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북한에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과 사회주의 혁명 정신인 '붉은 유전자' 정신을 계승하자면서 양국의 협력을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며 화답했다.
8일 중국 <신화통신>은 이날 정오 전용기를 통해 평양에 도착한 시 주석이 오후에 금수산 영빈관에서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금수산 영빈관은 2019년 6월 시 주석의 첫 국빈 방문 때 처음 공개된 귀빈 숙소로, 당시 북한은 백화원 영빈관 대신 새로 지은 이곳으로 시 주석 일행을 안내했으며 정상회담도 이곳에서 열었다.
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례없이 가속화되는 대변혁에 직면해 양측은 멀리 내다보고 과거를 이어받아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면서 "조중 전통 우의에 새로운 시대적 내포와 강력한 동력을 불어넣고 양국의 사회주의 위업과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시 주석은 네 가지 제안을 내놨는데 우선 "올해는 '조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 체결 65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양측은 기념행사를 성대히 개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총비서 (김정은) 동지와 긴밀한 전략적 소통을 유지하며 조중 관계를 끊임없이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킬 용의가 있다"며 " 양측은 외교, 법 집행, 군대 등의 교류를 강화하고 본인과 총비서 동지가 달성한 중요한 공감대를 잘 이행하여 조중 관계 발전을 위한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시 주석은 "인민의 복리 증진을 목표로 삼아 실무 협력의 수준을 제고해야 한다"며 "중국 측은 조선 측과 발전 전략 연계를 강화하고 경상(무역), 농업, 건축, 과학기술, 의료위생 등 분야의 실무 협력을 확대하여 양국 인민에게 더 나은 혜택을 줄 용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양측은 국경 통과 항구(세관)의 전면적인 재개방, 민항 노선 및 국제 여객 열차의 운행 재개를 계기로 인적 왕래를 확대하고 쌍방향 교류를 실현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우의의 계승을 동력으로 삼아 양국 국민의 마음을 잇는 유대를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 중국과 조선이 피로 맺은 전통적 우의는 양국 인민이 함께 지닌 소중한 공동의 자산"이라며 "중국은 조선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 기념시설을 잘 보호·관리하고 특색있는 혁명 전통 교육과 청소년 사상 교육을 전개하여 양국의 '붉은 유전자'(혁명 정신)와 전통적 우의를 잘 계승해 나가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본인이 지난해 9월 2일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서 제시했던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언급하며 "글로벌 거버넌스가 더욱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이는 조선 측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지지와 적극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라고 자평했다.
그는 "아시아는 조중 등 지역 국가들의 삶의 터전"이라며 "조중 양국은 전략적 조율과 협력을 강화하고, 각자의 주권·안보·발전 이익을 확고히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공동으로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본인과 시진핑 총서기 동지가 베이징에서 만난 이후, 양국 관계가 각 분야에서 활발히 발전하여 양국 인민에게 실질적인 복리를 가져다주었다" 면서 "새 시대 조중 관계 발전을 위해 시진핑 총서기 동지께서 제시해 주신 중요한 의견들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조선 측 각 부문은 중국 측 동지들과 함께 전력을 다해 이를 전면적으로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 주석이 제시한 4대 글로벌 이니셔티브는 세계 평화와 발전을 촉진하는 데 심오한 의의를 가지고 있고 세계의 지지와 찬사를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제사회는 전례 없는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지만, 조선 측은 시종여일하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할 것이며, 핵심 이익을 수호하려는 중국의 정책과 입장을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하나의 중국' 언급을 중국 매체가 강조해서 보도할 정도로 현재 시 주석에게 있어 대만 문제는 가장 집중하고 있는 사안 중 하나로 보인다. 이날 동북아평화공존포럼(대표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미중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공존 전략'을 주제로 주최한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달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무역사수, 중국은 대만 사수"가 목표였다며 "제일 오래 이야기한 것이 일본 문제고 그 다음이 대만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이날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에 게재된 시 주석의 기고문에서 주목할만한 표현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시 주석의 <로동신문> 기고문이 <신화통신>에도 게재됐는데, 북중 관계와 관련 시 주석은 통신에 "높은 수준의 전략적 협력(高水平战略协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교수는 여기서 '协作'(협작)이라는 단어 사용에 주목했다.
그는 이 표현이 기존 북중 관계에서는 보지 못했던 단어라면서 "중국은 러시아와 관계에서 '전략적 협작'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런데 이 표현이 북한과 관계에서도 사용됐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이는 북중러 연대를 공고하게 만드려는 시도"로 읽힌다면서 "동북아 판을 어떻게 짜야할지에 대한 시 주석의 행보가 시작된 것이라고 해석할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고 이후 북한에 가서 이를 설명하는 등 신속한 행보를 보인 데 대해 "중국발 (외교) 드라이브를 걸면서 한반도 질서의 변경"을 가져오려는 목적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시 주석이 세계 안보, 발전, 문명 이니셔티브와 더불어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언급한 것과 관련 "중국은 중재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중국이 중대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시 주석은 <로동신문> 기고문에서 '중국공산당과 조선로동당은 다같이 맑스주의집권당이며 중조 두 나라는 사회주의길을 함께 걷는 동행자'라고 표현했다"며 "시련속에서 함께 성장하자고 했는데 조중(북중) 정상회담에서 조미(북미) 회담을 중재하고 비핵화를 이야기 할까?"라면서 시 주석의 중재 역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김 교수는 시 주석의 이날 기고문과 함께 기고문 상단에 게재된 <로동신문> 사설의 논조를 비교해 보면 "중국은 북한을 관리하려고 (시 주석이 북한에) 오는 것 같고 북한은 관리 받지 않으려는 것 같다. 논조가 비슷하지만 충돌을 일으키는 지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핵을 쥐고 있다. 예전처럼 중소 분쟁 사이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 할 것이라면서 "그런 입장에서 시진핑의 평양 방문을 북미 정상회담 예고편으로 읽는 것은 성급하다"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설사 북미 간 대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한국의 역할이 별로 없으며,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약속을 한다고 해도 이것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미 긴장 완화가 오히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높여줄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조미(북미) 간 긴장 완화로 한반도 전쟁의 위험은 줄어들 수 있지만 (그에 따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날개를 달게 될 것"이라며 이럴 경우 "한국이 배제된 거래에서 새로운 연루의 위험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북미 간 긴장이 완화되어도 주한미군이 그대로 주둔할 경우, 주한미군이 이제는 북한을 방어하는 기능이 아닌 대만 유사시 투입과 같은 다른 지역으로의 투입이 가능해질 수 있고, 그에 따라 한국이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려 들어가는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중 간 밀착이 강화되면서 한중관계에 대한 보다 적극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희옥 교수는 "8.15 경축사나 9월 유엔총회 연설에 한국의 메시지가 명확히 담겨야 한다. 한반도 평화특사가 정말 중요한 시기인데,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가 종속변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를 위해 대만 문제에 대한 메시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 한중관계가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별로 좋지 않다. 대만 출입국 표기 문제 때문에 한중 간 전략적 소통이 어려워졌다"라며 "이 사안에 대한 적극적 언급을 통해 외교 정책 일관성을 확보하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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