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N] 장보름이의 ‘미풍들다’… 몸에 스민 세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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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N] 장보름이의 ‘미풍들다’… 몸에 스민 세월 이름

뉴스컬처 2026-06-08 09:17: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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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름이의 춤 미풍들다 포스터. 사진=국립국악원
장보름이의 춤 미풍들다 포스터. 사진=국립국악원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어느덧 마흔넷, 중년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마흔넷의 몸은 춤을 새로 배운다. 젊은 날의 속도보다 호흡은 깊어졌다. 빠른 기교보다 오래 버틴 감정, 세련된 표정보다는 삶에서 건져 올린 진심이 먼저다. 장보름이의 개인발표회 ‘미풍들다’는 무용가가 중년의 길목에서 자기 몸을 다시 읽는 무대다. 장보름이는 “어느덧 마흔넷, 중년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바쁘게 달려온 시간 끝에서 다시 무대 앞에 섰다.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복”이라고 밝힌 장보름이는 마음의 고백에 가까워지는 이유라고 했다.

춤을 시작한 이유도 화려한 목표와 거리가 멀었다. 장보름이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늘 춤을 추며 웃고 울었다”라고 돌아봤다. 잘 보이기 위한 몸짓도 아니다. 대단한 포부도 아니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춤이 감정을 받아냈다. 기쁨이 차오를 때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발표회 제목 ‘미풍들다’는 그런 시간의 이름처럼 다가온다. 10년 전, 풍류사랑방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열었던 장보름이는 다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 선다. 첫 독무대의 기억이 남은 공간으로 돌아왔다. 장보름이는 “다시 이곳에서 무대를 갖게 되니 감회가 더욱 새롭고 깊다”라고 했다. 다른 몸으로 돌아온 자리다. 십 년 전의 무용수와 지금의 장보름이는 같지 않다.

장보름이는 ‘미풍들다’를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고 여유로운 움직임”이라고 설명한다. 춤을 추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 “때로는 태풍처럼 강렬하다가도 다시 미풍처럼 단단해지는 상태"라고 했다. 미풍은 사라질 듯한 바람이 아니다. 거센 감정을 지나온 뒤 몸 안에 남은 단단한 평정이다.

프로그램은 궁중정재 ‘춘앵전’, 칼을 든 궁중무용 ‘검기무’, 김숙자류 ‘매헌입춤’, 박병천류 ‘진도북춤’, 김숙자류 ‘도살풀이춤’이 차례로 펼쳐진다. 첫 무대 ‘춘앵전’은 장보름이가 직접 춘다. 봄날 아침 버드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를 표현한 궁중 독무다. 1828년 순조 때 효명세자가 창작한 정재로 알려진 작품이다. 작은 공간 안에서 미세한 보폭, 단정한 손끝, 절제된 회전이 한 마리 새의 울림을 품는다. 발표회의 문을 여는 춤으로 춘앵전이 시작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년의 몸은 소란보다 정돈된 숨으로 무대를 시작한다.

‘검기무’는 정지수와 박소현이 맡는다. 검기무는 칼을 들고 추는 궁중무용으로, 신라 관창 설화와 관련해 설명되는 춤이다. 문헌상 궁중정재로 확인되는 기록은 1795년 정조 19년 의궤에 보인다. 실제 검의 위협보다 무구화된 칼끝의 선, 허리를 앞뒤로 숙이는 동작, 회전하는 연풍대 사위, 전립과 전복의 복식미가 핵심이다. 칼은 공격의 도구보다 절제된 긴장의 표지가 된다. 검기무는 장보름이 중요한 변화를 맡는다. 춘앵전이 혼자 서는 궁중정재의 미감이라면, 검기무는 두 무용수의 호흡과 대칭, 칼끝의 거리감으로 무대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정지수와 박소현은 각자의 이력으로 궁중춤 연구와 무용 교육 현장을 오가며 쌓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칼을 든 춤은 날렵한다. 하지만 선은 과하게 치닫지 않는다. 전통검무의 품격은 휘두름보다 멈춤에서 살아난다.

세 번째 ‘김숙자류 매헌입춤’은 다시 장보름이의 독무다. 우리나라 전통무용의 기본춤이다. 춤출 무, 뛸 용, 떨칠 진의 요소가 바다처럼 짜여 있다. 입춤은 춤꾼이 품은 한과 정서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춤이다. 매헌입춤은 장보름이의 몸을 가장 가까이 들여다보게 하는 자리다. 궁중정재의 질서나 검기무의 대칭보다는 무용가 안의 감정이 훨씬 직접적으로 배어 나온다. 시나위 장단에는 한을 담고, 자진굿거리 장단에는 풀림의 기운을 올린다. 마지막 소고놀이로 향하는 구성은 억눌린 마음이 박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슬픔을 설명하지 않고, 몸의 굴곡과 발 디딤으로 밀어낸다.

네 번째 ‘박병천류 진도북춤’에는 이임정, 이지은, 전여경이 출연한다. 전남 진도 지역의 북춤을 무대화했다. 고 박병천 선생과 이어진다. 북을 허리에 고정하고 양손에 북채를 들어 추는 방식은 장단을 몸 밖으로 터뜨린다. 남성적인 힘과 곡선적 아름다움이 충돌하지 않고 나란히 살아난다. 허리에 매인 박동이며, 무용수의 걸음에 반응하는 또 다른 몸이다. 진도북춤은 공연 중반부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든다. 춘앵전과 매헌입춤이 장보름이의 내면을 응축했다면, 북춤은 공간을 크게 흔든다. 이임정, 이지은, 전여경은 모두 국립남도국악원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다. 남도 소리와 장단의 감각을 몸으로 익힌 무용수들이 북을 들 때, 풍류사랑방의 아담한 공간은 밀도 높은 울림을 갖는다.

마지막 ‘김숙자류 도살풀이춤’은 장보름이가 다시 무대 중앙에 선다. 도살풀이춤은 경기도도당굿의 도살풀이 장단과 김숙자 명인의 해석을 떠올리게 하는 민속무용이다. 도당 살풀이를 줄인 말에서 출발한 춤으로, 흉살과 재난을 소멸시켜 안심입명과 행복을 맞이한다는 종교적 소원을 품었다. 긴 수건, 공간을 가르는 유선, 정·중·동·동·정의 손비빔, 자유로운 춤사위가 특징으로 적혔다. 장보름이는 나이가 들수록 “춤은 더욱 깊어지고, 무대에 선다는 일 또한 쉽지 않음”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한 걸음 더 정진하고, 나다운 춤을 추겠다는 마음을 밝혔다. 도살풀이춤은 다짐의 마지막 언어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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