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50대·여성·최고경영자(CEO) 출신인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총리로 지명했다. 이번 인사는 여의도 정치권의 거물급 인사들을 배치하던 전통적인 틀을 깨고, 민간 기업인 출신의 실무형 리더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정계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될 경우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한명숙 전 총리 이후 20년 만에 역대 두 번째 여성 국무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이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결론은 일할 사람으로, 그냥 일만 할 사람으로 정했다"고 밝히며 실용주의 내각의 완성형으로 한 후보자를 언급했다. 6·3 지방선거 직후 단행된 이번 파격 인사는 집권 2년 차 국정 운영의 무게중심을 정치적 공방이 아닌 경제 민생 회복과 인공지능(AI) 대전환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두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1967년 경기 의정부 출생인 한 후보자는 의정부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김혜경 여사와는 숙명여대 85학번 동기다. 대학 졸업 후 컴퓨터 전문지 '월간 PC라인 기자'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7년 포털사이트 엠파스 창립 멤버로 IT 업계에 발을 들였다. 2007년 네이버로 자리를 옮긴 뒤 서비스1본부장, 서비스총괄 이사 등을 거쳐 2017년 네이버 창사 이래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며 '여성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네이버를 검색 서비스 기업에서 콘텐츠·커머스 플랫폼으로 성장시킨 전문경영인으로 일컬어지는 한 후보자. 그의 대표적인 성과로는 중소상공인과 소상공인의 온라인 상점 개설·운영을 지원하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사업이 지목된다. 네이버 재직 기간 라인과 네이버웹툰 등에서도 혁신을 주도한 그는 간편결제 서비스인 네이버페이를 선보였고 소상공인 등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꽃' 사업을 이끈 바 있다. 재임 기간 네이버 매출을 4조6000억원에서 6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시켜 미국 경제지 포춘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 50인’에 4년 연속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 후보자의 실무 실행력은 지난해 7월 이재명 정부의 초대 중기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정책 성과로 이어졌다. 민간 경험을 살려 대국민 창업 오디션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켰고, 기술탈취 근절과 납품대금 연동제 확대 등 현장 밀착형 제도를 정착시켰다. 이 대통령이 직접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로를 극찬할 만큼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이 장관 임명 11개월 만에 총리 후보자로 고속 승진하는 발판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당초 후임 총리군으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나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등 최측근 정치인들이 거론되었으나, 이 대통령은 정무적 무게감보다 가시적인 경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 잘하는 실무형 총리’에 우선순위를 뒀다. 이들이 현재 자리를 지키게 되면서 향후 개각과 청와대 개편 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소버린 AI' 주도권 쥐나···내각 내 '네이버 라인' 주목
한 후보자가 임명되면 이재명 정부의 'AI 3대 강국' 도약 정책은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여당이 승리를 거둔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인들이 대거 첨단산업 육성을 공약한 상황과도 맞물린다. 한 후보자는 8일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 출근길에서 소설과 아이돌 가사를 인용해 "시대가 바뀌었다"고 강조하며, 산업 재편기 속에서 AI 대전환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세간의 시선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전 NHN 국내담당 총괄 대표이사), 하정우 전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에 이어 총리 후보자까지 네이버 출신이 중용된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국가 핵심 전략으로 밀고 있는 독자적 AI 생태계인 '소버린 AI'가 네이버에서 출발한 개념인 만큼, 향후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실용적인 인프라 확충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총리가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 만큼, 환경 부처의 탄소중립 기조와 산업계의 현실적인 전력 공급 요구 사이에서 어떤 조율력을 발휘할지가 핵심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23억 자산, 플랫폼 공정성 둘러싼 '송곳 검증' 예고
다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번 지명을 두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당면한 선거 행정 불신을 덮으려는 '국면 전환용 카드'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사임 후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김민석 전 총리의 퇴장과 이재명 정부 2기 개각 움직임 속에서 청문회장은 여야 대치의 최전선이 될 공산이 크다.
가장 치열한 검증이 예상되는 대목은 재산과 과거 이력이다. 올해 3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재산공개에 따르면 한 후보자의 등록 재산은 서울 잠실 아파트와 강남 오피스텔 등 주택 4채를 포함해 총 223억157만3000원으로, 국무위원 중 1위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본인 명의 부동산으로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27억3981만원)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20억7463만원) △서울 종로구 삼청동 단독주택(15억원) △경기 양평군 양서면 단독주택(6억3000만원) 등이 포함됐다.
한 후보자가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약 한 달 전 20년간 보유해 온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전용면적 151㎡)를 매각해 29억5000만원의 시세 차익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거래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조치 종료 직전에 체결됐다. 앞서 한 후보자는 2006년 10월 25일 해당 아파트를 22억5000만원에 취득해 약 20년간 보유해 왔다.
해당 아파트의 매매가는 최근 인근 유사 매물과 비교해 최저 수준으로 파악됐다. 같은 날 동일 면적 매물이 56억원에 거래됐고, 지난 3월에는 최고 60억원에 매매된 사례가 있어, 한 후보자의 거래가는 최근 시세 대비 4억~8억원가량 낮게 책정된 셈이다. 특히 매각된 잠실 아파트는 한 후보자의 모친이 거주하고 있어 처분 여부에 관심이 쏠렸던 곳이다. 한 후보자는 과거 중기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해당 아파트에 모친을 무상 거주하게 해 편법 증여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 후보자는 2022년 3월 종로구 단독주택으로 주소지를 옮기면서 잠실 아파트의 세대주를 모친으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행적에 대한 의혹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엠파스 근무 시절 정보통신망법 위반, 음란물 유포 등 혐의로 벌금 1000만원과 몰수형을 선고받은 이력을 비롯해 동생에게 종로구 건물을 무상 또는 헐값으로 임대한 것 아니냐는 의혹 등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네이버 대표 시절 불거진 쇼핑·동영상 검색 알고리즘 관련 공정위 과징금 사건(대법원 파기환송)에 대한 경영 책임과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구단주였던 성남FC에 네이버가 39억원의 광고비를 집행한 과정에 한 후보자가 관여했는지 여부도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조만간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인사청문회법상 요청안 접수 후 20일 이내에 모든 절차를 마쳐야 하는 만큼, 큰 돌발 변수가 없다면 한 후보자는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순 공식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것을 크게 환영한다"며 "후보자 재임 기간 동안 여성의 권익이 크게 향상되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감소되어, 우리 사회가 화목한 가운데 더욱 힘차게 번영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 국가가 창업의 동반자가 되어, 아이디어를 보유한 누구나 실패의 부담을 내려놓고 마음껏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는 '일반·기술 분야'와 '로컬분야'로 나뉘어 진행.
여성경제신문 서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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