면 괜찮아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만약 의사가 됐으면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저는 인터뷰를 해야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자기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것, 어떤 종류의 힘듦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아는 것인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의대에 가면 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할까요. 사람은 자기한테 맞는 일을 해야 행복한데 말이죠. 그리고 해봤는데 아니면 돌아가면 되잖아요.
앞의 학생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명확히 아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수의 아이들은 SNS를 보면서 돈 많이 버는 삶이 정답이라고 배우는 것 같아요.
돈을 많이 벌어도 그걸 유지하려면 또 얼마나 힘들겠어요. 스트레스받고, 또 소비하고, 또 스트레스받고. 계속 반복되잖아요. 이 책을 쓰면서도 제가 했던 고민도 비슷한 지점에 있었어요. 금융 소득이 근로 소득을 앞서가는 사회에서 노동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 그러다 결론에 이른 건 오히려 그래서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어요.
우리가 주식을 하더라도 밥은 먹잖아요. 누군가의 노동이 깃든 공간에서 살고요.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인천공항을 가더라도 그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노동자들이 있잖아요. 어디에나 노동이 있고, 그 노동에는 피와 땀이 묻어 있어요. 그걸 아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그리고 인사 잘하는 것도 중요하죠. 어르신 노동자분들께, 마주치는 동료 시민들에게요.
그러니까 『생업』은 소위 ‘핵심 독자’라는 게 없는 책인 것 같아요.
생업 전선에 있는 성인들뿐 아니라 일에 대한 고민이 있는 청소년들, 그리고 양육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직업을 너무 추상적으로 알거나,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를 통해서만 그려진 일부를 전부로 알잖아요. 지금 이 사회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건 또 다른 경험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양육자 필독서라고 해도 좋을 것 같고요.
무엇보다 직업에서 겪는 어려움은 혼자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황도 타투이스트도 타투 유니온을 통해서 “타투는 불법”이라는 낙인을 벗겨내고 직업적인 권리와 안전을 확보했잖아요. 우리에게는 노동조합도 있고, 윤지영 변호사가 만든 ‘직장갑질119’도 있어요. 개인이 겪는 문제이지만,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걸 아는 게 중요해요. 저는 학교에 가면 꼭 이야기해요. “직장갑질119가 있다. 일하다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단체를 기억하”라고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받아 적어요.
오늘도 계속 말씀하셨어요. “나는 아직도 인터뷰가 좋다” “사람 만나는 게 좋다.” 동시에 “너무 힘들다”고도 하셨고요. 이 일을 얼마나 더 하실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언제까지일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설렘을 갖고 사람을 만날 수 있을 때까지는 하지 않을까 싶어요. 누군가를 향해 궁금증이 차올라 “저 사람 이야기는 듣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기면 또 하겠죠. 그런데 강제로는 안 할 것 같아요.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닐 것 같다는 말이에요. 먹고사는 건 다른 일을 찾아보겠습니다.(웃음) 인터뷰는 제가 정말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하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또 새로운 이야기가 작가님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지난 3월부터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셨는데요. 요즘은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계신가요?
또 한 번 〈시사IN〉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은유의 「자립 해봤어?」’라는 기획 연재이고, 보육시설에서 자라다가 성인이 되어 세상으로 나온 청년들 이야기예요. 자립준비청년들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이 겪는 문제는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가족이 있든 없든 결국 자립은 모두의 문제니까요.
언제 어른이 되는가, 자립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있어야 사람은 자립할 수 있는가. 이 기획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기도 해요. 물론 이 청년들은 훨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요.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가족도 없고요.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의 자립을 생각해보고 싶어요. 이 청년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해보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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