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머니=현요셉 기자] 지난 6월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호텔 라벤더홀. 'AAL 표준화 콜로키움 2026'이 열린 이 자리에 모인 정부·공공기관·의료계·산업계 인사들의 문제의식은 하나로 모였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가, 그 위기를 '표준(標準)'이라는 무기로 기회로 바꿀 수 있느냐는 것이다.
'AAL'은 능동형 생활 지원(Active Assisted Living)의 약자다. 센서·인공지능(AI)·웨어러블·홈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노인이 요양시설이 아닌 자신의 집과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자립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기술·서비스 체계를 말한다. 낙상 감지, 복약 관리, 인지기능 모니터링, 응급 대응, 고립 완화가 모두 AAL의 영역이다. 이번 포럼은 'A³ AgeTech와 AX 시대의 데이터 신뢰성 확보를 위한 AAL 국제표준화 전략'을 주제로, 산업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과 능동형 생활 지원 국제표준화 회의(IEC SyC AAL)가 공동 주최했다.
"싱가포르 다음 세계 2위… 시도는 많지만, 아직 미흡하다"
포럼을 주관한 인물은 한태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연세의료원) 교수다. 그는 노인 돌봄 기술의 국제 규격을 정하는 IEC SyC AAL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이 이 국제표준화 회의를 직접 주관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처한 인구 구조의 절박함과 동시에 표준 선도국으로 도약할 기회의 양면을 상징한다.
한 위원장은 한국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짚었다. 그는 "한국은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향하는 국가"라며, 그럼에도 "AAL을 둘러싼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기기와 서비스, 의료·돌봄 데이터가 제각각의 규격으로 흩어져 있는 한, AAL은 결코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치는 한 위원장의 절박함을 뒷받침한다. 통계청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의 20.3%인 1051만 4000명으로,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속도가 더 무섭다. 고령사회(2017년)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한국은 단 25년이 걸린 셈으로, 154년이 소요된 프랑스나 36년이 걸린 일본과는 비교조차 어렵다. 현재 고령 인구 비중에서는 일본이 세계 최고지만, 변화의 속도만 놓고 보면 한국·싱가포르·태국·중국이 가장 앞서 있다.
한 위원장의 결론은 분명했다. "빠른 표준, 그리고 한국이 직접 설계한 한국형 표준화야말로 초고령사회 문제 해결의 전제이자, 한국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30년 건보 데이터 전문가의 경고… "많이 푸는 게 능사가 아니다"
표준화의 출발점은 결국 데이터다. 이 지점에서 무게감 있는 발언을 내놓은 이가 신순애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다. 신 교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0여 년을 일한 건강보험 데이터 전문가로, 우리나라 노인 데이터의 현황과 한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다.
신 교수가 소개한 건강보험 빅데이터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공단은 자격·보험료부터 진료 내역, 건강검진, 장기요양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주기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만 60세 이상 약 51만 명을 22년간(2002~2023년) 추적한 노인코호트 데이터베이스(DB)가 대표적이다. 노인장기요양 통계 역시 방대해, 2024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은 1,040만 명(전체 인구의 19.6%), 이 가운데 장기요양 등급을 인정받은 인원만 116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신 교수의 메시지는 자랑이 아니라 경고에 가까웠다. 그는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개방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AI가 가장 안전하게(연합학습·합성데이터), 가장 쓰기 좋은 형태로(표준화·공통데이터모델), 다양한 생활 데이터와 결합해 플랫폼화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데이터 패러다임의 전환을 "데이터가 풍부한(Data-rich) 단계에서, AI가 곧바로 쓸 수 있는(AI-ready) 단계로", 그리고 "과거를 기록하는 DX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AX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압축했다.
신 교수는 그 토대로 보건의료 마이데이터 사업 '건강정보 고속도로'를 들었다. 의료기관과 서비스 사이의 건강 데이터를 국가표준(FHIR)으로 안전하게 연결하는 체계로, 건보공단과 심사평가원의 공공데이터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해 AI 모델 개발의 '앵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AI 학습용 데이터의 완전성·정확성·편향성을 검증하는 'AI 데이터 품질인증제' 도입과, 민·관이 함께 AI 솔루션을 실증하는 'AX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같은 협력 생태계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AI에서 기술을 빼면 남는 건 데이터"… 정부는 이미 기틀을 깔았다
그렇다면 흩어지고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를, 실제로 쓸 수 있는 '표준 데이터'로 바꾸는 일은 누가 어떻게 해 왔는가. 그 답을 내놓은 이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고윤석 본부장이다.
고 본부장은 "AI에서 기술을 걷어내면 결국 남는 것은 데이터"라고 단언했다. 정부는 이미 여러 해에 걸친 데이터 구축 사업을 통해 방대한 AI 데이터셋을 확보하고 공개해 왔다. 기술의 기틀은 그렇게 마련됐다. 다만 그는 "확보한 데이터라 해서 모두 학습과 서비스에 곧바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진짜 과제는 양이 아니라 활용 가능한 품질에 있다고 못 박았다.
고 본부장이 제시한 해법은 정부가 수년간 다듬어 온 'AI 데이터 품질관리 프레임워크'다. 데이터가 거치는 ▲획득·수집 ▲정제 ▲가공(라벨링) ▲학습 ▲운영·활용의 5단계를, 각 단계의 산출물과 품질 활동에 맞춰 하나의 '행렬'로 표준화한 골격이다. 여기에 '구축–자가점검–검증'의 수행 주체를 분리하는 거버넌스를 결합해, 누가 작업하든 동일한 품질에 도달하고 외부 표준 지표로 객관적으로 검증되도록 설계됐다. 비식별화 누락, 오(誤)라벨, 데이터 누수처럼 치명적인 오류를 단계마다 걸러내는 구조다.
이 프레임워크가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한 위원장이 강조한 표준화의 가장 본질적인 작업—흩어진 노인 건강·돌봄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고 실제로 쓸 수 있는' 형태로 정제하는 일—의 골격을, 정부가 이미 손에 쥐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생성형 AI 시대, 기술이 표준화를 재촉한다
기술 환경의 변화도 표준화를 미룰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생성형 AI가 등장하고 인공지능이 전례 없는 속도로 진화하면서, 잘 정제된 표준 데이터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비정형 돌봄 기록과 의료 소견서까지 거대언어모델(LLM)이 자산화할 수 있는 시대다.
정리하면 구도는 명확하다. 데이터의 기틀은 정부가 이미 깔아 두었고, 그 위에서 작동할 AI 기술도 빠르게 성숙하고 있다. 신 교수가 말한 풍부한 공공데이터, 고 본부장이 다듬은 품질 프레임워크, 그리고 한 위원장이 이끄는 국제표준화 무대까지—퍼즐의 조각은 대부분 갖춰져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조각들을 한국형 표준으로 빠르게 꿰어, 세계가 따르게 만드는 일이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라는 위기를, 한국이 만든 표준을 세계가 채택하는 '표준 선도국'의 기회로 전환할 것인가. 이날 라벤더홀에 모인 이들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속도를 낼 때다.
이번 행사는 산업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과 IEC SyC AAL이 주최하고, 연세의료원(AAL센터)·NIA·비투엔·플라잉마운틴·KOAIM이 주관했으며, 전자신문·센머니·한국AI스마트홈산업협회가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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