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전시관] 몸은 숙주였나…강철규가 그린 자아의 폐허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NC전시관] 몸은 숙주였나…강철규가 그린 자아의 폐허

뉴스컬처 2026-06-08 15:53:00 신고

버림받은 숙주.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제공
버림받은 숙주.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제공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몸은 자아를 담는 그릇인가, 여러 감각이 잠시 머무는 숙주인가. 강철규의 캔버스에는 이 물음이 괴물, 미열, 구토, 암벽, 뱀, 번개, 부유하는 얼굴로 솟는다. 그림 속 존재들은 하나의 중심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흩어지고, 되돌아오며, 충돌한 뒤 다시 잔류한다. 강철규 개인전 ‘버림받은 숙주’는 고정된 자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뒤 도착한 회화적 세계다. 작가는 개인의 경험과 내면에서 발생한 심리적 감각을 허구적 이미지로 전환했다. 사건을 감정과 기억이 낯선 형상으로 굳어지는 순간을 붙든다. 불안, 긴장, 자기 의심, 위협의 기운은 괴물적 존재와 뒤틀린 풍경, 대립하는 인물로 모습을 얻는다.

최근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나’를 하나의 실체로 보지 않는 태도다. 작가는 지각, 감각, 정서, 기억이 겹치고 갈라지는 유동적 구조로 존재를 바라본다. 과거 화면에서 분열과 응집, 왜곡과 유지처럼 보였던 이미지는 내적 결함의 표식이 아니다. 여러 의식이 병렬로 작동한 흔적이다. 전시 제목의 ‘숙주’는 수동적 껍데기처럼 들리지만, 강철규에게는 감각과 충동이 통과하는 신체적 장소다. ‘버림받은’ 상태도 상실만 뜻하지 않는다. 중심 자아가 주인의 자리를 잃는 순간 다른 존재 조건이 열린다. 불안한 가능성을 회화의 장 안에서 추적한다.

질문은 오랫동안 작가의 작업을 움직였다. ‘나’라는 존재를 무엇이 구성하는가. 몸을 움직이는 주체는 어디에 있는가. 정신은 신체와 분리될 수 있는가. 설명되지 않는 통증은 실제인가, 허상인가. 강철규의 화면은 해답으로 달리지 않는다. 물음은 다시 의심으로 돌아오고, 의심은 또 다른 형상을 부른다. 김진주 큐레이터는 강철규의 회화를 “멈추지 않는 물음이자 문제 발견의 연속”으로 본다. 확산, 소거, 우회, 증폭을 반복한다. 방향을 잃는 듯하다.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를 향한다. 살아 있음이 자명한 ‘나’에 관한 고독하고 치열한 관찰이 안에 있다.

안타고니스트.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안타고니스트.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작업의 출발점에는 신체적 통증이 있다. 발 부근의 고통은 지속됐지만, 의료적 진단으로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분명한 아픔이 외부 논리 안에서 증명되지 못할 때, 작가는 실재와 허구, 육체와 정신, 감각과 검증 사이의 균열을 마주했다. ‘발목 없는 자’와 ‘미열’은 출발선에 놓인다. 통증에서 비롯된 분노와 무력감, 감각과 증명의 어긋남이 화면 전체를 흔든다. ‘에피파니’와 ‘구토’는 아픔의 문제를 실재와 허상, 자아와 환영의 질문으로 밀고 간다. 자아는 견고한 실체라기보다 언제든 흐려질 수 있는 허깨비일 수 있다. 강철규는 인식을 괴물적 형상과 비틀린 서사 안으로 끌고 간다. 캔버스는 불일치를 오래 견디는 장소다.

‘버림받은 숙주’와 ‘아나그노리시스’는 전시의 핵심 개념을 보여준다. 아나그노리시스는 그리스어로 인식과 발견을 뜻한다. 두 작품은 중심 자아의 균열과 이후 조건을 다룬다. 작가는 하나의 ‘나’를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중심이 흔들릴 때 어떤 다른 존재 형식이 솟는지 묻는다. 강철규의 화면에 등장하는 괴물적 존재와 기이한 형상은 공상적 장식이 아니다. 감각될 수 있으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실재가 몸을 얻은 결과다. 불안과 분노, 위협의 정서는 특정 상징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자체가 사건이다. 관람자는 괴물이 만들어내는 긴장 속에 선다.

‘안타고니스트’는 적대가 외부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는 투사의 형상으로 자아와 대결하는 주체를 그렸다. 최근에는 적대자를 자기 내부의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자아는 자신을 보호하는 중심이면서도 언제든 숙주를 떠날 수 있는 기생적 존재다. ‘의식초’와 ‘벌초’는 복수의 의식이 화면 안에서 생성되고 충돌하는 방식을 다룬다. ‘의식초’는 여러 의식이 솟는 상황을 식물적 형상으로 제시한다. ‘벌초’는 감각을 제거하거나 정리하려는 충동을 담는다. 그러나 제거는 완전한 소거로 끝나지 않는다. 반복과 귀환이 남는다. 통제와 해체가 한 화면 안에서 부딪힌다.

강철규 작가.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제공
강철규 작가.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중심의 망령들’은 고정되지 않는 자아에 관한 작가의 인식을 복합적 구조로 밀어 올린다. 머리 없는 인물, 물 위에 떠 있는 얼굴, 양의 머리를 한 양치기, 숙주의 머릿속에 웅크린 신체, 암벽의 질감이 섞인다. 망령은 소멸했다고 믿었던 중심 자아의 잔존이다. 자아를 허상으로 인식하면서도 인간 형상으로 다시 부르려는 욕망이 여전히 점유한다.

작가는 외부 이미지 참조에서 멀어지는 실험도 감행한다. 독일 중세와 매너리즘, 고전 신화, 뵈클린, 뱀과 새의 도상은 기존 회화에서 중요한 참조였다. 그러나 ‘의식초’, ‘벌초’, ‘그림자’ 등은 외부 전형보다 신체가 기억하는 회화적 감각과 직관에 가까이 선다. 빌려온 상징보다 작가의 손과 근육이 끌어올린 이미지로 채워진다. ‘새로운 것을 위한 제물’은 실패와 수정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작업이다. 암벽, 번개, 배, 휘몰아치는 파도는 창작 과정에서 겪은 스트레스와 실패를 덧칠하며 형성됐다. 계획의 어긋남은 결함으로 남지 않는다.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조건으로 흡수된다. 비의도적 흔적이 힘이 된다.

‘판의 거절’은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수 판과 유럽 신화의 인어를 끌어와 욕망, 거절, 불안을 변형된 이미지로 풀어낸다. ‘덫’은 독일 중세 회화의 상징적 이미지와 뱀의 형상을 빌려 긴장이 축적되는 구도를 만든다. ‘자화정물’은 고전 정물화의 전통 위에 자화상의 구조를 겹쳐 관찰하는 나와 관찰되는 나가 서로 포개지는 세계를 제시한다. 강철규에게 회화는 존재를 추적하는 실천이다. 해결을 내놓지 않고, 질문과 긴장을 지속시킨다. 재현의 실패에서 우연히 발생한 형상도 작업 내부로 들어온다. 오류와 수정, 미끄러진 흔적은 이미지가 자라나는 조건이다.

김진주 큐레이터는 ‘불일치를 통과하는 회화’로 규정한다.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 고통은 캔버스의 물질성을 입으며 가시적 형상을 얻는다. 분노는 공상적 상을 지나 회화적 살로 바뀐다. 몸속을 지나간 감각은 다시 위로 되돌아온다. 회화는 통증을 없애는 장치가 아니다. 아픔이 무엇을 묻는지 끝까지 붙드는 방식이다. 내면에 잠긴 자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지는 자신에 대한 혐오, 이해하면서도 바뀌지 못하는 상태가 기괴한 형태로 뒤섞인 결과다. ‘나를 움직이는 중심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강철규의 회화는 지독한 불일치의 상태를 절절히 통과한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 전경.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 전경.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제공

 

강철규는 199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조형예술학부 회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일반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갤러리 인 HQ, 챕터투, 이응노미술관 신수장고 M2 프로젝트룸,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갤러리 가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뮤지엄헤드, 금호미술관, 쉐마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WWNN,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갤러리 바톤, 세종문화회관 광화랑 등 여러 공간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24년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됐고, 키아프 서울 하이라이트를 수상했다. 2025년에는 하정웅 청년작가로 뽑혔다.

‘버림받은 숙주’는 숙주가 버려진 뒤에도 남는 감각, 여러 의식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불확실한 질서, 통증 이후 계속되는 물음을 회화로 붙드는 자리다. 강철규는 괴물과 망령, 미열과 분노의 형상을 빌려 묻는다. 중심이 사라진 뒤에도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는가.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