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 최송목 작가 = 손자병법 허실편(虛實篇)에는 “能使敵人自至者, 利之也(능사적인자지자, 리지야)”라는 말이 나온다. 적에게 이익을 보여주면 스스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손자는 오래전에 인간이 강압보다 ‘이익’에 의해 더 자발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현대의 예측 시장인 폴리마켓이 노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 정보가 정부와 정보기관의 점유물이었다면, 폴리마켓(Polymarket: 예측시장 플랫폼)은 ‘수익’이라는 강력한 미끼를 던져 전 세계에 흩어진 파편화된 정보를 한 곳으로 끌어모은다. 미·이란 휴전 가능성에 1,600억 원의 판돈이 몰리고, 서울시장 당선 예측에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현상은 정보의 민주화라기보다, 이익을 좇는 인간의 본능을 활용해 거대한 데이터 저장고를 구축한 것에 가깝다. 결국, 폴리마켓은 이익을 향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을 동력으로 삼아 '예측'이라는 상품을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이익(利)이라는 미끼가 끌어 모은 집단지성의 역설이다.
한편, 손자는 용간편(用間篇)에서 정보의 취득 방법을 “必取於人(필취어인)”이라고 규정했다. 정보는 귀신에게 빌거나 과거의 사례와 경험, 계산된 수치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람을 통해 얻어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뉴스에서 보도된 ‘절묘한 베팅’ 사례들은 이 문장을 소름 돋게 증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12분 전에 가입해 거액을 챙긴 계정이나, 공습 보류 발표 15분 전 터져 나온 1조 원 규모의 원유 선물 거래는 ‘귀신’의 곡할 노릇이 아니다. 이는 결정권자 주변의 핵심 정보, 즉 손자가 말한 ‘간(間, 정보원)’이 자본과 결합한 결과다. 예측 시장이 표면적으로는 집단지성을 표방하지만, 이면에는 정보를 먼저 쥔 내부자들의 탐욕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인생에 있어서 참된 매력은 오직 도박이다”라는 파격적인 말을 남겼다. 나는 이 문장을 삶의 권태에 맞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자기 파괴적 욕망의 표현으로 읽는다. 하지만 오늘날 폴리마켓이 보여주는 도박은 그가 말한 ‘인생의 매력’과는 거리가 멀다. 운명과의 숭고한 대결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게임으로 치환해 수익을 챙기는 비정한 계산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의 탐욕’이 단순히 돈의 흐름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마지막 윤리마저 삼키고 있다는 점이다. 실종된 조종사의 구조 시점을 베팅 상품으로 올리고,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수익률로 환산하는 행위는 인류가 지켜온 최소한의 도덕적 저지선을 무너뜨렸다. 폴리마켓의 본질적 문제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나 예측 기능이 아니다. 인간의 비극조차 수익 기회로 바꾸려는 탐욕에 있다.
동양의 전략가가 냉철하게 인간의 본능을 분석했다면, 성경은 오래전에 “돈을 사랑하는 것은 온갖 해로운 것의 뿌리입니다”(디모데전서 6:10)라고 인간의 탐욕을 경고했다. 문제는 돈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 위에서도 이익을 추구하려는 지나친 욕망이다.
손자는 “主不可以怒而興師(주불가이노이흥사)”라고 하며 감정에 휘둘린 전쟁을 경계했지만, 현대의 베팅 시장은 한술 더 떠 타인의 비극을 ‘게임’처럼 소비하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은 숫자와 확률 그래프 뒤로 밀려나고, 사람들은 극단적 변동성 속에서 또 다른 수익 기회를 좇는다. 이는 전략적 냉철함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탐욕이 빚어낸 집단적 도덕성의 마비상태다.
이란 전쟁으로 수천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고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하지만 폴리마켓의 대시보드에는 오직 ‘Yes’와 ‘No’의 확률 그래프만이 요동칠 뿐이다. 첨단 AI 드론과 자폭 무인기가 전장을 지배하는 시대,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냉혹함이다.
손자는 일찍이 전쟁을 국가의 중대사로 여겨 극도로 신중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지금의 예측 시장은 전쟁을 가벼운 도박거리로 즐기며, 인간의 고통을 수익의 재료로 삼고 있다. “非利不動, 非得不用(비리부동, 비득불용)” 즉, ‘이익이 아니면 움직이지 말고,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손자의 조언은, 이제 ‘타인의 위기를 나의 이익으로 삼지 말라’는 현대적 윤리로 다시 읽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단순히 폴리마켓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비극마저 수익률로 환산되는 세상이 가능해지고 있다는 불편한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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